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석방된 다음 날인 6일 삼성전자 각 사업장과 사무실은 분주했다. 직원들은 이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동안 진행된 각종 사업 관련 현안과 향후 계획을 정리하느라 온종일 바쁘게 움직였다. 삼삼오오 모여 이재용 부회장의 석방이 회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의논하는 모습도 보였다.

삼성전자의 한 임원은 "이 부회장의 석방으로 회사의 가장 큰 불확실성이 해소됐다"면서 "오너 부재로 인해 미뤄졌던 대규모 투자나 기업 인수·합병(M&A)도 빠른 속도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삼성전자는 경기도 평택에 최대 30조원을 투자해 반도체 공장을 추가 건설하는 방안을 7일 확정할 계획이다.

일러스트=김성규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9시 30분쯤 서울 용산구 한남동 자택을 나섰지만 구체적인 행선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회사로 출근하는 대신 시내 모처에서 일부 임원을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향후 일정은 차차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과 함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최지성 전 부회장과 장충기 전 사장은 해체된 미래전략실 팀장들을 모아 점심 식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첫 투자 발표는 30조원 평택 2공장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등기이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 활동 재개에 별다른 제약은 없다. 하지만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이 당분간 경영 전면에 등장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삼성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건강한 편이지만 1년 동안의 수감 생활로 심신이 지쳐 있기 때문에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당분간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몸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경영 전반에 이미 이 부회장의 뜻이 반영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반도체, 스마트폰, TV·생활가전 등 각 사업 부문별로 전문 경영인들이 책임 경영을 하고 있고 삼성의 전자 계열사 간 투자와 인사·전략 등을 조율하는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도 잘 작동하고 있다"면서 "이들에게 경영을 맡기고 중요한 의사 결정은 이사회 중심으로 이뤄지게 하겠다는 것이 이 부회장의 확고한 의지"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월 중으로 이사회에 새로 참여할 사외이사 구성을 완료할 계획이다.

대신 이 부회장은 대규모 투자와 기업 M&A 등 삼성전자의 미래 성장 동력 발굴에 주력할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삼성전자는 7일 이사회 산하 경영위원회를 열어 경기도 평택 반도체 단지에 2공장을 건설하는 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시설투자에 43조4000억원을 썼지만 대부분 이 부회장 구속 이전에 결정된 사항이었고, 신규 투자는 제한적으로만 이뤄져 왔다. 이 부회장 석방 이후 단행하는 첫 시설투자인 평택 2공장이 기존 1공장과 같은 규모로 지어질 경우 최대 30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급변하는 세계 반도체 경기에 즉각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공장을 건설하는 것"이라며 "평택 2공장은 계속 검토해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2016년 미국 전장업체 하만 이후 중단됐던 대형 M&A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예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에서 M&A 업무 등을 담당했던 안중현 부사장이 사업지원TF로 소속을 옮겨 M&A 검토 작업을 해왔지만 전문 경영인 체제에서는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면서 "이 부회장이 최종 결정만 내리면 바로 추진할 수 있는 후보도 몇 건 있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참석 가능성은 낮아

이 부회장은 9일로 예정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는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올림픽 무선 통신 분야 공식 파트너사인 데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창올림픽 유치 주역이라는 점에서 이 부회장이 전격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한 삼성 임원은 “막판에 이 부회장의 뜻이 바뀌거나 개막식 대신 일부 경기를 관람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1년간 단절됐던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을 위해 2월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정보기술(IT)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 참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해외로 출국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공식적인 대외 활동은 부담스러울 수 있다”면서 “우선 국내 사업장 등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자연스럽게 밀린 업무 보고를 받고 현안을 파악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