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2~3년간은 완만하게, 그 이후엔 뚜렷하게 개선”...변수는 유가와 환경규제

작년에 최악의 수준이었던 전 세계 선박 발주량이 올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유가도 꿈틀대고 경기 회복세도 이어지고 있어 내년 발주량은 올해보다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조선 업황이 작년에 바닥을 찍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작년 ‘수주 절벽’ 여파로 조선업체들이 내년에도 일감 부족에 시달릴 것으로 예상되지만 발주량이 예상대로 는다면 2019년부터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관심은 조선업이 어떤 패턴으로 회복세를 탈 것인가에 모아진다. 전문가들은 과거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던 고유가 시대와 같은 조선업 활황세가 재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셰일가스 증산 가능성과 세계 경기를 감안할 때 유가가 그 정도까지 급등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전망하는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내년 유가가 배럴당 50달러대 안팎을 오갈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렇다고 조선업의 좋은 시절이 가버린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조선 업황이 향후 2~3년 완만하게 좋아진 뒤 이후에는 개선세가 뚜렷해지는 ‘나이키형’ 패턴을 그릴 것으로 예상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운임, 물동량 움직임을 감안하면 시장 상황이 작년에 바닥을 찍고 올라오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조선업황은 2020년까지는 완만하게, 이후에는 더욱 뚜렷하게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내년 3~4% 물동량 증가에 따라 선박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전망되는 벌크선(철광석, 석탄과 같은 원자재나 곡물을 실어나르는 선박)을 비롯해 유가 상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해양플랜트(바다에서 원유·천연가스를 뽑아 올리는 시설), 가스선 등의 발주가 내년에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업체들이 강점을 지닌 유조선 발주도 내년에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변동성이 심한 유가와 선박 환경 규제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한영수 삼성증권 연구원은 “2014~2016년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대형 조선사들에게 내년은 미래 이익을 결정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 발주(톤수) 급증한 유조선…내년은 환경규제·유가가 변수

유조선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발주되는 선박이다. 한국 조선업체가 강점을 가진 선박 중 하나다. 유조선은 크게 원유를 저장하는 탱커(Tanker)와 석유제품 운반선, 화학제품 운반선으로 구분한다.

영국계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선박 625척 중 31.4%인 196척이 유조선이었다. 한국 업체는 유조선 전체 발주 물량의 43.4%인 85척을 가져갔다. 올해 10월까지 발주된 유조선 선박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의 198척과 비슷하지만 CGT(Compensated Gross Tonnage·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무게 단위) 기준으로는 330만 CGT에서 510만 CGT로 55% 늘었다. 이는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처럼 비싸고 만들기 어려운 배의 발주가 늘었다는 말이다.

한국 조선업체들은 11월과 12월에도 유조선을 수주했다. 이달 초 기준 수주 선박은 총 93척으로 늘었다. 이는 한국 조선업체가 올해 들어 이달 초까지 수주한 전체 선박 161척의 약 60%에 달하는 물량이다.

삼성중공업(010140)은 지난달에 캐나다 티케이(Teekay)로부터 13만 DWT(Deadweight Tonnage·배에 적재할 수 있는 화물의 최대 톤수)급 셔틀탱커(Shuttle Tanker) 2척을 약 2605억원에 수주했다. 올해 전세계에서 발주된 셔틀탱커 7척을 모두 수주한 것이다. 셔틀탱커는 해상에서 생산된 원유를 선적해 육상의 석유기지로 운송하는 선박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달 초에 장금상선, 현대글로비스 등 국내 선사 두 곳에서 VLCC 3척을 수주했다. 이로써 올해 총 44척의 유조선을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올해 수주한 유조선 선박수는 13척이다.

전문가들은 내년에 유조선 발주가 완만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석유제품·원유 물동량이 올해와 비슷하게 2.8~3.2% 증가하는데, 선박가격은 가장 비쌌을 때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30만 DWT급 VLCC의 가격은 8100만달러(882억원) 수준으로 2008년 9월 1억6200만 달러의 딱 절반이다.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작년에 워낙 발주가 없었기 때문에 작년에 하려다 미뤄둔 물량이 나오면서 올해 유조선 발주가 늘었다”며 “환경규제가 점점 강해지는 추세에서 물동량은 늘고 선박가격은 싸다 보니 내년은 올해보다 조금 더 시장 상황이 좋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유조선 발주량을 결정할 주요 변수로는 환경규제와 유가가 꼽힌다. UN(국제연합) 산하기관인 국제해사기구(IMO)는 선박평형수 등으로 인한 생태계 교란을 막기 위해 선박평형수처리장치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2020년부터 선박 연료 황산화물 함유량을 0.5% 이하로 낮추도록 결정했다. IMO 규정을 만족하려면 낡은 선박 중 일부는 아예 배를 새로 만드는 게 경제적이어서 선박 발주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조선업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유가가 오르는 추세에서는 탱커 발주가 늘고 저유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석유·화학제품 운반선 발주가 늘어나는 것으로 본다. 최근에는 원유를 탱커에 저장해 놓고 있다가 구매자가 원하는 곳으로 바로 이동하는 저장용 탱커 수요도 늘고 있다. 유가가 오르는 추세에서는 더 오르기 전에 원유를 사두려는 수요가 발생한다. 반대로 유가가 떨어지면 원유를 정제해 제품으로 팔려는 수요가 늘면서 석유제품 운반선 수요가 많아진다.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셰일오일 증산으로 국제 유가 상승이 제한될 가능성, 황산화물 규제 대응 방안으로 선주들이 구형 선박을 얼마나 폐기할지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회복 신호 보내는 벌크선·컨테이너선 운임지수

