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드론 산업 규제를 합리적으로 풀겠다고 했지만 관련 업계 반응은 차갑다. 이미 몇년째 규제로 시장이 죽고 중국 같은 해외 기업에 비해 기술력이나 가격, 생산량 등이 밀렸는데 뒤늦게 규제완화를 한다고 드론 산업이 제대로 살아나겠냐는 것이다. 예컨데 지난해 국내 드론 업계 전체 매출은 100억원대인데 비해 중국 1위 업체인 DJI의 매출은 1조6200억원이다. 매출만 따지면 100배가 넘게 벌어진 상황에서 규제 완화로 이를 따라 잡을 수 있겠냐는 우려다.

택배를 배송하는 우편 드론 시범 현장.

정부는 24일 세종컨벤션센터에서 '4차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을 주제로 열린 제5차 정부업무보고에서 국토교통부 같은 관계부처들의 올해 주요 사업 계획을 확정·발표했다.

국토부는 2021년까지 드론 3700대 수요를 발굴해 시장 확대에 주력하고, 드론 분류체계도 위험도·성능 기준으로 개편해 규제를 합리화할 예정이다. 완구류급 같은 저성능 드론에 대한 규제는 고도제한·제한구역 비행금지 같은 필수제한사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풀어줄 예정이다. 앞서 정부는 국내 드론 시장이 매년 29% 성장하고 2026년 88조6000억원 규모로 커질 것으로 예상해 앞으로 5년간 35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드론쇼 코리아.

하지만 25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한 드론 전문 행사 '드론쇼 코리아'에 참석한 드론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드론 중소업체 한 관계자는 "이미 중국에 물량으로 밀리고 가격으로 밀리고 심지어 이젠 기술로도 밀리는 판에 규제를 풀어봤자 늦은 감이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중국 드론 시장 규모가 2조원을 넘는 것에 비해 국내 드론 시장 규모는 100억원이 채 안된다. 약 200배 차이다.

앞서 23일 서울 상암동 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 회관에서 열린 '전자 IT(정보기술) 산업 경쟁력 강화방안 및 해외진출 설명회'에서 양석훈 딜로이트 컨설팅 상무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글로벌 드론 시장 규모는 2015년 9조원에서 2020년 13조원으로 연평균 7.5% 성장할 전망이다. 중국 공업신식화정보부 자료를 보면 2020년 중국 상용 드론 시장 규모는 약 10조2000억원까지 예상되고 있다. 중국 드론 업체는 현재 전 세계 드론 제조업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중국은 2020년에도 세계 드론 시장의 78%를 차지할 전망이다.

드론쇼 코리아에 참여한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

반면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의 자료를 보면 국내 등록된 드론 업체는 1200여개, 수익을 낸 업체는 30여개에 불과하다. 대부분이 매출 10억원 미만의 중소업체다. 국내 드론 산업 관계자들이 정부의 규제안 해제가 이미 늦었다고 말하는 이유다. 드론 산업이 커지기 전 당시 중국의 드론 기술력은 부족했지만 중국 정부가 뒤에서 밀어준 덕분에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 관계자는 "중국은 우선 놔둬보고 문제가 생기면 규제를 하는 식이다. 반면 한국은 규제부터 시작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는 중국 드론 기술력이 국내 드론 기술력을 뛰어넘었다는 얘기도 있다. 23일 딜로이트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국내 드론 핵심 기술 경쟁력은 미국, 유럽, 중국, 일본에 이은 5위다. 양석훈 상무는 "비행제어 시스템, 자율비행·충돌회피 기술 같은 국내의 드론 관련 핵심 기술은 선도 그룹에서 밀려났다"고 말했다.

한 정보산업 전문가는 이번 규제안 해제에 대해 선박·제철 같은 주요 산업이 몰린 도시에 최우선적으로 규제를 풀고 정부가 지원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국내에는 인천 청라, 충북 미호천, 경남 김해 같은 지역에 총 8개 드론 전용 비행구역이 있다.

장광수 울산정보산업진흥원장(前 한국정보화진흥원장)은 "8개 지역에서만 드론 비행이 되고 다른 곳은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여러 환경을 고려했다지만 진즉에 조사·투자하고 비행장을 늘렸으면 이렇게까지 산업이 퇴화되진 않았을 것이다. 해외처럼 인구밀집지역 같은 곳에선 규제가 필요하다는 건 동의하지만 연구용 드론을 띄울 곳이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드론스쿨에서 제공하는 드론 국가 자격증 교육 프로그램.

규제안 개편보다는 중구난방인 드론 기계·기술의 표준안이 더 시급하다는 주장도 있다. 표준화를 시켜야 개발 역량이 쌓여 좋은 드론이 만들어지고 시장 자체가 성장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드론 적용 기술 국제 표준은 있지만 드론에 대한 직접적 국제 표준은 한참 부족하다. 전 세계적으로도 아직 드론에 관한 통일된 국제 표준이 거의 없다. 미국 재료시험협회(ASTM) 같은 단체가 제정한 단체표준 10여종을 필요에 따라 활용하는 정도다. 국내도 2016년 12월 드론 국가표준이 마련됐지만 아직 부족하다는 평이다.

한국드론산업진흥협회 관계자는 "마우스나 키보드 꽂는 곳의 생김새가 달랐던 것을 USB로 통일시켰듯 드론에 대한 직접적 국내외 표준안을 꾸준히 만들고 개정해 그것을 바탕으로 개발·발전시켜야 역량이 집중된다"며 "규제안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구난방인 드론 산업의 전체적인 표준안을 만드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