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조선사들 잇단 수주…현대重 수주잔량 4개월째 증가
중견 조선사는 수개월째 수주 공백에 수주잔량 점점 줄어

2016년 전 세계적인 조선업황 부진에 따른 ‘수주 절벽’ 이후 조선업황이 조금씩 살아나는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수주가 대형사로만 쏠리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는 모습이다. 대형사들은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대형 계약을 잇달아 성사시키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중견 조선사들은 수개월째 수주를 못 해 작업장이 점점 비어가고 있다.

2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포함)은 올해 들어 1월에만 14척을 8억달러(약 8500억원)에 수주했다. 이는 작년 1월 실적(3척, 4억달러)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대우조선해양도 작년 1월엔 한 척도 수주하지 못했는데, 올해 1월에는 특수선 1척을 3000만달러에 수주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 LPG 운반선.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010140)등 ‘빅3’ 조선사들은 올해 수주목표를 작년보다 대폭 늘려잡았다. 현대중공업 3사는 올해 수주 목표액을 132억 달러로 잡았는데, 이는 작년 수주실적 98억 달러(148척)보다 35% 많음 금액이다. 작년에 69억달러(28척)를 수주한 삼성중공업은 올해 목표를 82억달러로 19% 높였다. 대우조선해양은 작년에 30억달러(26척)를 수주했는데, 올해 목표금액은 50억달러로 잡았다.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수주 목표는 발주가 예정된 물량 중에서 우리 회사가 따올만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추린 것”이라며 “유가가 오르고 경기도 회복되는 추세여서 올해 목표치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빅3’ 중에서 현대중공업 3사는 수주잔량이 최근 4개월 연속 증가하면서 수주 절벽 현상에 따른 ‘일감 절벽’이 끝나는 모습이다. 영국계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3사의 수주잔량은 작년 12월 기준 181척, 673만5000CGT(Compensated Gross Tonnage·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무게 단위)로 작년 8월(166척, 599만1000CGT)에 저점을 찍고 4개월 연속 늘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작년 8월까지 수주잔량이 감소 일변도였으나 작년 하반기에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수주잔량은 신규 수주 물량과 배를 다 짓고 인도하는 물량에 따라 늘거나 줄어든다.

반면 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중견 조선사들은 여전히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있다. 성동조선해양은 작년 5월 11만5000톤급 유조선 5척을 수주한 후 8개월 가까이 수주를 못 했고 STX조선해양도 작년 9월 50만톤급 PC선(Product Carrier·석유화학제품 운반선) 6척을 수주하고 나서 4개월째 신규 수주가 끊겼다.

정부는 최근 수주 가이드라인을 완화해 일정 조건을 갖추면 ‘적자 수주’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는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 가격이 원가보다 높아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을 지키지 못하면 산업은행이나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들이 선수금 환급보증(RG·Refund Guarantee)을 발급하지 않았는데, 이 기준을 완화한 것이다.

조선업계는 정부가 RG 발급 기준을 완화한 것을 전반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주는 지급보증을 말한다. 은행이 RG를 발급하지 않으면 조선사는 선박을 수주할 수 없다.

그러나 중견 조선사들은 수주 가이드라인 완화가 대형 조선사에 국한된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는 액화천연가스(LNG)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초대형 유조선((VLCC·Very Large Crude-oil Carrier), 부유식 LNG 저장·재기화 설비(LNG-FSRU)선 등을 수주할 때 원가보다 최대 약 6% 낮은 가격에 수주하는 것도 허용하기로 했는데, 이들 선박은 대형 조선사들만 만들 수 있는 배라는 것이다.

중견 조선사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정부는 구조조정을 할지 지원을 할지를 놓고 수개월째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성동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은 현재 컨설팅을 받고 있다. 정부와 채권단은 다음달 초 컨설팅 결과가 나오면 지원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성동조선해양의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의 은성수 행장은 얼마전 “(성동조선의) 재무적 측면뿐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도 고려해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간을 끄는 사이 중견 조선사들의 일감은 계속 줄고 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성동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2016년말 28척, 70만8000CGT에서 작년 12월말 5척, 13만CGT로 급감했다. STX조선해양의 수주잔량도 이 기간에 20척, 39만5000CGT에서 15척, 29만3000CGT로 감소했다.

한 중견 조선사 관계자는 “조선업황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중견 조선사들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 체감이 안 된다. 정부가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