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최근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이 탈원전과 관련한 UAE의 불만을 무마하는 것이란 의혹이 커지는 가운데 UAE가 국교 단절과 국내 기업의 원전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소문까지 퍼지면서 국내 건설업계가 수십조원대에 달하는 수주 물량을 놓치게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직 의혹 수준이지만, 청와대 비서실장의 UAE 방문이 원전과 관련 있고, 또 UAE가 국내 기업들에 원전 공사 계약 해지를 통보한다면 국내 원전산업은 치명타를 입게 될 가능성이 크다. 계약 액수로만 따져도 75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수주 금액이 날아가게 된다. 계약이 해지될 경우 시공 잔액과 한국전력의 향후 운영 수익 등 실제 피해 예상액은 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UAE 특사파견과 관련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UAE 원전 공사·운영 계약만 75조원…무산되면 중동수주 최대 위기

한국전력·두산중공업·현대건설·삼성물산으로 구성된 한국 컨소시엄은 2009년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186억달러(21조원)짜리 140kw급 신형 원전 4기 건설사업을 수주했다. 2016년에는 한전이 이 원전의 운영권 획득 계약을 494억달러(54조원·60년기준)에 수주했다. 특히 운영권 획득 계약액인 54조원의 경우 이미 매출로 잡힌 게 아니라 한전이 60년간 전력판매와 원전운영 등을 하며 앞으로 벌어들일 돈이다.

당장 75조원짜리 사업이 흔들리는 것도 문제긴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앞으로 중동 시장 진입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동의 경우 상대국과의 인간적인 신뢰 관계가 경제·산업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2009년 UAE 원전 수주 당시에도 원전 결정권을 쥐고 있던 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왕세자에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차례 전화를 하며 세일즈 외교를 펼친 게 도움이 됐다. 만약 그동안 쌓아왔던 신뢰를 이번에 잃게 된다면 수주를 위해 앞으로 몇 년간은 중동의 문을 처음부터 다시 두드려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동 시장 자체가 우리 건설사로선 수주 텃밭이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이달 21일까지 해외시장에서 총 287억달러를 수주했는데, 이중 중동 수주가 143억달러에 이른다. 건설업계가 해외 수주 다각화를 펼치고는 있지만 여전히 전체 수주의 절반은 중동에 쏠려 있다. 나라별로 보면 이란과 오만의 수주액이 각각 52억달러, 20억달러로 가장 많고 UAE가 16억달러로 그 뒤를 잇고 있다.

정부 믿고 원전 사업 뛰어든 기업도 타격

국내 기업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 UAE 원전사업 시공사로 참여한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의 경우 각각 3조4977억원, 2조8499억원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아직 공사가 마무리지 않아 공사비를 모두 받지 못했다.

현대건설의 UAE 원전 건설공사 진행률은 올해 9월 말 현재 87%로, 미청구공사 금액은 2155억원이다. 삼성물산은 진행률이 86.9%이며, 미청구공사금액은 910억원에 달한다. 두산중공업은 바라카원전 1~4호기 원자로 설비를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는데, 공사 진행률은 1, 2호기가 97%, 3, 4호기가 87%다.

미청구공사 금액은 공사 진행률에 따라 매출로 잡혀있지만, 아직 발주처에 청구하지 않은 공사대금을 말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UAE를 포함한 중동시장은 전통적으로 국내 건설사의 수주 텃밭이었기 때문에 임 비서실장의 UAE 방문 의혹이 괜히 불똥으로 튀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업계에 팽배하다”고 말했다.

한편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21일 임 비서실장의 UAE 특사 파견 의혹과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UAE 간 원전 수주에서 뒷거래가 있었던 걸로 판단하고 뒷조사를 하다가 일어난 참사”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지금 제기하는 핵심의 의혹은 문재인 정권이 MB의 뒤꽁무니를 캐기 위해 UAE 원전 사업의 계약 과정을 들여다보다 발각됐고 국교단절과 원전 사업 중단 우려라는 엄청난 위기가 초래된 것”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10일 청와대는 임종석 비서실장이 해외 파견부대 장병을 격려하기 위해 UAE로 갔다고 밝혔다가, UAE 원전 책임자와 임 실장이 같이 있는 사진이 공개되자 19일 다시 “양국 파트너십을 강화하러 갔다”고 해명했다. 21일에는 다시 “박근혜 정부에서 서운한 일이 있었다”고 말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