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만, 게임의 룰은 바꿔야 합니다. ‘달 착륙'으로 가는 여정에서 수많은 파생 기술이 탄생할 것입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인문학자와 기술자의 끊임없는 대화는 중요합니다. ”

지난 12월 7일 조선비즈 4차 산업 혁명 특별 취재팀은 기획 연재 기사 ‘로그인 투 매트릭스’를 마무리하는 결산 좌담회를 열었다. 이번 기획 기사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 특성과 첨단 기술의 진화 방향을 구체적으로 다뤄 화제를 모았다.

결산 좌담회에는 김정민 제노플랜코리아 연구소장,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전 KT 사장), 윤경림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장(KT 미래융합사업추진실 부사장), 이병태 KAIST 경영대학원 교수 겸 청년창업투자지주 사장, 임창환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이상 가나다순)가 참여했다. 사회는 류현정 조선비즈 정보과학부 부장이 맡았다.

이날 김정민 소장은 “원천 기술을 확보를 위해 비임상 연구의 규제는 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고 김홍진 대표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불연속선을 넘기 위해선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병태 교수는 “오늘날 성공하는 벤처는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투자를 받고 있으며 전 세계 메가시티들은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경림 회장은 “4차 산업 혁명의 두 축은 인공지능과 인공현실”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임창환 교수는 “인류는 ‘달착륙'이라는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수많은 파생 기술을 얻어왔다"고 말했다.

다음은 토론 내용. 토론은 신기술 현황과 전망, 한국 사회의 대응과 문제점, 인류의 과제 순으로 진행됐다.

왼쪽부터 김정민 제노플랜코리아 연구소장,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윤경림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장 겸 KT 부사장,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전 KT 사장), 임창환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신기술 현황과 전망

― 사회자 = 정보기술문화 잡지 ‘와이어드(Wired)’를 창간한 케빈 켈리는 테크니엄, 즉 기술계도 생물처럼 특정한 진화 방향이 있다고 했다. 조선비즈 취재팀은 기술의 진화 방향을 찾아내려고 애썼다. 기획 연재 기사 제1부 극단의 융합 편에서는 첨단 기술 현장을 집중적으로 소개했고 제2부 극단의 분리 편에서는 첨단 기술이 완전히 바꿔놓을 미래 사회에 대한 문제 의식을 담았다. 총 9회에 걸쳐 연재한 조선비즈의 기사를 재료로 삼아 깊이 있는 토론을 해주시면 고맙겠다.

임창환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 취재 기자가 찾은 가장 극단적인 기술 융합 사례 중 하나가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뉴럴링크(Neuralink)였다. 뉴럴링크는 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가 세웠으며 뇌에 전극을 까는 '뉴럴 레이스'를 개발 중이다. 머스크는 이를 통해 인간의 뇌에 지식(knowledge)을 주입하겠다고 한다.

신경 공학(한국에서는 주로 뇌공학이라고 부름)을 연구하는 학자 입장에서 보면, 현재로서는 그런 기술을 구현하기는 어렵다. 뇌에서 발생하는 신호를 ‘뉴럴 코드'라고 하는 데, 우리는 이 신호의 의미를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해독률이 거의 0%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달 착륙’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인류는 많은 지식과 파생 기술을 얻을 수 있었다. 인간의 뇌에 지식을 주입하는 목표에 따라 뇌과학과 신경공학도 크게 발전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획기적인 치매 치료 기술이 10년 내에도 나올 수 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 테오도르 버거 교수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바꿔주는 해마(뇌의 특정 부분)를 모방한 칩을 만들어 쥐의 뇌에 삽입하고 쥐의 뇌 기능을 회복시킨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런 기술을 응용하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고생하는 참전 병사의 뇌에 특수 칩을 삽입하고 전기 자극을 줘 힘든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 소프트뱅크 자회사인 코코로SB(Cocoro SB)는 인간과 교감을 나누는 감정 로봇을 만들고 있다. 도쿄에서는 성인 가상현실 체험장이 인기더라.

이병태 KAIST 교수 = 정보기술(IT)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포르노그래피 시장이 가장 먼저 열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특히, 성인 콘텐츠 시장이 발달한 일본의 경우, 신기술과 섹스 비즈니스의 결합이 빠르다.

