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경기도 화성시 석우동에 있는 바텍 공장. 축구장 넓이만 한 공장 한쪽에선 직원 4명이 한 조를 이뤄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의 팔 부분을 몸통에 붙이는 조립 작업을 하고 있었다. 다른 쪽에서는 마네킹 머리를 찍으면서 엑스레이 영상이 선명하게 나오는지 검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바텍의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는 엑스레이와 CT(컴퓨터 단층촬영), 치아교정용 머리뼈 영상 촬영 등 3가지 영상 작업을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다. 김신태 바텍 제조팀장은 "3가지 장비를 하나로 합치면서 가격을 절반 이하로 내린 게 경쟁력"이라며 "화성과 중국 공장에서 연간 5500대를 생산해 미국·유럽·중국으로 수출한다"고 말했다. 이 제품의 가격은 기종에 따라 약 3000만~8000만원으로 바텍은 작년 매출 220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약 380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무려 18%에 달한다.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 제조업체 바텍의 노창준 회장은 최근 본지 인터뷰에서 “최근 수출이 크게 늘면서 올해 말이면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며 “중소기업도 한 분야에 꾸준히 집중하면 세계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사진은 경기도 화성 공장에서 직원들이 생산한 엑스레이 기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치과용 디지털 엑스레이 전문 제조업체인 바텍이 세계 정상을 향해 뛰고 있다. 전 세계 100여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며 치과용 엑스레이 1·2위인 독일의 시로나, 핀란드의 플랜메카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공장에서 만난 창업자 노창준(60) 회장은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80% 이상"이라면서 "해외에서 주문이 밀려들고 있어 올해 말이면 세계 1위로 올라설 것"이라고 했다.

노창준의 '한우물 승부수'

노창준 회장

1992년 산업용 엑스레이 검사장비 업체로 출발한 바텍은 IMF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경영난을 겪었다. 뚜렷한 미래 청사진도 없었다. 2001년 바텍을 노 회장이 인수했다. 서울대 78학번 운동권 출신으로 주로 중소기업에서 전문경영인으로 일했던 노창준 회장은 바텍에 사장으로 영입됐다가 아예 회사를 넘겨받은 것이다.

노 회장은 바텍 인수 후 30명 전 직원에게 세계 1등을 할 수 있을 만한 아이템을 찾아보라고 했다. 수백건의 아이템이 올라왔다. 직원들과 밤샘 회의 끝에 산업용을 버리고 치과용 디지털 엑스레이 장비 한 곳에 집중하자고 결정했다. 노 회장은 "중소기업도 세계시장에서 승부를 해야 하고, 후발주자라도 한 분야로 좁히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치과용 엑스레이 장비 세계 1·2위인 시로나와 플랜메카는 엑스레이뿐만 아니라 환자용 의자 등 치과에서 쓰이는 장비를 모두 만들었지만 바텍은 오직 치과용 엑스레이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노창준 회장과 엔지니어들은 회사에서 숙식하면서 경쟁사 제품을 뜯어가며 공부했다. 노 회장은 "당시 기술협력을 맺고 있던 핀란드의 한 치과용 엑스레이 업체가 도산하자 현지로 날아가 갈 곳을 잃은 현지 엔지니어 3명을 설득해 한국으로 데려오기도 했다"고 했다. 이런 노력 끝에 바텍은 2003년 국내 최초로 치과용 디지털 엑스레이 장비를 개발했고 2년 뒤엔 세계 최초로 세 가지 기능을 모두 수행하는 '3 in 1' 장비를 출시해 미국 시장을 본격적으로 개척했다. 노 회장은 "2005년 독일 치과기기 국제전시회에 25㎡(7.6평) 크기의 부스를 차렸는데 정말 아무도 오지 않아 눈물이 나더라"며 "미국에서는 대리점마다 찾아가 기존에 없던 제품임을 강조하고, 기존 제품의 절반 이하로 납품하겠다고 설득해 간신히 판로를 뚫었다"고 했다.

과감한 R&D 투자로 신시장 개척

노 회장은 연구개발(R&D) 투자에 심혈을 쏟는다. 이를 통해 디지털 엑스레이 장비의 국산 부품화율을 93%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관련 특허도 126건이나 보유하고 있다. 인수 당시 30명에서 950명으로 늘어난 직원 중에 약 20%가 연구개발 인력이다. 노 회장이 공장 바로 옆에 최대 150명의 아이를 위탁해 돌볼 수 있는 어린이집을 설립한 것도 우수한 연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중국과 인도에서 1위에 오른 바텍은 올해 남미와 호주·중동 등 신시장을 개척하는 데 총력을 쏟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가격과 기능에서 현지 시장 상황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펼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선 방사선량을 기존 대비 75%까지 줄인 그린 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고, 인도에서는 가격 경쟁력이 뛰어난 엑스레이 장비를 수출하는 방식이다. 노 회장은 "바텍은 끊임없이 틈새시장을 찾아 세계 1등에 도전하겠다"며 "우리나라에도 특정 분야에서 1위를 하는 강소기업이 많아져야 나라가 100년, 200년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