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4000 대 7’. 비자카드와 비트코인의 1초당 거래 처리 건수다. 비자카드가 2만4000건, 비트코인이 7건이다. ‘하우머치(howmuch.net)’라는 인터넷 그래픽 뉴스 사이트가 최근 분석한 결과다. 비자카드는 최대 6만건까지 처리할 수 있다는 또다른 자료도 있다.

‘2만4000’과 ‘7’은 비트코인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트코인으로는 현실 세계의 수많은 거래를 처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화폐로서의 가치 안정성과 신뢰도를 차치하더라도 비트코인은 기술적으로 기존 화폐, 결제 시스템을 대체할 수 없다. 비트코인이 현금과 신용카드 거래의 효율과 편의성을 뛰어넘을 전망도 보이지 않는다.

비자카드는 컴퓨터 설비를 확충하고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면 처리 용량을 늘릴 수 있다. 비트코인은 그게 안된다. 10분에 하나씩 새로 생성되는 블록에 담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설계상의 제약으로 인해 시간이 갈수록 거래 처리 속도가 떨어지게 돼있다. 비트코인 결제가 더 불편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른 암호화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더리움의 초당 처리건수는 20건, 대쉬(Dash)는 48건, 라이트코인(Litecoin)은 56건, 비트코인 캐쉬(cash)는 60건 등으로 ‘도토리 키재기’ 수준이다. 리플(Ripple)은 1500건으로 암호화폐 중에서 압도적이지만 그래도 비자카드의 10분의 1도 안된다. 결국 암호화폐는 제한된 용도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1초에 수만~수십 만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는 암호화폐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의 가치 폭등이 합리화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술과 경제성, 편의성에서 월등히 뛰어난 새 암호화폐가 나오면 비트코인 등의 가치는 제로(0)로 떨어질 수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지금의 열광은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이다.

더욱이 비트코인은 거래 처리 건수가 비자카드의 0.03%에 지나지 않는데도 전기는 20~30배나 더 많이 쓴다. 비트코인 하나를 ‘채굴’하는 데 들어가는 전기량은 평균적인 미국 가정이 2년간 소비하는 전기량과 맞먹는다. 앞으로 점점 에너지 과소비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될 게 분명하다. 이래저래 단점이 두드러진다.

암호화폐의 기반 기술인 블록체인은 어떨까.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분리해서 봐야 한다. 블록체인 기술은 화폐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며 혁신적인 변화를 몰고 올 잠재력이 있다. 암호화폐 거품이 꺼지더라도 블록체인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타격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블록체인이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계획과 프로젝트 중에는 오로지 관심을 끄는 게 목적인 과시적 시도, 의미 없는 실험이 적지 않다. 실용성과 경제성 등은 따지지 않은채 억지로 블록체인 기술을 끼워넣고 있는 것이다.

IBM과 월마트가 얼마전 중국에서 구축한 돼지고기 추적 시스템이 하나의 예다. 돼지 사육농장부터 가공·운송·판매업체까지 모든 거래 내역을 블록체인에 저장해 관련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불량 식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솔직히 그런 시스템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돼지 사육농장과 도축 공장 등에 대해 수시로 현장점검을 나가는 것보다 나을게 없을 듯하다. 포장지 속의 돼지고기가 바꿔치기 됐을 경우 이를 알아낼 방법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돼지고기를 사기 전에 블록체인 정보를 일일이 확인할 소비자는 또 얼마나 있을까.

블록체인 관련 주가 폭등도 황당하다. 미국 이스트만 코닥은 블록체인 기반의 사진 저작권 관리 및 유통 시스템 구축 계획을 밝힌 직후 주가가 2배로 뛰었다. 심지어 아이스티(iced tea) 판매업체가 아무 이유 없이 ‘OO 블록체인’으로 회사 이름을 바꾸자 몇 시간 만에 주가가 80%나 뛰어오르기도 했다. ‘비이성적 과열’이 따로 없다.

이런 과도한 환상과 기대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인공지능 분야에서는 1950년대 중반 이후 두 차례의 짧은 ‘봄’과 긴 ‘겨울’이 있었다. 갑자기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가 지지부진한 성과에 대한 실망으로 관련 연구와 투자가 크게 위축되는 시련을 겪었다. 그때마다 많은 인공지능 전문가들이 대학과 기업, 연구소에서 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연구를 포기해야 했다.

블록체인은 최근에 부각된 신기술이라는 점에서 인공지능의 첫번째 봄과 비슷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미래 잠재력이 크다고 하지만 아직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지고 검증해야 할 부분도 많다. 당장 세상이 바뀔 듯이 호들갑 떠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탄 돌리기’ 게임은 ‘겨울’을 예고하는 신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