감정 인식과 관련해서도 많은 사업 기회가 열릴 것으로 본다. 제 연구실에서는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킥스타터의 3분 프레젠테이션 발표자의 표정을 연구한 적이 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발표자의 감정 표현에 따라 자금 조달 규모가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대기업들도 감정 인식 연구에 적지 않은 돈을 투자한다. MS가 지난 2015년 선보인 감정 인식 서비스(cognitive services)는 사진을 업로드하면 사람 얼굴을 인식해 감정을 8종류로 분류해 수치로 표현해준다. 분노, 경멸, 역겨움, 공포, 행복, 중립, 슬픔, 놀람 등의 감정을 0부터 1까지의 비율로 알려준다.

윤경림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장

윤경림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장 =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 현실 등 용어들이 참 많이 나온다. 이런 용어를 인공현실(Artificial Reality)로 정리하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4차 산업 혁명을 지탱하는 두 축을 꼽으라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인공현실을 꼽는다.

인공현실은 커뮤니케이션 인터페이스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다. 그동안 디지털 기술과 사람이 만나는 지점에는 퍼스널컴퓨터(PC)와 휴대전화가 있었다. 앞으로는 인공현실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창이 생길 것이라고 본다. 이 창은 매우 자연스러우며 생생함을 제공한다.

비즈니스도 이 창으로 이동할 것이다. 사물인터넷(IoT)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인공지능이 이를 분석하며, 그 결과는 인공현실이라는 창을 통해 보여준다는 뜻이다. 한국은 인공현실 비즈니스와 기술력 측면에서 일본에 비해 뒤처져 있다. 인공지능과 인공현실이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창환 = 사실 감정과 구매 패턴은 연관성이 매우 높다. 물건을 파는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의 감정을 잘 분석해 매출이 1~2%만 올라도 큰 득이 된다. 뇌 과학에 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더 비싼 물건을 선호한다. 감정을 읽을 수 있으면,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다.

윤경림 =실제로 사람의 눈동자가 어느 곳을 쳐다 보는지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와 광고를 배포하는 기술까지 나왔다.

2017년 12월7일 조선비즈 지성연결센터에서 열린 로그인 투 매트릭스 좌담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는 모습.

한국 사회의 대응과 문제점

― 4차 산업 혁명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하면서 규제 이슈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규제 상황은 어떤가. 유전체 분석 비용이 크게 저렴해져 실리콘밸리에서는 건강 검진 비용뿐만 아니라 개인 유전체 분석 비용까지 복지 차원에서 제공해주는 회사가 꽤 늘었다.

김정민 제노플랜코리아 연구소장 = 최근 유전체 분석 기술을 노화 방지나 질병 치료에 활용하는 사례가 많이 늘어났다. 유전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자를 수 있는 3세대 유전자 가위 기술인 '크리스퍼(CRISPR/Cas9)'도 주목받는다. 줄기세포로 장기를 만들 수 있는 기술도 진일보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2004년에 제정돼 2005년부터 시행 중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이런 기술을 연구활용하는 데에는 제한이 많다.

김정민 제노플랜코리아 연구소장

바이오 연구의 목적은 크게 치료와 진단으로 두 영역으로 나뉜다. 우선 치료 연구에서는 사람에 적용해야 하는 임상 연구가 있고 사람에는 적용하지 않는 비임상 연구(기초연구)가 있다. 법은 비임상 연구도 제한을 많이 하는 데, 많은 바이오 연구자들이 비임상 연구는 원천 기술 확보 차원에서 허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단 연구에서도 마찬가지다. 혈액, 타액, 소변 등만으로도 여러가지 질병을 확인하고 발병 요인을 추적할 수 있는데, 이 역시도 법 규제로 연구 범위가 제한돼 있다.

나는 언론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론이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고 지적만 할 것이 아니라, 각계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해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면 좋겠다. 언론이 대안을 잘 제시해야 포지티브 규제(법에 나열된 것만 허용하는 방식)에서 네거티브 규제(법으로 금지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는 방식)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윤경림 = 모든 문제를 끝까지 파보면, 결국 데이터에서 걸린다. 4차 산업 혁명의 핵심은 IoT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고 클라우드로 올려 중앙에서 저장해 분석을 한 뒤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정보보호와 보안 등의 이슈와 부딪힌다.

