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국내 강관업체들이 현지 생산시설 확보로 대응하고 있다. 세아제강, 넥스틸 등 한국 업체들이 생산하는 ‘유정용 강관(OCTG)’은 미국으로 수출하는 물량이 전체의 98%에 달해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정용 강관은 원유나 천연가스 생산에 사용되는 고강도 강관이다. 내식성, 내응력, 부식 균열성 등이 뛰어나야 해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분류된다.

세아제강이 만든 유정용 강관

22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국내 강관업체인 넥스틸은 올해 상반기 안에 미국 휴스턴에 유정용 강관 생산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태국에도 현지 업체와 합작 공장을 설립할 예정이다.

넥스틸은 지난해 10월 2차 연례재심 예비판정에 46.37%이라는 높은 반덤핑 관세율을 부과받았다. 사실상 미국 수출길이 막힌 것이다. 넥스틸이 같은 예비판정에서 다른 업체(6.66~19.68%)보다 높은 관세율을 부과받은 이유는 포스코 열연을 재료로 강관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포스코 열연엔 60.93%의 반덤핑관세를 부과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세계무역기구(WTO)의 한‧미 유정용 강관 반덤핑 분쟁에서 일부 승소한 내용이 확정됐지만, 넥스틸과 포스코 사이에 제휴관계가 있다고 한 미국 주장은 그대로 유지됐다.

또 다른 국내 강관업체인 세아제강(306200)은 일찌감치 보호무역주의 대비에 나섰다. 세아제강은 휴스턴에 있는 현지 OCTG 전문 업체인 '라구나 튜블라 프로덕트 코퍼레이션(Laguna Tubular Products Corporation)'과 'OMK 튜브(OMK Tube)'를 2016년에 동시에 인수해 미국 내 생산 거점을 마련했다.

베트남 내수 시장 공략을 위해 증축 계획을 세웠던 현지 공장을 미국 수출용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세아제강은 지난해부터 베트남 내수 경기 호황에 대비해 '세아 스틸 비나(SSV)' 제2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강관업체들이 미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는 유정용 강관 대부분이 미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이다. 한국산 유정용 강관은 국내 수요가 없다.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유정용 강관의 전체 수출 물량은 86만238톤으로 이 중 84만3000톤 이상이 미국으로 수출됐다.

여기에 미국 상무부가 이달 11일(현지시간) 백악관에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안보(安保) 위협을 이유로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0일 전에 조사 결과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반면 포스코, 현대제철(004020), 동국제강(460860)등 전체 생산량에서 강관 비중이 적은 업체들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주목할 만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포스코가 지난해 9월 미국 인디애나주에 볼트‧너트‧베어링‧봉형강 등을 만드는 소재인 선재 가공센터를 준공했지만, 이는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는 미국 내 고급 선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거의 모든 철강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등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강관업체와 다른 업체들의 체감 온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며 “강관업체들은 특히 무역확장법 232조 조사 결과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