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피터버러에 있는 아마존 물류센터 모습. 온라인 서점에서 출발해 인터넷 쇼핑몰과 유통, 식료품 등 진출하는 분야마다 기존 업체를 무너뜨리고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을 두고 미국에서는 ‘아마존드(amazoned)되었다’고 표현한다. 오프라인 소매 업체들이 아마존의 공세에 잇따라 폐점하면서 아마존이 일자리 시장까지 파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일(현지 시각) 9700개의 점포를 가진 미국 최대 약국 체인 CVS헬스가 초대형 생명보험회사 애트나를 690억달러(약 75조3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올해 미국 내 기업 인수·합병(M&A) 중 최대 규모이자 지난해 독일 제약사 바이엘이 화학·농업기업 몬샌토를 660억달러에 인수한 것을 넘어서는 제약·의약품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들의 합병을 이끌어낸 것은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라고 보도했다. 의약품 유통과 생명보험 분야에서 사업을 해오던 두 기업이 합친 것이 아마존의 헬스케어 시장 진출에 대항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해 인터넷 쇼핑몰, 유통, 물류, 식료품에 이르기까지 진출하는 분야마다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며 시장을 장악한 아마존을 두고 미국에서는 '아마존드(amazoned·아마존에 의해 파괴되다)'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아마존의 다음 타깃으로 알려진 패션, 뷰티 업계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아마존이 일자리 시장까지 바꿔 놓는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NYT "아마존의 발걸음에 헬스케어 업계가 떨고 있다"

아마존은 지난 10월 앨라배마, 애리조나 등 미국 12개 주에서 약국 면허를 취득했다. 지금까지는 병원에서 의사에게 처방전을 받으면 약국에 찾아가서 약을 받아와야 했다. 하지만 아마존이 온라인 약국을 열면 집에서 편하게 약을 배송받을 수 있다. 미국 처방약 시장 규모는 연간 5600억달러(약 612조원)에 이른다. 뉴욕타임스는 "아마존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은 헬스케어 업계 전체가 떨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마존의 침공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다른 산업을 지켜봐 온 CVS헬스는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 2200만명의 고객을 가진 애트나를 인수한 것도 고객 확보와 함께 이들의 정보를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아마존은 고객들의 구매 정보를 인공지능으로 분석해 개개인에 최적화된 상품을 추천해 성장해왔다. CVS헬스는 이에 맞서기 위해 생명보험 정보를 이용해 건강에 관심이 많은 고객에게 더 적극적인 마케팅을 시도하거나, 가족 관계를 파악해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CVS헬스의 구상이 효과적인 대응책이 될지는 미지수이다. 아마존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객 데이터 분석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올해 유기농 식품 체인인 홀푸드를 인수하면서 의약품을 유통하거나 판매할 수 있는 오프라인 매장까지 갖춘 상태이다. 게다가 제약사들도 앞다퉈 아마존과의 제휴를 모색하고 있다. CNBC는 "산도스, 밀란 같은 세계적 복제약 업체들은 물론이고 화이자 같은 다국적 제약사들도 아마존과 협업을 의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마존드(amazoned)' 추풍에 낙엽처럼 쓰러지는 오프라인 업계

CNN은 아마존의 영향으로 올해 미국에서 문을 닫는 각종 오프라인 점포 수가 8000~9000개에 달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매장 6163곳이 문을 닫았는데 이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유통그룹 시어스는 올해 백화점과 대형마트인 K마트 매장 350여 개를 닫았고, 유명 캐주얼 브랜드인 갭과 바나나리퍼블릭도 올해 점포를 200여 개 줄였다. 여성 의류업체 더 리미티드는 오프라인 사업을 완전히 접었다. 69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대형 장난감 체인 토이저러스도 지난 9월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반면 아마존은 사상 최고 분기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미국 온라인 쇼핑 시장 점유율이 50%에 이르는 아마존은 온라인 사업에서 갈고닦은 노하우를 오프라인 시장에서 활용하는 '온라인·오프라인 연계(O4O·Online for Offline)'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11월 중순 미국 최대 쇼핑 축제 ‘블랙 프라이데이’를 앞두고 아마존 물류센터 직원이 물건 배송 과정을 점검하고 있다.

로봇·드론 등 새로운 IT를 적극 도입하는 아마존은 일자리 시장까지 파괴하고 있다. IT전문매체 쿼츠가 최근 미국 소매업계와 아마존의 고용 데이터를 수집해 아마존의 로봇 도입이 전체 일자리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 결과, 올해 미국 소매업체 일자리 수는 작년보다 약 1%(약 17만명)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2009년 이후 계속 증가하던 소매업체 일자리 수가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아마존은 올해 14만6000명을 추가 채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증가분을 감안하더라도 미국 소매업계의 일자리 수는 약 2만4000개 줄어든 셈이다. 전 세계 물류창고에서 자율주행 로봇 '아마존로봇(AR)'을 적극 활용하는 아마존은 올해만 7만5000대의 로봇을 도입했고, 앞으로도 매년 5만대 이상 현장에 배치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로봇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공포의 최전선에 아마존이 있는 것이다.

스캇 갤러웨이 뉴욕대 교수는 "앞으로 아마존은 수천 개의 오프라인 매장을 열거나 인수할 것"이라며 "기업 가치 1조달러(약 1094조원) 기업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예측했다.

: 아마존드(amazoned)

오프라인 업체들이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기업에 자기 사업 기반을 뺏기는 현상. 유통뿐만 아니라 제약·패션·미디어 등 광범위한 분야의 기업들이 아마존의 사업 진출로 폐점 위기에 맞닥뜨리자 이를 '아마존에 의해 위기에 처하다'라고 설명하면서 생겨난 신조어(新造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