데이터의 분석은 중앙화(centralized)하지만, 데이터의 안전은 탈중앙화(decentralized)할 수 있다면, 데이터를 둘러싼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많은 사람이 주목하는 블록체인의 개념을 활용하면 양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바이오 사업을 해보니, 상용화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 KT 자회사 중에는 바이오인포매틱스 사업을 하는 회사가 있다. 유방암 유전체를 분석해 처방할 수 있는 진단 키트를 제공한다. 진단 키트를 만든다고 곧 팔 수 있는 게 아니더라. 병원가서 임상하고 보험수가까지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 4차 산업 혁명 기술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가상현실 기술만 해도 수십 년 전 공군들이 쓰는 시뮬레이터에서 출발한 것이다. 기술이란 분야별로 쭉 진전돼 오는 것이다. 나는 4차 산업 혁명에서 기술보다 혁명이라는 말에 더 주목한다. 조금 개선하는 것은 혁명이 아니다. 기존 체제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혁명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 정부의 정책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에 여러 문제가 있기 때문에 벤처 기업과 중소 기업을 키운다는 식이어서는 안된다. 국가의 틀을 어떻게 혁명적으로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한국에서 3차 산업 혁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3차 산업 혁명은 인터넷의 발달로 모든 비즈니스가 인터넷 공간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비즈니스가 별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 인터넷 금융 서비스도 비실비실하다. 미국 아마존은 얼마나 앞서가나.

임창환 =뇌과학과 신경공학은 의료 기기를 다루는 의공학과도 관계 있다. 중국의 사례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집속 초음파를 이용한 하이푸(HIFU) 치료기기 분야에서는 중국이 전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자랑한다. 다른 국가들이 규제 때문에 인체 실험을 하지 못할 때 중국은 수많은 임상을 했다. 인간의 뇌에 칩을 삽입하는 게 허용된 나라도 미국과 중국밖에 없다. 앞서 지적이 나왔듯이 한국은 '비임상' 의료 부문의 규제가 심하다.

―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성숙한 사회에서 규제를 혁파하기가 정말 쉽지 않아 보인다. 해법이 있을까.

이병태 KAIST 교수

이병태 = 모 대기업의 경우 유전병을 연구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유전자 병을 동시에 찾아내는 칩을 연구 중이다. 국내에서는 규제 이슈도 있고 수요도 크지 않다. 뜻밖에 사우디아라비아 병원에서 이 기술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왕족끼리 결혼하니, 유전병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법에 따르면, 근친 결혼 전에는 유전병 가능성을 미리 확인해야 하는 의무 조항이 있다. 한국에서 규제 풀리는 데는 시간이 정말 오래 걸릴 것이다. 기업가 정신으로 시장을 찾아 해외로 나가는 것이 답이다.

대의명분이 있는 프로젝트는 이해 관계를 조정하며 규제를 푸는 것이 조금 더 쉬울 수 있다. 가령, 한국은 자살률이 높고 자동차 사고당 사망률도 상당히 높다. 이런 문제를 혁신 기술로 해결하면 어떤가.

김홍진= 동부팜한농과 LGCNS가 대규모 스마트팜 사업에 나섰지만, 농민 단체의 반대로 하지 못했다. 국민들이 좀더 편하게 상비약을 구매할 수 있도록 편의점에서 유통하는 의약품 종류를 늘리면, 약사들이 목숨 걸고 데모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결국 기득권의 반대를 어떻게 해결하냐의 문제인데, 이는 국가 철학을 재정립해 '톱 다운' 형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가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우 의료 정보를 공유 체계 구축을 직접 진두지휘 하기도 했다.

윤경림= 어떻게 보면, 규제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해관계자의 균형점이다. 이해관계자들이 엄청나게 싸운 후 합의한 지점이다. 그래서 규제를 푸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 그만큼 싸워야 혁파가 가능할 수도 있다.

나는 정부의 스마트한 진흥 정책에 답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규제 권한을 가진 정부가 초기 비즈니스의 책임을 갖고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면, 규제 이슈도 풀리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가령, VR과 같은 미래 융합 사업의 경우 기업 입장에서도 해보지 않은 일이고 불확실하니까 여러가지로 두려운 게 사실이다. 정부가 나서서 실증하고 판을 만들수 있다. 공무원들은 형평성 이슈와 문제 소지를 없애는 걸 가장 중요시한다. 공무원에게 이런 부담을 덜어주고 합리적인 인센티브를 주면서 신사업의 규제를 하나씩 풀어나가게 하면 어떨까.

김홍진= 그런 관점에서 국가 조달 제도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조달 제도를 이용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사업이 확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실험을 권장하는 정부의 공동 구매가 많다.

