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짜리 고가(高價) 수입차 판매량이 지난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차를 대표하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의 고성능 모델들은 물론 롤스로이스와 벤틀리 등 가격이 수억원대에 이르는 럭셔리카들도 전체적으로 판매실적이 개선됐다.

최근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수억원대 고가 브랜드의 판매량이 늘고 있다. 사진은 롤스로이스 고스트

경기둔화와 내수침체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대·기아차 등 국내 완성차 브랜드와 달리 럭셔리카와 슈퍼카, 스포츠카 시장은 자산가나 고소득 전문직 등으로 수요가 한정돼 있어 특별히 경기를 타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로 불린다.

지난해는 일부 럭셔리·슈퍼카 브랜드에서 신차 출시 효과가 있었던 데다, 주식과 부동산 시장의 상승으로 자산을 늘린 사람들이 크게 늘면서 고가 수입차의 판매량이 크게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 롤스로이스, 국내 진출 14년만에 최고 실적…람보르기니·벤틀리도 두 자릿수 증가

16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고가 수입차를 대표하는 브랜드인 롤스로이스와 람보르기니, 벤틀리는 모두 지난해 판매량이 전년대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주요 고가 수입차 브랜드의 지난해 판매실적

전세계 부호들이 주로 소유하고 가격대가 4~5억원대에 이르는 초고가 세단인 롤스로이스는 2016년 국내 시장에서 53대가 판매됐지만 지난해는 86대로 판매량이 1년만에 62.3% 증가했다. 지난 2003년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후 가장 높은 판매실적에 해당된다.

롤스로이스와 쌍벽을 이루며 2억원대 중반에서 5억원대까지 가격이 형성돼 있는 벤틀리도 2016년 170대에서 지난해 259대로 52.4%의 판매 증가율을 기록했다. ‘슈퍼카의 상징’으로 꼽히는 람보르기니도 지난해 24대가 판매되며 전년대비 20% 증가했다.

다른 고가 수입차 브랜드들도 판매량이 증가한 곳이 많았다. 1억원에서 2억원대에 판매되는 마세라티는 2016년 판매량이 1300대에서 지난해는 2000대로 전년대비 50%의 성장세를 보였다. 각 국가별로 판매량이 지정돼 있는 페라리의 경우 2016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국내 배정수량 120대가 모두 판매됐다.

페라리가 지난해 출시한 4인승 모델 GTC 루쏘T

스포츠카 브랜드인 포르셰의 경우 지난해 주력 모델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카이엔 디젤이 인증 취소 처분을 받아 전체 판매량은 3187대에서 2789대로 12.5% 감소했다. 그러나 주력 스포츠카 모델인 911은 판매량이 2016년 350대에서 2017년 485대로 38.6% 늘었다. 전체 스포츠카 세그먼트 차종들의 합산 판매량도 같은 기간 762대에서 1278대로 67.7% 증가했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일반적인 수입차 브랜드 안에서도 1억원 이상에 판매되는 고성능 차종에서 전년대비 판매량이 증가한 모델들이 많았다. BMW의 고성능차 브랜드인 M시리즈의 경우 1억4330만원에 판매되는 모델인 M5는 2016년 40대가 판매됐지만, 지난해에는 101대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M4와 X5 M50D, X6 50D 등 1억원 이상에 판매되는 다른 M시리즈 모델들도 전년대비 판매가 증가했다.

벤츠도 1억원 이상 차량의 판매량이 2016년 8389대에서 지난해 1만1489대로 37% 늘었다. 1억2600만원에서 1억5100만원에 판매되는 대형 SUV 모델인 GLS는 2016년 164대에서 지난해 811대로 395%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 불황 타지 않는 럭셔리·슈퍼카 시장…신차 출시로 판매량 ‘봇물’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수억원대에 판매되는 고가의 수입차 시장은 주로 고액 자산가나 고소득 전문직, 연예인, 스포츠스타 등을 대상으로 형성돼 있기 때문에 실적이 경기에 덜 민감하게 움직인다”며 “지난해 신차가 잇따라 출시되면서 전년대비 판매량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롤스로이스의 경우 지난해 고성능 컨버터블 모델인 던을 출시했고 신형 8세대 팬텀도 예약주문을 받아 올해부터 고객 인도를 시작한다.

벤틀리가 선보인 SUV 모델 벤테이가

벤틀리는 자사 최초의 SUV 모델인 벤테이가를 선보였다. 특히 벤테이가는 최고출력 608마력, 최대토크 91.8kg·m의 힘을 갖춘 6.0리터 트윈터보 엔진을 탑재했고 최고속도 시속 301km에 이르는 성능을 갖춰 지난해 벤틀리의 판매량 증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마세라티는 지난 2016년 11월 판매를 시작한 SUV 르반떼가 출시 초반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하며 큰 인기를 모았고 지난해 10월에는 스포츠 세단인 뉴 기블리도 출시돼 판매실적이 개선됐다. 카이엔 디젤의 판매 중단으로 지난해 8월까지 판매량이 전년대비 20% 넘게 감소하며 고전하던 포르셰도 9월부터 신형 파나메라가 출시되면서 판매 감소 폭이 줄어들었다.

마세라티의 SUV 모델 르반떼

이 밖에 페라리는 지난해 4인승 모델인 GTC 루쏘T와 812 슈퍼패스트 등을 국내 시장에 출시했다. 페라리는 오는 3월에는 2억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 스포츠카인 포르토피노를 출시해 완판 행진을 이어갈 계획이다.

◆ 주식·부동산 상승으로 자산 증가…수입차 문화 변화도 영향 미친 듯

지난해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시장이 강세를 보이면서 고액 자산가들이 증가한 점도 고가의 수입차 판매가 증가하는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2016년말 2026.46으로 마감했던 코스피지수는 지난해 줄곧 오름세를 유지하면서 12월 28일 2467.49를 기록, 1년만에 20% 상승했다. 한국 경제의 회복을 예상한 외국인들의 매수세로 증시가 줄곧 상승하면서 투자자는 물론 금융시장에서도 고소득을 올리는 사람들이 늘었다. 부동산 시장 역시 정부의 8월 부동산 정책 등 여러 규제에도 불구하고 집값과 토지 매매가격 등이 전체적으로 상승했다.

한 수입차 업체 딜러는 “지난해 증시 호황으로 특히 여의도에 위치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에서 근무하는 금융인들의 고가 수입차 구매 문의가 많았다”고 뒤띔했다.

래퍼 도끼가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페라리 488 GTB

또 값 비싼 수입차를 소유하는 것을 공개하기를 꺼렸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일부 유명 가수와 스포츠 스타 등이 거리낌없이 럭셔리카, 슈퍼카 등을 과시하는 등 국내 자동차 문화가 바뀌고 있는 점도 판매량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래퍼 도끼의 경우 방송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을 통해 자신이 소유한 롤스로이스와 페라리 등 여러 대의 고가 수입차들을 자주 공개해 젊은 층에서도 럭셔리카와 슈퍼카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