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진입에 맞춰 경제정책의 초점을 '삶의 질(質)' 개선에 맞추기로 했다.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양(量)적인 성장에만 매달리지 않고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등 친(親)노동 정책을 통해 분배 개선에 본격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확대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일자리·소득 여건을 개선한다'는 내용의 '2018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경제정책방향'에 분배를 뜻하는 '삶의 질 개선'이 주요 과제로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대 정부는 '선(先)성장-후(後)분배' 기조에 따라 성장 전략 위주로 경제정책방향을 짜왔다.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 김광두(왼쪽)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입장하고 있다.

'삶의 질' 악화를 이례적으로 강조

정부는 내년 경제정책방향 보도자료에 우리나라 '삶의 질' 지표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권으로 나쁘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OECD가 38개 주요국의 삶의 질 순위를 평가한 결과, 우리나라 순위가 2014년 25위에서 2017년 29위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특히 '삶의 질 지수' 세부항목별로 ▲고용(최장 근로시간) 35위 ▲건강 38위 ▲주거(집값 등) 27위 등 하위권인 지표를 강조했다. 그동안 경제정책방향에서 나쁜 지표는 대부분 감추고, 정부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것과 비교할 때 이례적이다. 정부는 나쁜 삶의 질 지표를 내세워 분배 개선에 치중하는 내년 경제정책방향의 정당성을 확보하려 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내년 경제정책방향은 파이를 키우기보다는 나눠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재정 투입해 일자리 32만개 창출

정부는 '일자리·소득 주도 성장' '혁신 성장' '공정 경제'를 내년 경제정책방향의 3대 전략으로 제시했다. 이 가운데 가장 강조한 게 일자리다. 정부는 내년 일자리 증가 목표로 올해와 비슷한 32만개를 잡았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많은 경제연구기관이 내년 일자리 증가폭이 30만개를 밑돌 것으로 전망하는 데 비해 정부 전망이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창출의 주된 수단은 정부 돈(재정)이다. 중소기업이 청년을 3명 신규 채용할 경우 1명분 연봉을 정부가 지원해준다. 일자리 창출 성과를 빨리 내기 위해 내년 일자리 예산(19조2000억원)의 34.5% (6조6000억원)를 1분기(1~3월)에 집행하기로 했다. 육아휴직한 직원의 고용을 유지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도 신설한다. 공무원 외에 공공기관 신입 채용을 늘리기 위해 산업은행 등 금융 공기업 중심으로 공공기관 명예퇴직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도 적극 추진한다. 중소·중견기업이 근로시간을 줄여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2년간 인건비 일부를 정부가 지원하고, 근로시간 단축에 따라 임금이 줄어든 중소·중견기업의 기존 인력에 대해서는 정부가 임금을 일부 보전하기로 했다. 정부기관이 솔선해 '연가저축제'도 적극 확산시키기로 했다. 사용하지 않고 남은 연가 일수를 최장 3년까지 이월해서 몰아 쓸 수 있게 하는 제도다.

혁신 성장은 재탕·삼탕 대책

내년 소득 확대 정책의 핵심은 이미 발표한 최저임금 인상이다. 정부는 내년 시간당 임금을 올해보다 16.4% 인상된 7530원으로 올리면서, 임금 부담을 더 지게 된 고용주들에게 3조원의 일자리안정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근로자와 성과를 공유하는 중소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건강보험 보장 범위는 현행 63% 안팎 수준에서 70%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확대된다. 자기공명영상장치(MRI), 로봇 수술 등 3800여 개 비급여 진료 항목이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전환된다. 이 밖에 실업급여 지급 수준을 현행 퇴직 전 9개월 월급 평균의 50%에서 60%로 올리고, 장래 소득을 감안해 학자금을 지원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반면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혁신 성장' 전략은 재탕 삼탕식 대책이 많다. 자율주행차·드론 등 8개 핵심 선도 사업 지원이나 빅데이터 활용 산업 육성 등은 이미 발표된 대책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정부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진한다고 강조하지만, 성장의 주체인 기업의 투자를 유도하는 내용은 보이지 않는다"며 "기업들의 숙원 사항인 노동시장 개혁이나 규제 완화 분야의 구체적인 대책도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