이병태 = 사실 공공 빅데이터와 비즈니스 데이터를 결합하면 엄청나게 유용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우버 택시의 승하차 데이터와 뉴욕 카운티의 강도 및 성폭행 데이터를 연동하면, 매우 유효한 정책 인사이드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공무원 입장에서는 일을 잘해도 큰 효익을 얻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일이 잘못되면 책임을 많이 져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공공 데이터와 비즈니스 데이터를 결합하지 않으려고 한다.

또 의료 데이터와 관련한 개인 정보 보호법이 완화되더라도 의사들의 전문성이 결합하지 않으면, 새 비즈니스 모델이 나오기 힘들다. 이 역시 비영리법인으로 병원을 운영해야 하는 법 때문에 의사도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병원 경영진도 새 사업에 투자하지 않으려고 한다. 규제 완화 뿐만 아니라 인센티브와 패널티도 잘 디자인해야 한다.

― 한국의 벤처 기업 투자 문화는 어떠한가.

이병태 = 벤처는 성장하는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지는 것인가. 미국의 한 논문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곰곰이 따져보면, 오늘날 기업은 태어날 때부터 대기업이다. 페이스북은 1조원 이상 투입돼 만들어진 기업이다. 우버에는 지금까지 16조원이 투자됐다.

최근 나온 경제협력개발기구(OLED)의 벤처 투자 리포트를 보면, 우리나라 벤처캐피탈 투자 규모는 의외로 국내 총생산(GDP) 대비 4위나 된다. 성장률도 3위다. 그런데 투자 건수당 금액은 정말 적다.

반면 이스라엘의 경우 건당 투자 금액이 미국하고 별로 차이가 없다. 이스라엘 기업들은 국내 인구가 800만명 밖에 안되니까 내수 시장은 없다고 생각하고 글로벌 무대를 처음부터 겨냥한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혁신 기업이니 큰 규모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요즘 같은 글로벌 경제 시대에 1억~2억원을 줘서 20년 후 대기업을 만들자는 것은 말이 안된다.

임창환 = 장기적인 안목에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투자하는 위험 자본이 필요하다. 미국 해마 칩을 만드는 커넬(Kernel) 이라는 벤처 회사는 벌써 상당한 자금을 유치했다. 사실 투자 이익을 거두려면 10년 이상 세월이 필요하지만, 인내하며 기다리는 위험 자본이 있는 것이다. 한국의 벤처 캐피탈은 2-3년 정도만 내다본다.

생각해보자. 90년대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던 사람들이 곧 50대가 된다. 앞으로 10년쯤 지나서 이들이 노년층이 되면 게임을 이용한 인지 재활이 큰 시장이 될 수 있다. 이렇게 긴 안목으로 투자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김홍진 =판돈이 모자랄수록 선택과 집중을 잘 하고 될 만한 기업이나 프로젝트에 크게 베팅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70개가 넘는 공공 기관이 수백개의 과제를 통해 수천 개의 스타트업에 1억원도 안되는 돈을 골고루 나눠주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 보안 관련 기업이 얼마나 많았나. 보안이 실로 중요한 세상이 됐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한국 보안 기업은 없다. 자격 안되는 기업에 돈을 주는 것은 투자 프로그램이 아니라 구제 프로그램이다.

국가 주도의 연구개발(R&D)도 재검토해야 한다. 연구체계, 분야, 예산, 관리 등 전반적인 재정립이 필요하다. 30-40년 전에는 민간의 자본과 인력이 부족해 국가 주도로 R&D를 했지만, 그 시절의 체계를 오늘날에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민간이 더 잘할 수 있거나 투자가 가능한 부분은 민간에 이양하고, 국가는 장기적이거나 민간이 투자할 수없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

이병태= 모든 것을 정부가 해결해야 된다는 도그마에서 못 벗어나는 것도 문제다. 시장에서 통하는 것은 키우고 안되는 건 빨리 죽여야 한다. 정부가 개입하면 개입할 수록 형평성 문제, 나눠주기식밖에 안된다. 좀비 기업이 많으면 혁신 기업은 살아남을수가 없다. 가령, OO 창조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 중 망한 기업이 없다. 정부와 대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연명하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포함해 민간 영역에서도 20년 이상 내다보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한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렇게 길게 내다보고 매니지먼트(경영)하는 문화가 아니다. 단기 성과에 급급해 하는 전문 경영인만 있다. 또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데도 각종 규제를 받아야 한다. 대기업의 손자회사의 경우에는 100% 지분을 확보하지 않으면 매각해야 한다. 계열사 숫자가 늘어나면 문어발 경영이라고 한다.

