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대기업과 손잡고 현지에 상용차 반조립공장을 세운다. 성장하는 인도네시아 시장을 잡고, 동남아시아 공략도 강화하려는 조치다. 특히 현대차는 세계 양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서의 성장 한계를 동남아 등 신시장 개척을 통해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연간 2000대 생산할 반조립 공장 세워

현대자동차는 12일 서울 여의도에 있는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인도네시아의 '알타 그라하(Artha Graha) 그룹(이하 AG그룹)'과 상용차 전문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실장과 우마르 하디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 트리아완 무나프 인도네시아 창조경제위원장, 한성권 현대차 상용사업담당 사장, 이인철 상용수출사업부 전무, 이키 위보우 AG그룹 사장 등이 참석했다.

12일 서울 주한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이키 위보우 AG그룹 사장(앞줄 왼쪽)과 이인철 현대자동차 상용수출사업부 전무(앞줄 오른쪽)가 인도네시아 상용차 전문 합작 법인 설립에 대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AG그룹은 1973년 설립된 인도네시아 10위권 대기업으로, 현대차 인도네시아 판매를 담당하는 대리점인 '호키'의 모기업이다. 현대차는 AG그룹과 내년 5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상용차 전문 합작 법인을 설립하고, 자카르타 인근에 상용차 반제품 조립 공장을 세운다. 신설 합작 법인은 트럭 등 상용차 생산과 판매, 애프터서비스 등 전 과정을 총괄한다. 양사의 지분 비율은 5대 5일 것으로 예상된다.

반제품 조립(CKD·Complete Knock Down) 생산은 엔진과 미션 등 주요 부품을 한국에서 들여와 현지에서 조립해 판매하는 것이다. 현대차는 내년 하반기부터 연간 2000대의 현지 맞춤형 상용차를 생산할 계획이다. 생산 차종은 대형 트럭인 '엑시언트'와 중형 트럭인 '뉴 마이티' 등이다.

인도네시아 상용차 시장은 1970년대부터 진출한 미쓰비시후소, 히노(도요타 계열), 이스즈 등 일본 업체가 98.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에서 대리점인 '호키'를 통해 트럭 등을 판매하고 있지만, 영업망이나 서비스망이 없어 제대로 된 판매가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대차는 이번 협약식이 사실상 첫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로 본다.

◇무관세로 동남아 수출 가능

일본 업체보다 늦었음에도 현대차가 뛰어드는 이유는 인도네시아 상용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인도네시아는 자카르타 매립지 건설사업, 광산 개발 사업 등 대규모 토목 사업이 진행 중이다. 이 때문에 작년 7만대 수준이던 인도네시아 상용차(중·대형 트럭 기준) 산업 수요는 내년 8만대, 2020년 10만대, 2021년 11만2000대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중·대형 트럭 판매량(4만9539대, 작년 기준)보다 많다. 중·대형 상용차는 대당 가격이 1억원이 넘어 판매량이 적더라도 업체의 수익성 개선에는 큰 역할을 한다.

더 큰 이유는 동남아 시장 공략 강화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현대차는 중국과 미국 등 양대 시장에 집중하느라 상대적으로 동남아 신시장 공략에 힘을 쏟지 못했다"며 "인도네시아 상용차 공장을 통해 성장하는 동남아시아를 잡겠다는 전략"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베트남에도 상용차 공장이 있다. 하지만 베트남 공장 하나로는 동남아 공략이 충분치 않다고 본 것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다른 동남아 국가와 달리 중형 트럭 부품을 한국에서 들여올 때 관세가 붙지 않는다. 또 내년부터 아세안 자유무역협약(AFTA)에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 제품은 무관세로 동남아 권역에 수출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중형 트럭을 만들어 동남아시아에 수출할 땐 5~80%의 관세가 붙는다.

현대차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에 상용 완성차 공장을 만드는 것은 부품 공급 등의 문제로 여의치 않고 한국에서 부품을 받아 생산하는 반조립 생산이 합리적"이라며 "한국에서 부품을 들여올 때 무관세이면서 동남아에 수출할 경우 이득을 볼 수 있는 인도네시아가 동남아 공략의 전초기지로 최적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