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당시 초보 투자자였던 김유선(40)씨는 그때의 공포를 잊을 수 없다. 2015년 4월 5000만원을 국제유가 기반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했다가 이듬해 2월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배럴당 26달러까지 급락한 영향으로 3000만원 이상의 평가손실을 입었다. 김씨는 “국제유가가 설마 30달러까지 떨어지겠느냐 싶어서 들어갔는데 예상외로 많이 떨어져 매일 밤 일어나 시세를 확인하곤 했다”면서 “요즘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밤잠을 못 잔다고 하는데, 그 심정을 잘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던 김씨의 투자기(記)는 다행히 ‘해피 엔드’로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WTI가 63달러 위로 올라와 ‘녹인’(knock-in, 손실 구간)을 찍었던 DLS가 수익 상환될 확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씨의 투자 상품은 WTI가 47달러 이상이면 연 14%의 수익을 제공한다. 유가가 47달러 밑으로 하락하지 않으면 김씨는 3년치인 42%의 수익을 돌려받는다. 세금을 제하고 약 1777만원이다.

DLS란 WTI·브렌트유나 금, 은 등 원자재 기초자산이 약속된 가격(통상 50% 이하) 밑으로 떨어지지 않으면 연 10% 안팎의 수익을 제공하는 파생상품이다. 정해진 기준가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녹인(손실 구간)이라고 하는데, 녹인을 찍었다고 해도 만기 때까지 기초자산 가격이 수익 구간으로 회복되면 약정된 수익을 지급한다. 다만 한번 녹인을 찍은 상품의 경우 기초자산 가격이 수익 구간에 올라섰다고 해도 만기(통상 3년) 전에는 조기 상환되지 않는다. 만기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김씨의 사례처럼 2015년 1~10월 발행돼 줄줄이 녹인을 찍었던 DLS들이 수익 상환을 앞두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2015년 1~10월 공모로 발행된 WTI 기반 DLS는 약 5500억원으로, 대부분 2016년 2월 녹인을 찍었다가 올해 1~10월에 걸쳐 수익 상환될 예정이다.

조선DB

◆ 2015년 DLS 투자자 ‘패닉’ →’안도'...올해 국제유가 70달러선 전망

최근 10년간 국제유가 급락기는 크게 3번 있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던 국제 유가는 2008년 12월 33달러까지 급락했다. 하지만 이 당시는 글로벌 금융위기 시절이라 증시 등 다른 자산의 낙폭이 더 부각됐다.

두번째는 2014년 7월 100달러 위에 있던 국제유가가 2015년 3월 43달러까지 급락했을 때다. 미국 등에서 셰일가스 개발이 박차를 가하면서 고유가 시대 종말론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큰 충격을 줬던 것은 2015년 말부터 시작된 3차 급락이었다. 그 당시 2015년 내내 유가가 50~60달러에서 견고한 하방경직성을 보였기 때문에 “이제 셰일 쇼크가 끝났다”는 분석이 팽배했고, 국내 증권사들도 충분히 하락했다고 판단하고 DLS 등 유가 연계 상품을 많이 팔았다. 뉴욕증시에 상장된 벨로시티의 UWTI 상장지수펀드(원유 가격의 3배를 추종하는 ETF) 투자 열풍이 불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국제유가는 2015년 말부터 불과 두어 달 만에 60달러에서 26달러까지 급락했다. 2015년 1~10월 발행된 5500억원 규모의 DLS 대부분은 이때 녹인(손실구간)을 찍었다. 전체적으로 약 3000억원가량의 평가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이후 WTI 흐름

한 증권사 지점 관계자는 “2015년 상반기 홍콩 H지수가 급락하면서 금융당국의 판매 자제 권고가 내려졌던 상황이었고 국제 유가도 이만하면 바닥이라고 판단해 그 때 DLS를 많이 팔았다”면서 “그런데 WTI 가격이 더 떨어지면서 고객들의 원성이 엄청났다”고 그 당시를 기억했다. 또 “한 해외 이코노미스트가 국제유가가 9달러까지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하는 등 시끌시끌했던 시기였다”고 덧붙였다.

이런 상황이 반전된 것은 지난해 8월쯤부터다. 당시 WTI는 40달러 중후반에 머물다가 서서히 오르기 시작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정책이 힘을 발휘한 데다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불거진 영향이었다. 현재는 국제 유가가 70달러선까지 상승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015년 발행된 DLS는 WTI가 50~55달러 이상이면 대부분 수익 상환된다. 올해 들어 WTI가 60달러선을 넘은 뒤부턴 안심하고 지켜보는 투자자들이 많다는 것이 지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15년 1~10월 WTI 기반 DLS 발행 추이(공모 기준).

◆ “목돈 한꺼번에 상환 시 절세 전략 고민해야”

전문가들은 DLS에 목돈을 투자했다가 올해 3년 만기로 상환받는 투자자는 금융소득 종합과세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소득 종합과세는 연간 금융소득(이자소득과 배당소득) 가운데 2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에 대해서는 근로소득 등과 합산해 6~42%의 누진세를 적용한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전후에도 ELS가 한꺼번에 상환되면서 평범한 투자자들이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가 돼 불만이 잇따랐던 전례가 있다.

양현우 YG세무회계컨설팅 대표 세무사는 “ELS나 DLS는 투자 기간에 상관 없이 연 소득으로 잡히기 때문에 목돈이 한꺼번에 돌아올 경우 절세 전략을 잘 고민해야 한다”면서 “또 원자재 금융상품은 변동성이 크니 하나의 상품에 투자금 전액을 넣기보단 ‘계란 나눠 담기’ 전략을 추천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