인류의 과제

― 마지막으로 한국을 넘어 인류의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 취재를 해보니, 갈고닦은 기술을 가진 장인도 AI에 따라 잡힐 수 있더라. 실리콘밸리에서는 ‘화려한 공산주의'라는 조류까지 생겨났다. 인류는 어디로 가나.

김홍진=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는 세상이 온다. 아마존이라는 회사 하나 때문에 100년 된 미국 백화점과 장난감 가게 토이저러스가 망한다. 나는 불연속 사회라는 표현을 쓴다. 이 불연속 선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하는 데 많은 사람이 연속선상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경영전략가 개리 해멀이 말했듯이 20세기 경제학 이론으로는 21세기를 경영할 수 없다. 출퇴근 카드 체크 시간을 점검해 근태를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혁명적 물결을 타고 넘어갈 수 없다.

이병태 = '수퍼 스타 이코노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1등 하는 기업이 이익을 다 가져간다. 소비자가 차별화한 제품에 쏠리는 현상도 뚜렷하다. 또 전 세계 메가시티들은 탤런트(인재) 유지 경쟁을 벌이고 있다. 누가 가장 똑똑한 사람을 데려오는가가 도시와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수학능력 시험 제도를 아무리 바꿔도 소용없다. 인재를 끌어올 수 있는 개방성(openness)이 있어야 한다.

김영란법처럼 국내 우수 인재들이 역차별을 받는 법도 손질을 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가 미국 유명 교수를 부르면서 강연료로 1200만원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국립 교수들은 30만원 이상 받으면 안된다.

김정민 = 4차 산업 혁명은 다양성에서 나온다. '톱 다운' 방식의 획일적인 사고는 4차 산업 혁명의 다양성을 꽃피우게 할 수 없다. 사회환경적으로 다양성을 보장할 수 있는 인프라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

유전자 편집 기술의 발달로 인간을 개량하는 우생학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도 있다. 언젠가는 그런 시대가 올 것이다. 하지만, 이는 먼 훗날의 일이다. 2003년 인간 게놈을 해독한 후 15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너무 앞서간 우려도 적지 않다.

오히려 개인 유전체 분석 시장이 발전하면 각 개인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생활 습관을 안내해 줄 수 있다. 개인맞춤 정밀의학의 진전으로 약물의 효능은 극대화되고 부작용은 최소화될 것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해외 유전체 전문 기업에 지배 당해서는 안된다. DNA칩, 유전체 장비 분석 시장은 해외 업체에 내주었지만, 바이오마커 발굴 등 콘텐츠 분야까지 내줄 수는 없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도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를, 어떠한 규제를 걷어내야 하는지를 주의 깊게 고찰해야 할 것이다.

윤경림 = 회사에서 바이오 관련 융합 사업도 맡다 보니, 아주 가끔 '이거 해도 되나' 싶을 때가 있다. 큰 데이터를 만지는 비즈니스를 보면, 과연 미래 사회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 지 그게 인류한테 좋은 방향인지 고민스러운 것이다.

기술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는 데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고찰하는 사람은 적다. 인문학의 힘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미래 사회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게 비즈니스의 가이드가 되기 때문이다. 기술자와 인문학자가 서로 가깝게 만나고 많은 토론을 할 때다.

임창환 한양대 전기생체공학부 교수

임창환= 언론들은 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부추긴다. 사람이 가진 직업을 다 빼앗을 것처럼 말한다. 나는 인간과 인공지능이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아이언맨'에 나오는 자비스처럼 인간의 제한된 감각, 인지, 기억 능력을 보완해 주는 것이다. 대중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는 게 시급하다. 전문가, 비전문가가 다 같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이병태= 사실 언론 종사자에게 부탁의 말씀이 있다. 우리 사회가 어떤 이슈에 대해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비판적이다. 공포 마케팅이 잘 통하는 사회다. 인간은 원래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하지만 균형감 있는 시각이 중요하다.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 폴 크루크먼도 인터넷이 처음 나왔을 때 “팩스만큼의 영향력도 못 줄 것”이라고 했다. 가령,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해서도 너무 부정적으로 본다. 버블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현재 2000개가 넘는 화폐가 어떻게 다 성공하나. 미국, 영국의 설문조사하면 응답자의 70%가 인공지능에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데, 한국에서 조사하면 응답자의 70%가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사회자 = 균형 잡힌 보도, 깊이 있는 보도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새겨 듣겠다. 바쁜 시간에 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