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문구 제조 업체 K사의 공장. 직원 30여명이 공책과 모눈종이·원고지 등 온갖 서식의 종이를 기계로 찍어내 비닐로 포장하거나 배달용 트럭에 싣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현장에는 이 회사 사장 박모씨 부부와 두 아들, 며느리까지 일가족 5명이 직원들과 함께 종이 포장과 배달 일을 하고 있었다. 이 회사의 연간 매출액은 40억원 안팎이다. 이 회사 박 대표는 "지금 공장을 압축 비닐 포장팩을 싸듯 조일 대로 조여 유지하고 있는데, 내년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직원들을 내보내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며 "직원들을 전부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해고만큼은 절대 안 한다는 게 창업 60년 기업의 자부심이었는데 현장을 모르는 정부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고 했다. 이 회사는 현재 35명인 직원 수를 29명으로 줄이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그래야 내년에 정부의 최저임금 지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저임금 대책으로 직원 수 30인 미만의 영세 기업과 소상공인에 2조9707억원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내년에 공장 폐업 검토"

본지의 '중소기업 경영자 대상 긴급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62.2%)이 '내년에 신규 채용 계획이 없다'고 답한 배경에는 영세 중소기업들이 견디기 어려운 추가 인건비 부담이 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추산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업들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인건비는 총 15조2458억원이다. 현재 국내 중소기업들 가운데 40% 정도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못 내는 현실에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대응책으로 '직원 감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2일 충북 충주시의 중소 제조업체 T사에서 한 직원이 생산기계를 만지고 있다. 이 회사는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되자 올해 신규 채용을 5명 줄이고, 일본에서 자동화 설비를 구입해 내년부터 가동할 예정이다.

인천광역시에 있는 주조 업체 S금속사(社)의 신모 대표는 "현재와 같은 최저임금 상승을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 공장을 접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직원 25명인 이 회사는 한 달에 8000만원 안팎의 인건비를 지출하고 있다. 내년부터 월 인건비가 1000만원가량 늘어나는 상황이다. 신 대표는 "3년째 1억원 안팎의 적자를 보면서도 회사를 끌고 왔지만 이제 한계가 보인다"며 "앞으로도 최저임금 추가 인상이 있다고 하니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다"고 했다.

중소기업계 한 관계자는 "주조, 용접, 금형, 열 처리, 표면 처리와 같은 영세 제조업 분야에서는 연쇄 도산 위기설까지 등장할 정도"라고 말했다. 흔히 뿌리 산업으로 불리는 이런 제조 분야에서는 2만6300여 중소업체가 50여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고용이 흔들리면 국내 전체 고용 환경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전체 근로자 가운데 87%(1311만명·이하 OECD 집계)가 중소기업(종업원 수 250명 미만)에서 일한다. 국내 중소기업 근로자 비중은 미국(41.33%)·일본(52.8%)·영국(53.08%)·프랑스(63.3%) 등 주요 국가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우리나라가 최저임금 변동에 가장 취약한 경제 구조라는 것이다.

해외로 공장 옮기는 중소기업들

중소기업연구원의 노민선 연구위원은 "급격한 최저임금의 인상, 근로시간 단축과 같은 고용 환경 악화가 국내 고용을 떠받쳐온 중소기업을 해외로 떠미는 역할을 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국내 대기업들이 2000년대 초반부터 중국·동남아 등지로 제조 기지를 대거 옮겨간 데 이어 중소기업들도 한국을 등지는 현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수출입은행의 집계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들이 올 1~9월 해외에 투자한 금액은 56억2455만달러(약 6조1250억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 늘었다. 현재 추세라면 역대 최고였던 작년(연간 61억747만달러) 기록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해외 법인 설립도 작년 같은 기간보다 8.4% 증가한 1379개였다. 자금 여유가 있는 중소기업은 값싼 인건비를 찾아 해외로 공장을 옮기고 영세한 중기는 한국에 남아 인력 감축으로 간신히 버티는 상황인 셈이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임원인 한 중소기업 대표는 "현 정부 인사에게 최저임금 때문에 많은 중소기업이 사업을 접어야 할 실정이라고 했더니 '실적을 더 낼 궁리를 해야지 최저임금 탓만 하면 안 된다'고 답했다"면서 "버틸 자신 없으면 기업을 정리 하라는 소리로 들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