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22년까지 전기차 35만대를 보급하고 관련 일자리를 늘리겠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전기차 보조금 규모 축소와 규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친환경차 보급을 놓고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와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 환경 규제를 담당하는 환경부가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기차 시장 성장시키겠다면서 보조금은 줄여

산업통상자원부는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 '새 정부의 산업정책 방향'을 보고하면서 2022년까지 전기차 보급 대수를 35만대 늘려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내용을 포함시켰다. 올해 11월까지 국내에 누적 판매된 전기차 대수가 2만3933대임을 감안하면, 향후 5년간 32만6067대의 전기차를 보급하겠다는 것이다. 1년당 6만5200여 대를 보급해야 목표를 맞출 수 있다.

하지만 환경부는 당장 내년부터 전기차 보조금을 올해보다 1대당 200만원 축소한다. 또 1회 충전 시 주행거리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적용한다. 올해 전기차를 살 때 국고 보조금 최대 1400만원과 지자체 보조금 최대 1200만원 등 총 2600만원의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보조금을 지급하는 전기차 대수도 2만대뿐이다. 지난 10월 환경부가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를 통해 조사한 수요(4만9630대)의 절반도 안 된다. 당초 환경부는 전기차 3만대분의 보조금 예산을 기획재정부에 올렸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에서는 2만대분의 보조금만 책정했다. 환경부는 "내년 전기차 보급 대수 2만대는 올해 1만4000대보다 늘어난 것"이라고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서는 "넘쳐나는 수요의 절반도 안 된다"며 "정부의 전기차 보급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반응이다.

◇자동차 업체들 줄어든 보조금 먼저 타내려 비상

이에 따라 자동차 업계엔 비상이 걸렸다. 업체들은 환경부의 수요 조사를 보고 내년 출시할 전기차 대수를 4만여대로 설정해 경영 계획을 짰다. 하지만 보조금 규모가 2만대에 그치면, 내년 판매되는 전기차도 그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보다 비싼 전기차를 보조금 안 받고 구입하려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계약 후 2개월 내에 차량이 인도돼야 보조금이 지원되는 현재 구조상, 출시 시기가 늦은 전기차는 보조금이 다 떨어져 못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업체들은 전기차 출시 시기를 최대한 앞당기고 있다. 한 수입차 업체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로 예정됐던 국내 출시 일정을 당기기 위해 글로벌 본사와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시장이 형성되기도 전에 보조금을 줄이는 것은 전기차 산업에 절대로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업계, "정부가 전기차 시장 성장 부담을 민간에 떠넘긴다" 반발

정부는 다른 정책을 통해 전기차 시장을 육성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 추진 중인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와 '친환경차 의무 판매 제도'다.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는 배출·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자동차를 구매하는 사람에게 부담금을 걷어 배출·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친환경차에 주는 보조금의 재원으로 쓰자는 것이고, 친환경차 의무 판매제는 일정 비율 이상의 친환경차를 자동차 업체들이 의무적으로 판매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는 "이 두 가지 정책은 전기차 육성책이 아니라 전기차 부담 떠넘기기 정책"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국고를 쓰지 않고, 기업이 내연기관차를 팔 때 소비자가 내는 부담금으로 전기차 보조금을 주는 식으로 기업에 전기차 시장 육성 부담을 미룬다는 것이다. 또 의무 판매 제도에 따라 친환경차를 많이 팔지 못하는 업체는 당연히 부담이 가중된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나라 중 이 두 정책을 동시에 쓰는 나라는 없다. 친환경차 협력금 제도는 자동차 생산국 중 프랑스만 유사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고, 의무 판매 제도는 테슬라가 있는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와 중국(2019년 실시 예정)만 도입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프랑스는 소형차 위주의 자국 자동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에 따른 부담금을 책정한 것이고, 중국은 판매량이 다른 글로벌 업체보다 적은 자국 전기차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의무 판매제를 도입하려는 것"이라며 "처한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따라 하기만 하다가 전기차 육성은커녕 한국 자동차 산업의 기존 강점도 잃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