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계에서 최근 각광받는 주제 가운데 하나는 불평등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이다. 5~7일(현지시각)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미국에서 시간당 최저임금을 15달러 수준으로 대폭 인상한 지방자치단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그 영향을 분석한 연구들이 이번에 대거 발표됐다. 발표에 나선 교수들 가운데 많은 수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감소하는 효과가 관찰됐다”고 밝혔다.

아예 ‘최저임금 15달러: 초기 단계 증거들($15 Minimum Wage Policies: Early Evidence)’이란 제목의 토론회도 따로 열렸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회(CEA) 의장을 역임했던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가 이 토론의 사회를 맡았다.

미국 보스턴의 한 식당에서 직원들이 과일과 야채를 다듬고 있다. 이런 일자리 가운데 상당수는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는다.

◆ “최저임금 일정 수준 넘으면 노동시장 위축 가속"

에카테리나 자딤 등 미 워싱턴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들로 구성된 연구팀은 미국 시애틀이 2016년 시간당 최저임금을 13달러로 급격히 인상한 것에 대한 영향을 분석했다. 이 논문은 지난해 워킹페이퍼(작업보고서·정식 발행 전 외부 논평 등의 목적으로 공개하는 회람용 논문) 형태로 공개됐을 때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자딤 교수 등은 2016년 시간당 13달러로 최저임금을 인상하면서 시간당 19달러 밑으로 임금을 받는 저임금 일자리가 6.8% 줄었다고 추정했다. 근로시간은 9.4% 감소했다. 임금 상승률은 3.1%에 그쳤다.

자딤 교수는 “최저임금을 시간당 9.47달러에서 11달러로 올렸던 2015년보다 시간당 11달러에서 13달러로 올렸던 2016년에 고용감소 규모가 훨씬 더 컸다”며 “최저임금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비선형적(임금 인상률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으로 노동시장을 위축시킨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에드워드 리머 UCLA대 교수 등은 ‘캘리포니아 연안 노동시장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영향 평가’ 논문에서 캘리포니아주 연안 지역(베이에어리어) 도시에서 분기별 임금고용 센서스(QCEW) 자료를 활용해 최저임금 인상이 식당 고용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식당업 직원들이 주문받고 음식을 가져다주는 ‘풀서비스’ 유형과 카운터에 음식이 나오면 손님들이 이를 자리로 가져가는 ‘제한서비스’ 유형 등 두가지였다. 캘리포니아주의 최저임금은 2006년 시간당 6.75달러에서 2008년 8달러로 오른 뒤 2014년에 다시 시간당 9달러로 인상됐다. 이후 2016년 시간당 10달러, 지난해 시간당 10.5달러, 올해 시간당 11달러로 급격히 올렸다.

분석 결과 2006~2008년 최저임금 인상(시간당 6.75달러→8달러)은 제한서비스 유형의 식당에서 고용을 12% 가량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유형 식당 근로자 소득은 10% 가량 증가했다. 당시 최저임금 인상률이 18.5%라는 것을 감안하면 고용인원 뿐 아니라 근로시간도 감소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 인원의 10% 감소를 낳은 것으로 추정됐다. 근로자 소득 증가 폭은 20% 정도였다. 리머 교수는 “풀서비스 유형의 식당은 고객 응대 문제 때문에 고용의 탄력성이 떨어지는 편”이라면서 “강도 면에선 차이가 있지만 고용 감소 효과는 뚜렷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그냥 사라지는 것”

피에르 브로체 캐나다 오타와대 교수 등은 ‘최저임금, 노동이동, 임금 분포’ 논문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새로운 기준선보다 시간당 임금이 2~2.5달러 높은 근로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최저임금은 임금 하위 5% 수준 근로자만 제도적으로 해당되지만, 실제로는 남성 근로자는 하위 10~15%, 여성 근로자는 하위 20%까지 각각 영향을 받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저임금 근로자 노동시장 전반이 영향을 받는다는 의미다.

실비아 알레그레토 UC버클리대 교수 등은 ‘새롭게 높아진 최저임금: 6개 도시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에서 시카고, 오클랜드, 샌프란시스코, 산호세, 시애틀, 워싱턴DC 등의 최저임금 인상 영향을 분석, 비교했다. 최저임금 인상 시 저임금 일자리가 줄어들고, 그 자리를 중간 정도 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일부 채우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은 말 그대로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지, 해당 일자리가 좀더 고숙련·고임금 근로자의 일자리로 대체되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