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기 조절은 물론이고 주변 교통량을 분석하고 범죄도 예방하는 '스마트 가로등'이 도시를 바꾸고 있다. 원래 스마트 가로등은 주변 밝기에 따라 자동으로 빛 세기를 조절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조명이었다. 최근에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방범용 CCTV와 와이파이(무선인터넷)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주변 소음을 수시로 체크하고 유동인구와 교통량을 파악해 도시 정책 수립에도 기여하고 있다. 국내외에서 똑똑한 가로등들이 도시민들의 든든한 도우미가 되고 있다.

보안 기능에 주차 공간 정보 제공까지

스마트 가로등 도입의 선두 주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서부 도시 샌디에이고이다. 샌디에이고는 오는 5월 미국 에너지 기업 GE 계열사인 커런트가 제작한 스마트 가로등 3200대를 시내에 설치할 예정이다. 새로 도입하는 스마트 가로등은 주변 도로의 주차 공간 정보를 운전자에게 제공하거나 교통 단속 요원에게 불법 주차 차량을 알려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스마트 가로등이 도로에 설치된 센서로부터 신호를 받아 빈 공간을 확인하면 중앙 서버에서 이를 분석해 운전자들에게 전송하는 방식이다.

샌디에이고에 설치되는 스마트 가로등은 겉보기에는 일반 가로등과 별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각종 첨단 장비가 가득하다. 가로등 가장 위에 주변 밝기에 따라 빛이 조절되는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이 달려 있고, 조명 바로 아랫부분에는 6대의 CCTV가 설치돼 있다. 각 스마트 가로등은 반경 50m 영역을 감시할 수 있다.

스마트 가로등은 미국 내 총기 사고 대처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고성능 음향 감지 센서가 탑재돼 있어 10㎢ 이내 지역에서 총성이 날 경우 자동으로 경찰에게 통보하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총이 발사되면 주변 3곳의 스마트 가로등 센서에서 감지한 총소리 세기를 종합해 정확한 위치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이 위치를 잡을 때 3대 이상의 GPS(위성항법장치) 위성이 동원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서천석 호남대 교수는 "가로등은 보통 높이가 10m 정도로, 주변 지역을 조망하기 적당한 높이인 데다 접근성도 좋기 때문에 스마트 도시에서 시민들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활용하기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가로등이 도시 곳곳에서 매일 수집한 정보는 기업이나 연구기관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샌디에이고시는 지난해부터 시범적으로 도입한 스마트 가로등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해 샌디에이고 스마트 가로등에서 수집된 빅데이터(대용량 정보)를 기반으로 한 해커톤(짧은 시간에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행사)도 개최했다. 이 대회를 통해 가장 조용한 산책 루트를 찾아주는 앱과 시각장애인이 길을 건너도록 돕는 디지털 지팡이 등 다양한 앱이 개발됐다.

스마트 가로등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여러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최근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 애틀랜타·시카고 등 다른 미국 도시뿐 아니라 영국 런던, 중국 충칭 등 각국 도시에서도 스마트 가로등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국내 지자체들 방범 위해 도입 추세

국내에서도 지자체들이 주로 방범을 위해 스마트 가로등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지난 2016년부터 가로등에 카메라가 장착된 블랙박스를 설치하거나 자동 긴급 구조 요청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빛고을 스마트 가로등'을 설치하고 있다. 현재까지 스마트 가로등 3300개가 세워졌고, 올해 3억원을 들여 1150개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다. 스마트 가로등 주변에서 광주시가 개발한 앱을 설치한 스마트폰을 흔들거나 전원 버튼을 누르면 자동으로 가족과 경찰에 긴급 구조 요청 메시지가 전송된다. 김남균 광주광역시 도로과장은 "지난해 스마트 가로등 블랙박스에 찍힌 40여 건의 영상이 절도 피의자 검거에 활용됐다"고 밝혔다. 전북 전주시도 지난해 말부터 스마트 가로등 설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