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만 해도 전용면적 107㎡ 아파트가 분당 '전성기'였던 2006년 시세보다 2억원 정도 하락한 상태였습니다. 지난해부터 집값이 급등하더니 최근엔 2006년 시세만큼 올랐습니다. 매물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10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의 H공인중개사 사무소엔 "지금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있느냐"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왔다. 지난해 말부터 분당 아파트값이 눈에 띄게 오르면서 실수요자는 물론 투자 수요까지 대거 가세했다. 1기 신도시 중 손꼽히는 부촌(富村)이던 분당이 과거의 명성을 되찾아가고 있다. 판교·광교 등 주변 신도시에 밀려 지지부진하던 분당 아파트값이 최근 급등하면서, 3.3㎡당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2000만원대 재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해에만 10% 가까이 올랐다. 1990년대 초 입주한 아파트 리모델링 사업이 본격화하고, 범강남권 아파트 시세 급등, 잇따른 기업 이전 등이 맞물린 결과이다.

◇낡은 아파트 리모델링, 집값 급등 배경

분당 지역 아파트값은 지난해 9.9% 올랐다. 경기도 아파트값 평균 상승률(2.98%)의 세 배를 웃돈다. 작년 9월 정부가 분당을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했지만, 이후 4개월 동안 2.2%가 더 오르는 등 급등세다. 2013년 1541만원까지 내려갔던 분당 아파트 3.3㎡당 평균 가격은 작년 말 1904만원을 기록했다.

분당 아파트값은 2003년 1186만원으로 처음으로 서울 평균(1155만원)을 뛰어넘었고, 2006년에는 2023만원까지 치솟았다. '천당 위에 분당'이란 말이 나온 것도 이때였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며 2009년 1666만원까지 내려앉았고, 이후 5년간 하락세였다. 서울에서는 2015년 하반기부터 '재건축 열풍'이 불기 시작했지만, 분당은 상대적으로 잠잠했다. 분당 아파트 대부분이 준공 25년 안팎에 머물러 재건축까지 상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한 데다, 이미 상당한 고층으로 지어져 재건축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리모델링 열풍이 불면서 반전됐다. 준공 후 30년이 지나야 추진 가능한 재건축과 달리 15년만 지나면 사업 추진이 가능한 리모델링 사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현 정부 들어 재건축 아파트 단지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자 리모델링 사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8월 건축심의를 통과한 '한솔 주공 5단지'는 포스코건설·쌍용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해 현재 1156가구인 아파트를 1255가구로 증축하는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최근 성남시가 수직증축 리모델링 설계안 건축심의를 조건부 통과시킨 '정자동 느티마을 3·4단지' '구미동 무지개마을 4단지'도 리모델링 사업에 가속도가 붙었다. 서현동 '시범단지 현대아파트'와 '삼성·한신아파트'도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다.

◇기업 이전·개발 호재로 집값 회복세

분당과 인근 지역인 판교에 기업 이전과 개발 계획이 많아 배후 수요가 풍부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분당 집값을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미래에셋은 약 1조8000억원의 펀드를 조성해 판교의 초대형 4차산업 플랫폼 기반 복합시설 개발 사업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3년간 복합시설을 개발해 약 1만3000여명의 인력과 40개 기업을 한 곳에 모은다는 계획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떠나는 알파리움타워에는 삼성메디슨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가 들어온다. 내근 위주의 기업들이라 주변 상권이 활성화될 거란 기대가 크다. 두산그룹은 정자동에 두산분당센터를 짓고,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계열사를 이전할 계획이다. SK그룹의 부동산개발사 SK D&D이지스자산운용·신세계조선호텔과 함께 4~5성급의 호텔 건립을 추진 중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분당은 아파트가 노후했을 뿐 신도시 중 인프라와 주거환경이 가장 좋은 곳으로 평가받는다"며 "제2의 강남으로 명성을 되찾을 거라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