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길이가 수cm 이하의 마이크로로봇은 의료 분야나 인간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유용하기 때문에 연구가 활발하다. 마이크로로봇을 개발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에너지원이다. 배터리 무게 때문에 몸체에 직접 탑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주위 환경을 이용해 스스로 에너지원을 생산할 수 있다면 이같은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김호영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사진) 연구팀은 공기 중 수분으로 움직이는 소프트로봇 '하이그로봇(Hygrobot)'을 개발했다고 25일 밝혔다. 연구결과는 로봇 전문 학술지 '사이언스 로보틱스' 25일자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구팀이 개발한 로봇은 습기가 에너지원이다. 수분량의 조절만으로 운동할 수 있는 식물 야생밀과 제라늄의 메커니즘을 로봇 기술에 적용했다. 김 교수는 “야생밀과 제라늄의 씨앗은 건조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특수한 꼬리를 움직여 스스로 땅을 파고들어간다”며 “씨앗의 운동 원리를 적용하기 위해 공기 중 습도를 최대한 빨리 빨아들이고 많이 휘어지는 구조를 구상했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씨앗의 꼬리는 수분에 닿으면 부풀어 오르는 층과 부풀어 오르지 않는 층을 덧댄 구조다. 주위 습도가 높으면 한쪽으로 휘어지고, 습도가 낮으면 반대쪽으로 휘어진다. 셀룰로스, 펙틴과 같은 식물성 고분자가 수분을 머금으면 팽창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씨앗 꼬리의 수분을 빨아들이는 층을 분석, 얇은 가닥들이 한 방향으로 배열해 있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에 착안해 나노섬유를 한 방향으로 차곡차곡 쌓는 제조 방식을 개발, 습도에 빨리 반응하면서 많이 휘어지는 로봇 구동기를 제작했다.

연구진이 개발한 ‘하이그로봇’이 전진하는 모습.

연구팀은 이 구동에 한쪽 방향으로만 갈 수 있도록 고안된 다리를 달아 바닥 위에서 빠르게 이동하는 로봇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습한 표면에 올려놓기만 해도 증발로 인한 공기 중 습도 차이로 로봇은 계속 전진했다.

김 교수는 “이번에 개발한 하이그로봇은 전장이나 환경오염 지역에 뿌려 정보를 수집하는 분야나 사람 피부 위에 놓고 치료에 필요한 약물을 전달하는 의료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삼성전자 미래기술육성재단, 한국연구재단, 국방생체모방자율로봇특화연구센터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