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카페, 액세서리 공방, 애완견 패션 전문점···. 시대는 달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템을 사업화하는 창업은 계속된다. 내가 좋아 시작했는데, 호응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면 대박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새롭게 떠오르는 사업 아이템을 발굴해 [요즘 뜨는 사업]으로 소개한다.

"정말 완벽해요(Perfect)!"
지난해 말 관광차 한국을 찾은 싱가포르의 건축가 A씨는 자신의 만든 향수를 들고 이렇게 말했다. 40대 남성인 A씨는 직업상 목재를 접할 일이 많았다. 그런 이유로 나무의 향이 친숙하고 그 향을 맡을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A씨의 직업과 개성·특징을 파악한 유선정 조향사(향수 전문가)는 A씨에게 '히노끼(hinoki)' 향과 '로즈우드(rosewood)' 향을 추천했다. 히노끼는 편백나무, 로즈우드는 자단향(붉은색 향나무) 특유의 향을 담고 있다. A씨가 선택한 향수 베이스에 히노끼, 로즈우드로 포인트를 주자 A씨만의 세련되고 은은한 맞춤향수가 완성됐다. A씨는 이 향수에 '서울(Seoul)'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A씨는 자신의 향수 서울을 사용할 때마다 큰 황홀감과 만족감을 느낄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를 위해 ‘맞춤향수’를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지난해 12월 진행된 연세대 미래교육원 ‘향 전문가 교육과정’의 자유 조향 수업 시간. 4명의 수강생은 각자 자유롭게 자신이 만들고 싶은 향을 설계했다. 비주얼 머천다이저(매장 등 특정 공간에서 상품·서비스를 시각적으로 연출하고 관리하는 직종)로 일하는 김재만씨는 상쾌하고 시원한 향을 만들고 싶어 메인 향료로 모스(moss)를 선택했다. 모스는 떡갈나무나 소나무에 생기는 이끼의 향이다. 또 신선하고 편안한 느낌을 주고 싶어 그린(green) 계열의 향료를 조합했다. 재만씨는 “힐링을 주는 향을 만들고 싶었다”며 “머릿속으로 상상하면서 그린 이미지를 향수라는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 재미있고 신선했다”고 말했다.

양키캔들 가맹점주로 일하고 있는 김지원씨는 엄마에게 선물할 향수를 만들었다. 지원씨는 직업을 갖고 왕성하게 사회생활을 하는 엄마를 위해 진취적이면서 강인한 느낌을 주는 스파이시 오리엔탈(Spicy Oriental) 타입의 향수를 만들었다. 스파이시 계열의 향료를 주로 활용하는 스파이시 오리엔탈 타입 향수는 중후하면서 관능적인 느낌이 특징이다. 젊은층보다 중년층에 더 잘 어울린다. 클로브(clove), 시벳 캣 오일(civet cat oil) 등의 향료를 넣어 화려하고 관능적인 느낌의 향수를 만들어냈다. 지원씨는 “엄마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향수를 선물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세대 미래교육원 ‘향 전문가 교육과정’ 수강생들(김지원(왼쪽 위), 이진영(오른쪽 위), 김재만(오른쪽 아래), 노소현(왼쪽 아래))이 유선정 조향사의 지도에 따라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고 있다.

맞춤향수를 만들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나만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등 이유는 다양하다. 향수공방을 운영하는 정미순 지엔(GN) 퍼퓸 플레이버 스쿨 대표는 “싱가포르, 홍콩, 대만, 미국, 호주, 중동 등 해외에서도 맞춤향수를 만들러 온다”며 “체험자들의 입소문,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맞춤향수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월평균 20~40팀이 이곳 향수공방을 찾는다.

한 중년 남성은 옛 첫사랑의 향기를 만들어 추억하기 위해 향수 공방을 찾기도 했다. 정 대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첫사랑과의 추억을 향기로라도 곱씹고 싶은 것”이라며 “향을 수십 번 조합한 끝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가 만든 것은 은은한 사과향이 나는 향수였다.

◆ 향에 오롯이 집중하는 조향 과정 자체가 ‘힐링’

맞춤향수 제작은 ‘설문지 작성’으로 시작된다. 유선정 조향사는 “향은 나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 나의 심리 상태는 어떤지 등을 알아보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때 체험자는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나는 어떤 향을 맡을 때 행복한가’ ‘향과 관련된 내 경험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등을 생각하며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다.

자신의 향수 취향 파악이 끝나면 본격적인 향수 만들기에 돌입한다. 향수의 베이스가 될 향을 네 가지 중에 고르고 나면 여기에 추가할 향료의 목록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향료를 하나하나 맡아보고 자신이 받은 느낌을 정리하는 작업이 필수다. 유 조향사는 “어린 시절 엄마 화장대에서 맡았던 분 냄새, 지난 여름 휴가 때 들렀던 휴양림에서 맡은 나무 냄새처럼 자신만의 경험을 넣어 주관적으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경험이 담긴 향료는 향수에도 개성을 덧붙여주기 때문이다.

각종 향료.

추가로 넣을 향료(10가지 내외)를 고르고 나면 자신의 호감도에 따라 배합할 각 향료의 양을 정한다. 베이스와 모든 향료를 섞은 뒤, 보존·확산 역할을 하는 에틸알코올을 추가하면 나만의 맞춤향수가 완성된다. 마지막으로 향수에 이름을 붙이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상 최고의 힐링을 선사한다고 해서 ‘평온의 끝’, 평소엔 도도하고 시크한 친구에게 사랑스럽고 귀여운 느낌을 더해줄 ‘달달한 날’과 같이 향수 이름에도 스토리를 담는다.

유 조향사는 “향에 오롯이 집중하면서 잊고 지냈던 기억과 마주하고 새로운 감정을 느끼는 조향 과정은 그 자체가 ‘힐링의 시간’”이라며 “나를 위한 맞춤향수를 만든 분들이 만족하고 다시 찾아와 선물용 맞춤향수를 만들어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향기 산업 시장 규모는 연평균 10%씩 성장해 지난 2016년 2조5000억원을 돌파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향기 산업 규모를 3조원으로 추정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3만달러에 다다르면서 향기·향수처럼 즐기고 향유하는 문화가 발달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3년 600억원 수준이던 향초 시장 규모는 지난해 2000억원으로 커졌다. 향초 브랜드인 ‘양키캔들’의 지난해 판매량은 3100만개에 달했다.

향 산업 성장과 함께 향을 배우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국내 최대 조향 교육 기관인 지엔 퍼퓸 플레이버 스쿨은 지난 16년간 졸업생 1600명을 배출했다. 민간 자격증인 조향사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은 200명에 달한다. 이 조향사들은 국내 화장품 기업이나 식품 기업, 연구소, 향료회사 등에 진출해 향장품 연구자, 식품 향료 연구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