전국 19곳의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대수술에 들어간다. 대기업이 특정 지역혁신센터를 전담해 지원하는 방식을 폐지하고 중견기업, 대학 등도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 지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중소기업에 대한 각종 지원은 중단하고 스타트업 육성에만 전념하기로 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창업 허브로 만들겠다는 목표다.

하지만 대기업 전담제 폐지가 오히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창조경제혁신센터의 가장 큰 차별화 요인이 대기업이 책임지고 지역 내 스타트업 육성을 전담해온 것인데, 굳이 이를 폐지해야 하느냐는 현실론이다. 경기창조혁신센터에 입주해 있는 한 스타트업 대표는 "스타트업 기업이 단기간에 성장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의 자원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며 "대기업이 중소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것까지 적폐로 삼아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개방성·다양성·자율성 앞세워 변화

정부는 7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누리꿈스퀘어에서 확대경제장관회의를 갖고 개방성·다양성·자율성을 3대 원칙으로 한 '창조경제혁신센터 세부 운영 방안'을 발표했다.

우선 전담 대기업이 1대1로 지역 업체들을 지원하던 방식은 사라진다. 박근혜 정부는 19개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대해 '대구는 삼성' '광주는 현대자동차'처럼 전담 기업이 각 지역의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을 책임지고 지원하게 했다. 하지만 이번 개선안에서는 지역 중견기업, 대학, 공공기관 등도 혁신센터 지원에 참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대전혁신센터의 경우 그동안은 SK그룹이 ICT(정보통신기술), 에너지, 반도체 분야의 스타트업을 지원해왔지만, 이제는 대전에 본사를 둔 수자원공사를 비롯해 카이스트·충남대, 정부 출연 연구소도 지원 기관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의사 결정 방식은 실무 중심으로 달라진다. 센터 이사회는 중소벤처기업부, 대기업, 지방자치단체 중심에서 벤처캐피털(VC), 지역 내 대학 등으로 참여 범위를 확대하고 중기부·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청와대 수석 등이 참여하는 중앙정부 중심의 '창조경제혁신센터 운영위원회'는 폐지한다. 석종훈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센터가 해당 자격을 갖추면 벤처펀드를 운용할 수도 있다"며 "혁신 창업 포럼, 강연 등 '한국형 테드(TED)'를 운영하면서 선배 기업인, 연구자, 학생들이 모이는 지역 스타트업 허브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들 내심 잘 됐다는 분위기도"

창조경제혁신센터 지원의 문호를 넓힌 것은 의미가 있지만 대기업 전담제 폐지가 자칫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로 흐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출범 4년 만에 무려 2600여개 스타트업과 3100여개의 중소기업에 창업 교육, 자금 투자, 기술 지원, 해외 판로 개척 등 각종 지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대기업이 책임지고 지원한 덕분이라는 것이다. 예컨대 충북혁신센터의 화장품 업체 팜스킨은 LG의 지원 아래 특허 문제를 해결하고 투자 유치에 성공한 데 이어 최근에는 중국과 미국 수출 계약도 따냈다. 롯데는 지난해 10월 베트남 롯데백화점 하노이점에 부산혁신센터에 입주한 중소기업들을 대거 입점시키기도 했다.

기술·인력 기반이 좋은 수도권과 미흡한 지방 간 격차가 확대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서울 등 수도권은 롯데·한화 등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스타트업 지원 공간을 마련할 정도로 창업 지원을 받기가 좋다"면서 "반면 지방의 경우 대기업 전담 지원이 사라지면 창업센터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운용하는 한 대기업의 관계자는 "정권이 바뀐 것을 계기로 대기업들은 창조센터 출구 전략을 찾는 상황"이라면서 "중견기업이나 대학이 지원 주체로 들어오는 데 대해 내심 잘 됐다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