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약 개발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Big Data·대용량 정보)를 활용한 ‘차세대 신약 개발 플랫폼’을 구축하기로 했다. 올해 상반기 안으로 플랫폼 개발에 들어가고, 개발된 플랫폼은 검증 작업을 거쳐 연구자와 기업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내년에 공개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연구 데이터 공유·활용 전략’의 일환으로 이같은 내용이 담긴 선도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4일 밝혔다. 또 별도의 법령 제·개정 없이 가이드라인 마련만으로 공유나 활용할 수 있는 연구 데이터를 토대로 단기에 성과 창출이 기대되는 후보물질 발굴 단계의 프로젝트를 우선 추진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신약 개발은 △후보물질 발굴 △전임상시험(동물실험) △임상시험(1~3상) △시판(판매 허가) 등 크게 네 단계로 구분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각 단계별로 연구 내용과 활용되는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에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후보물질 발굴 및 전임상시험 단계에서는 실험 결과, 논문 자료 등의 연구 데이터가 주로 활용된다. 연구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연구자에게 최적의 후보물질을 제시해 후보물질 탐색 비용을 줄이고, 실험 결과를 효과적으로 예측해 전임상시험 단계에서의 시행 착오를 줄일 것으로 기대된다.

임상시험 및 시판 단계에서는 진료 정보, 건강보험 정보 등 의료 데이터의 활용이 가능하다. 의료 데이터를 학습한 AI는 최적의 환자군을 제시해 임상시험 기간을 단축하고, 시판 후의 효능과 독성을 자동으로 추적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후보물질 발굴에 사용되는 연구 데이터가 그간 국가연구개발사업을 통해 약 50만건이 축적돼 있는 만큼, 이를 활용해 평균 5년이 소요되는 후보물질 개발 기간을 최대 1년까지 단축할 계획이다.

후보물질 발굴 단계 활용 예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2월 사업공고를 거쳐 올해 상반기 안으로 한국화학연구원을 중심으로 AI 전문기업·연구소, 신약 개발 연구자가 참여하는 사업 컨소시엄을 구성해 플랫폼 개발에 착수한다. 개발된 플랫폼은 AI 학습, 연구자를 통한 검증 작업을 거쳐 연구자와 기업이 (이 플랫폼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내년 중에 공개할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차세대 신약 개발 플랫폼은 결국 제약사와 병원 등이 활용해야 하는 만큼, 현장 수요자 중심의 전문 컨설팅 그룹을 구성해 개발 과정에서 사용자의 목소리를 언제나 반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관계부처와 공동으로 ‘국가 AI 활용 신약 개발 전략(가칭)’을 올해 상반기 안으로 마련해 4차산업혁명위원회 산하 ‘헬스케어 특별위원회’에서 발표할 계획이다.

정병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구개발정책실장은 “향후 후보물질 발굴 단계뿐 아니라 신약 개발의 모든 단계에서 AI와 빅데이터를 활용한 국가적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면서 “우선 선도 프로젝트를 통해 성공모델을 창출해 민간·범부처로 확산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정병선 실장은 “우리나라는 연구개발(R&D)을 통해 축적된 연구 데이터와 병원 진료 정보 등의 우수한 의료 데이터를 다량 보유하고 있어 여기에 AI를 적용하면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단축해 국내 신약 개발 역량이 한 단계 도약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세계 의약품 시장은 1200조원 규모로 앞으로 연 4~7% 내외의 성장이 기대되는 유망 시장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하나의 글로벌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10~15년의 오랜 시간과 1조원 이상의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게다가 신약 개발 성공 확률도 매우 낮아 그간 글로벌 진출에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했다. 국내 제약사의 경우 글로벌 제약사보다 영세하기 때문에 R&D 투자 규모도 매우 적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