한국 조선업체들이 올해 유조선 다음으로 많이 수주한 벌크선, 컨테이너선 관련 지표들은 최근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다. 벌크선은 국내 중소 조선사들이, 컨테이너선은 중대형 조선사들이 주로 수주해 건조하는데 올들어 이달 초까지 국내 조선업체들은 벌크선 20척, 컨테이너선 21척을 수주했다.

해운업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인 발틱운임지수(BDI·1985년 1월 1000 기준)는 작년 2월 290까지 떨어졌다가 이달 8일에는 1702를 기록해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BDI는 영국 런던에 있는 발틱해운거래소가 산출하는 건화물시황 운임지수로 전세계 26개 주요 항로의 운임을 가중평균한 값이다. BDI가 1700을 넘은 것은 2014년 1월 이후 처음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교역량은 전년보다 4.2% 늘고 내년에는 4%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벌크선에 짐을 실을 수 있는 선복량은 내년에 8억2738만 DWT로 올해보다 2.69% 증가하는데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 새로 건조돼 인도되는 벌크선은 2462만 DWT로 올해보다 35.8% 감소한다. 클락슨리서치는 운임이 오르면서 내년 발주되는 벌크선이 4616만 DWT로 올해보다 약 60%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컨테이너선 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2009년 10월 1000 기준)는 이달 초 732로 작년 최저치인 400보다 83%, 작년 평균인 650보다 13% 올랐다. 하나대투증권은 내년 전 세계 컨테이너선 발주량이 95척으로 올해보다 약 50% 증가할 것으로 봤다. 3000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이하가 60척으로 올해보다 배 이상 늘고 1만5000 TEU 이상인 ‘슈퍼 컨테이너선’도 연간 25~30척 발주될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내년에 건조 예정인 컨테이너선이 많아 발주가 크게 늘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상도 있다. 클락슨리서치 등에 따르면 내년에 건조되는 컨테이너선은 188만1000 TEU로 올해 인도되는 컨테이너선(114만4000 TEU)보다 64.4% 많다. 내년에 일부 물량의 인도가 지연된다고 해도 건조량은 올해보다 30% 이상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부유식 원유생산 저장 하역설비(FPSO).

◆ 가스선·해양플랜트, 발주량 증가 기대

최근에 유가가 오르면서 액화천연가스(LNG)와 액화석유가스(LPG) 등을 운반하는 가스선과 해양플랜트의 내년 발주량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 조선업체는 올해 22척의 가스선을 수주했다. 그러나 해양플랜트 수주는 올해 1건에 그쳤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6월 모잠비크 코랄(Coral) 부유식 LNG 생산설비 프로젝트 건조 계약을 약 2조9000억원에 따냈다.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가스선 발주 물량은 총 36척, 150만 CGT로 작년 같은 기간(24척, 50만 CGT)과 비교해 CGT 기준으로 3배 증가했다. 올해 10월까지 가스선 발주액은 37억6000만달러(약 4조1000억원)를 기록했고 연말까지 발주액은 51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내년 가스선 발주액은 105억달러로 내다봤다. 올해보다는 배 이상 늘어난 수치지만, 2011년부터 2015년까지 5년간 연평균 발주액(136억달러)에는 못 미치는 수치다.

내년에 가스선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이유 중 하나는 LNG 물동량 증가다. 미국은 올해 초 중국에 LNG 수출을 허용했다. 또 미국은 2020년 완공을 목표로 LNG 수출터미널을 짓고 있다. 이 수출터미널 용량은 한국 연간 LNG 수요량의 배 수준인 74.5MTPA(Million Tonne Per Annum·연간 백만톤)에 달한다. 김현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미국 LNG 수출이 10MTPA씩 증가하면 17만㎥급 15척의 신규 수요가 발생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유가가 작년 상반기에 바닥을 찍고 오르면서 해양플랜트 발주가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도 생기고 있다. 또 광구개발에 필요한 생산설비가 가벼워지고 제조원가가 하락하면서 해양 프로젝트들의 개발원가가 낮아져 BP와 같은 글로벌 석유회사들이 발주할 여건도 좋아졌다. 유가가 오르고 개발원가가 낮아지면서 클락슨리서치는 해양플랜트 발주 물량이 올해 90억달러에서 내년에 16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봤다.

배세진 현대차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양설비 입찰 건수는 2015년과 2016년에 2건에 불과했는데, 현재 약 20건의 입찰이 진행 중이다”라며 “해양 선체부문에서 압도적인 실적과 기술력을 갖춘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혜택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