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남이섬. 인공 제설기가 눈가루를 쏘아 올리자 동남아 관광객 수십 명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온 주부 이스탄 파이샬(35)씨는 "진짜 눈을 보는 것은 난생처음"이라며 눈바닥을 구르며 셀카를 찍었다. 이날 남이섬을 찾은 외국인 3525명 중 67%(2395명)는 동남아인이었다. 홍콩과 대만인을 제외한 중국 관광객은 50명에 불과했다.

'사드 보복'으로 중국인 단체 관광이 중단되면서 위기에 빠진 한국 관광이 오히려 '관광 업그레이드' 전기(轉機)를 맞고 있다. 대표적인 한류 드라마인 '겨울 연가' 촬영지인 남이섬은 한 해 중국 관광객 35만명이 찾던 관광지. 사드 보복으로 올해 중국 방문객이 급감하면서 우려가 컸다.

지난 1일 강원 춘천시 남이섬을 찾은 동남아시아시아 관광객들이 인공 제설기가 뿌리는 인공 눈 아래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5년 전 36만여 명이던 동남아 주요 5개국의 남이섬 방문객은 올해 56만8000여 명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하지만 동남아 관광객이 돌파구가 됐다. 말레이시아·베트남·인도네시아·필리핀·태국 등 5국 관광객은 2012년 36만8000여명에서 올 연말 이보다 50% 이상 늘어난 56만8000여명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덕분에 올해 남이섬을 찾은 중국인이 작년보다 78%나 줄어들어 5분의 1토막이 나지만 전체 외국인 방문객은 16% 감소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기종 경희대 교수(관광정책학)는 "겨울 추위와 눈, 몸을 녹이는 모닥불 등 관광객 눈높이에 맞춰 체험형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남이섬 사례에 한국 관광 미래가 있다"고 말했다.

관광 업계에선 사드 보복을 계기로 관광객 수(數)가 아닌 질적 성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관광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식(美食)과 휴양 등 럭셔리 관광, 미용 성형과 건강검진, 난치병 치료를 포함한 의료 관광 같은 고부가가치 관광 상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쇼핑 일정 위주의 싸구려 단체 관광보다 경제력을 갖춰 몇 번이든 한국을 다시 찾는 개별 관광객을 집중 공략하자는 얘기다.

1일 남이섬에서 만난 필리핀 은행원 존 피자냐(35)씨는 "지난 4월 벚꽃 여행 이후 한국 방문이 두 번째인데, 이번엔 한국 추위를 제대로 느껴 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옷을 여섯 겹 껴입었다는 그의 아내는 "찬 바람에 피부가 따끔따끔한 느낌이 정말 새롭다"며 웃었다. 남이섬은 이달 중순부터 눈사람축제를 연다. 눈썰매를 타고, 얼음 조각을 깎는 체험 프로그램이 내년 2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남이섬 매표소에는 한국어와 영어, 중어, 일어뿐만 아니라 태국어와 베트남어, 말레이·인도네시아어까지 총 7개 언어로 된 안내 리플릿이 놓여 있었다. 미얀마어 리플릿도 곧 나올 예정이다.

섬 복판 120석 규모 할랄 음식점은 빈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무슬림 기도실인 '무솔라(Musolla)'는 최근 샤워실을 설치했다. 정재우 남이섬 고객팀장은 "2010년 처음 만든 뒤 세 차례 더 공사를 벌였다"고 말했다. 태국 밧화(貨)와 필리핀 페소화 등 총 16국 화폐를 한국 돈으로 바꿀 수 있는 환전소도 있다. 눈사람을 주제로 엽서와 머그잔, 조명 기구와 마스크팩 등 기념품 수십 종을 판매하는 '아트숍'도 인상적이었다. 관광 전문가들은 "남이섬은 '감성 마케팅'의 성공 사례"라고 말했다.

전명준 주식회사 남이섬 대표는 "경제 발전으로 지갑이 두둑한 신(新)중산층이 급증하는 동남아 국가를 타깃으로 5~6년 전부터 시장 다변화 전략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남아 각국 주한 대사관과 공동 행사를 벌였고, 글로벌 관광 박람회도 빼놓지 않고 찾았다"고 했다. 열대 기후에 익숙한 이들에게 남이섬의 불타는 가을 단풍과 쨍한 겨울 추위가 '인생 필수 체험 코스'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내국인이 뜸한 비수기가 오히려 동남아 특수를 누리는 성수기로 탈바꿈했다. 남이섬은 가평 아침고요수목원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북한강 관광 벨트인 '레인보우 밸리'를 추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