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9일 "국내 기업들의 내년 탄소배출권 할당량을 5억3846만t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탄소배출권 할당량 결정은 법정 시한인 지난 6월 말보다 6개월가량 늦어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탈(脫)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이 바뀌면서 벌어진 일이다.

더욱이 오는 2020년까지 3년분의 할당량 전체가 이번에 정해져야 했는데, 내년 한 해분만 결정돼 어정쩡하게 봉합됐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탄소배출권 할당량 결정을 연말까지 미룬 데다 그마저 미완성 상태로 나오면서 관련 기업들은 향후 사업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됐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포함한 '제2차 계획 기간(2018~2020년) 배출권 할당 계획'을 의결했다.

탄소배출권 할당, 6개월 지각에 미완성 결정

탄소배출권은 국제사회가 합의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제도이다. 정부가 매년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들의 탄소 배출 총량을 정한 뒤 배출권을 할당해준다.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돈을 받고 팔 수 있고, 모자란 기업은 돈을 주고 사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5년부터 탄소배출권 제도를 시행했다.

탄소배출권 할당 계획은 3년 단위로 세우는데, 계획 기간이 시작되기 6개월 전에 수립돼야 한다고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규정돼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018~2020년 할당량 결정은 올 6월 말까지 내려졌어야 했다. 이번 결정이 6개월 가까이 늦게 나온 이유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정부가 탈원전으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바꾼 탓"이라고 밝혔다. 전력 수급 계획이나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새로 짜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이번 탄소배출권 할당량 결정은 6개월 지각 결정인 데다 미완성 상태로 나왔다. 전체 계획 기간의 3분의 1에 불과한 내년 할당량(5억3846만t)만 정해진 것이다. 내년 할당량은 제1차 계획 기간(2015~2017년)의 연평균 할당량과 같다. 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연말까지 결정을 미루다가 기업들로부터 '새해 사업 계획 세우기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오자 손쉬운 숫자를 선택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탈원전 정책 탓에 탄소배출권 결정 늦어져"

오는 2020년까지 적용될 탄소배출권 전체 할당량 확정은 내년 상반기로 미뤄진 상태다. 구체적인 내용은 탈원전을 기반으로 하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의 향방에 달려 있다. 최종 결정이 나올 때까지 탄소배출권 적용을 받는 기업들은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해마다 수십억원어치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할당량이 확정되지 않으면 해당 예산 책정, 재원 마련 등 중장기 계획 수립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

탄소배출권 할당량 이외에도 미정 상태인 핵심 요소들이 있다. 배출권 일부를 돈을 받고 기업에 주는 '유상 할당', 동일 업종 평균보다 탄소 배출이 적은 기업을 우대하는 '벤치마크 할당 방식 확대' 등에 대한 결정도 내년 상반기로 늦춰졌다. 관련 기업들은 앞으로 배출권 할당을 받으려면 돈을 내야 하는지, 경쟁 업체에 비해 배출권 할당에서 유리한지 등을 아직 알 수 없어 이와 관련한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탄소배출권 관련 업무가 기재부와 환경부로 이원화된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 탄소배출권 운영은 작년 6월 환경부에서 기재부로 넘어왔다가 이번에 다시 환경부로 돌아가게 됐다. 하지만 탄소배출권 할당량을 결정하는 할당위원회는 그대로 기재부에 남게 된다. 하나의 업무가 두 부처로 나뉘면서 혼선이 빚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탄소배출권 거래제

정부가 매년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의 탄소배출 총량을 정한 뒤 배출권을 할당해주고, 배출권이 모자라는 기업은 남는 기업에 비용을 지불하고 사서 쓰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은 남거나 모자란 배출권을 한국거래소의 배출권 시장에서 사고팔 수 있다. 온실가스를 많이 내는 기업에 비용을 부담하게 해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