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검색 시장을 장악한 구글과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기업인 아마존이 싸늘한 자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다.

한 때 긴밀한 협력관계였던 두 디지털 공룡 기업은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을 놓고 경쟁 관계에 돌입하더니 최근에는 결별을 선언하고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구글이 입을 타격이 더 크다”는 ‘구글 열세론’이 나오는 가운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아마존과 잇따라 제휴 관계를 선언, 관심을 모은다.

아마존이 올해 5월 출시한 태블릿형 인공지능 스피커 에코쇼. 구글은 최근 에코쇼에 유튜브 동영상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구글, “아마존에 유튜브 제공 중단" vs 아마존, “나쁜 선례”

구글은 지난 12월 6일(현지시각) 아마존의 인공지능(AI) 스피커인 에코쇼에 유튜브 제공을 중단키로 했다고 밝혔다. 내년 1월부터 아마존의 실시간 전송(스트리밍) 서비스인 파이어TV에서도 유튜브 영상을 빼겠다고 했다.

아마존이 지난 5월 출시한 에코쇼는 7인치 터치스크린이 달린 태블릿형 인공지능 스피커다. 세계 최대의 동영상 콘텐츠인 유튜브 동영상을 이용할 수 없을 경우 에코쇼 판매는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구글은 이번 결정이 구글의 인공지능 스피커와 동영상 전송 기기를 아마존이 홀대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구글은 성명을 통해 “아마존에서 구글 홈 같은 기기를 유통해주지 않고 있다. 구글캐스트 이용자에게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를 보여주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아마존은 “구글은 유튜브 차단 조치를 통해 개방된 웹사이트에 고객의 접근을 선별적으로 제한하는 실망스러운 선례를 남겼다”고 반발했다.

구글의 인공지능 스피커 구글홈. 구글은 선두 주자인 아마존을 추격하기 위해 저가 공세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 구글의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 진출이 갈등 촉발

두 회사는 사람과 인공지능을 연결하는 ‘디지털 허브'로 자리잡은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을 놓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선발주자는 아마존이었다. 아마존은 2년 전 스마트홈 스피커 ‘에코’를 출시,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을 개척했다. 에코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 배달, 뉴스 들려주기 등 하루가 다르게 서비스 종류를 늘리면서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시작했고 대세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이 돈이 된다는 판단이 서자 구글, 삼성, 마이크로소프트(MS), 페이스북, 애플이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면서 경쟁에 뛰어 들었다.

특히 구글이 공격적이었다. 구글은 작년 10월 인공지능 스피커인 ‘구글 홈’을 출시했다.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의 대세로 자리잡은 아마존 에코를 추격하기 위해 가격을 아마존 ‘에코’보다 50달러 저렴한 129달러(15만원)로 책정했다. 저가 공세를 통해서라도 승부를 보겠다는 결의를 보였다.

그러자 아마존은 지난달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사물인터넷(IoT) 기기 네스트를 아마존 온라인몰에서 제외하는 등 구글 견제를 시작했고, 구글이 유튜브 공급 중단을 선언하면서 두 회사의 싸움을 돌이키기 어려운 단계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사진 왼쪽)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사진 오른쪽). 시애틀시를 기반으로 창업한 두 사람은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 애플·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은 우리의 친구"

구글과 아마존이 각을 세우는 사이 구글과 앙숙인 애플, 마이크로소프트는 아마존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등 아마존을 지원하고 있다.

애플과 아마존은 지난 6월 상호 제휴 관계를 선언했다. 애플은 자사의 애플TV에서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앱을 제공키로 했다.

모바일 운영체제의 주도권을 구글에 빼앗긴 마이크로소프트도 아마존과 밀월관계를 맺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올해 8월 30일(현지시각) 인공지능 사업에서 전략적인 제휴 관계를 맺기로 합의하고 인공지능 시장의 핵심 제품인 인공지능 비서 기능을 상호 개방키로 했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를 “알렉사의 새 친구”라고 소개했다.

베조스 CEO는 “앞으로 아마존의 인공지능(알렉사) 기반 스피커 에코를 이용해 마이크로소프트의 인공지능(코타나)을 불러낸 다음 아웃룩, 엑셀, 파워포인트 등의 작업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MS 윈도10이 탑재된 PC에서도 아마존 알렉사를 불러 아마존 쇼핑을 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가 지난 6월 열린 애플 개발자 회의에서 인공지능 스피커 ‘홈팟’을 소개하고 있다. 구글과 아마존이 신경전을 벌이는 반면 애플은 아마존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다.

◆ “구글이 더 아프다” 평가

두 디지털 공룡들의 대결에서 승자는 누구일까? 최종 승자는 아직 모르지만 당장은 구글이 더 답답한 신세라는 분석이 나온다.

아마존의 신제품인 에코쇼는 아마존의 주력 제품이 아니지만 세계 최대의 온라인 유통 플랫폼인 아마존을 통해 구글홈을 팔 수 없게 된 구글이 입는 타격이 더 크기 때문이다.

KT 경제경영연구소는”에코쇼에 유튜브를 제공하지 못하는 아마존 보다 아마존을 통해 구글홈 등 단말기를 팔 수 없는 구글의 상황이 더 안 좋다”며 “구글이 자사의 기기를 빠르게 보급하지 못하면 스마트홈의 주도권을 아마존에 내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과거 디지털 산업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콘텐츠 등 일정한 경계를 두고 성장했다. 하지만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등 융합·복합을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고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분야별 강자들이 차세대 시장을 놓고 각축을 벌이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글로벌 디지털 공룡들의 어지러운 이합집산이 시작됐고 ‘한 눈 팔면 죽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