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버클리 유학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서 하루에 5분씩만 발명에 투자하기로 했다. 하루에 5분을 투자해서 한 달에 1만달러를 버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나온 게 다중어 번역이 되는 전자사전이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지난 10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David Rubenstein) 칼라일그룹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다중어 전자사전은 손 사장이 만든 최초의 발명품이자 어떻게 보면 지금의 손정의와 소프트뱅크를 가능하게 한 발명품이었다. 손 사장은 이 전자사전을 일본 샤프에 1억엔에 팔아 소프트뱅크 창업 자금을 만들었다.

지난 2월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이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손 사장이 발명, 그것도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분야에 뛰어들게 된 건 미국 유학 시절에 접한 사진 한 장의 영향이 컸다. 손 사장은 '일렉트로닉스'라는 과학잡지를 읽던 중 인텔이 개발한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진을 보게 됐다. 손 사장은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한 기사를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다. UC버클리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던 손 사장이 발명과 창업을 결심하게 된 순간이었다.

손 사장은 1999년 한국에서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한 기자가 '마음의 고향이 어디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때 손 사장은 '한국'이나 '일본'이 아닌 '인터넷'이라고 답했다. 손 사장의 가문은 원래 대구 지역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그러다 1930년대 대구에 비행장이 생기면서 토지를 뺏겼고, 손 사장의 할아버지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손 사장의 할아버지가 정착한 곳은 일본 사가현 도스(島栖)시였다. 손 사장은 1957년에 태어났는데, 호적의 본적지란에는 '사가현 도스시 고켄도로 무번지(無番地)'라고 적혀 있다. 손 사장이 태어날 때까지도 번지가 없었던 일종의 가건물에 살았다.

손 사장은 열여섯살 때 맥도널드재팬 설립자인 후지타 덴(藤田田)을 만나 15분간 대화를 나눴다. 후지타 덴을 만나기 위해 60번이나 장거리 전화를 걸었고, 결국 직접 비행기까지 타고 간 끝에 이뤄진 만남이었다. 이때 후지타 덴은 손 사장에게 컴퓨터 사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손 사장은 루벤스타인과의 인터뷰에서 "후지타 덴에게 내가 어떤 사업을 해야할 것 같냐고 물었더니 과거를 보지 말고 미래를 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손 사장은 후지타 덴의 충고를 받아들여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은 다른 의미에서 손 사장의 고민을 덜어준 곳이었다. 손 사장은 유년 시절 손정의라는 한국 이름과 야스모토 마사요시(安本正義)라는 일본 이름 사이에서 정체성의 갈등을 겪었는데, 미국은 그런 고민이 필요 없는 땅이었다.

미국에 간 지 1년도 되지 않아 검정고시로 고교과정을 마친 손 사장은 2년제 대학에 해당하는 홀리네임스칼리지를 거쳐 1977년에 UC버클리 경제학과에 편입했다.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손 사장의 영어 실력은 원어민 수준은 아니다. 대신 손 사장은 쉬운 표현만으로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자신만의 비즈니스 영어를 만들었다. 손 사장이 사용하는 영어 단어 수는 1480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영어 리듬과 악센트에 집중해 전달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Masa, You are as much risk-taker as I am(손 사장, 당신도 나와 같은 승부사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손 사장에게 한 말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회사를 일군 빌 게이츠가 인정할 정도로 손 사장의 승부사 기질은 유명하다. 특히 비즈니스 파트너와 협상을 할 때 손 사장의 승부사 기질이 확실히 드러났다.

손정의 사장은 지난 10월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칼라일그룹 회장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어떻게 사업을 키웠는지 설명했다.

손 사장은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전시회인 컴덱스를 인수하기 위해 1993년 셸던 아델슨 컴덱스 사장을 직접 만났다. 아델슨 사장은 일본의 작은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못 미더워했고, 돈은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손 사장은 "지금은 없지만 우리 회사 이름이 은행(Bank)이다. 언젠가 돈이 무더기로 들어올 것 같지 않냐?"고 했다. 손 사장의 대답에 아델슨 사장의 마음이 풀렸고, 결국 2년이 지난 뒤에 소프트뱅크는 컴덱스를 8억달러에 인수했다.

소프트뱅크가 조성한 1000억달러 규모의 비전펀드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1000억달러 가운데 450억달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투자한 것이다. 이 투자를 마무리 짓기 위해 손 사장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를 만났다. 면담 시간은 단 45분이었다. 손 사장은 "나한테 1000억달러를 투자하면 1조달러짜리 선물로 돌려줄 수 있다고 왕자를 설득했다"고 했다. 손 사장이 말한 1조달러짜리 선물은 싱귤래리티(Singularity) 비전이었다. 싱귤래리티는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넘어서는 기술적 특이점을 뜻한다. 손 사장은 싱귤래리티 시대를 이끌어나갈 기술을 선도하기 위해 수천억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설명했고, 사우디아라비아 왕자는 그 비전에 공감했다. 손 사장은 "45분 만에 450억달러를 투자받았으니 1분에 10억달러씩 받은 셈"이라고 말했다.

소프트뱅크가 설립된 첫날 손 사장이 단 두 명의 직원 앞에서 일장연설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당시 소프트뱅크 사무실은 일본 후쿠오카현 오도시로시의 허름한 건물 2층에 있었다. 손 사장은 두 명의 직원을 세워 놓고 장장 한 시간에 걸쳐서 "30년 후엔 두부가게에서 두부를 세듯이 매출을 1조, 2조 단위로 세게 될 것이다. 1000억, 5000억은 숫자라고 부를 수 없다"며 자신의 비전을 설파했다. 두 명의 직원은 몇 달 지나지 않아 회사를 나갔지만, 소프트뱅크는 매출 100조원의 회사로 성장했다.

손정의 사장이 소프트뱅크를 세우고 한창 전력투구하고 있던 1983년 봄. 회사 건강검진에서 만성간염 판정을 받았다. 당시 의료진이 5년 시한부 삶을 선고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때 손 사장이 쓰러지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 것이 '책'이었다. 손 사장은 병상에서 4000여권의 책을 읽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손정의 사장이 즐겨 읽는 '손자병법(왼쪽)', '료마가 간다'.

특히 손 사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권의 책이 있다. 한 권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전략가인 손무의 '손자병법'이다. 손 사장은 '손자병법'을 읽으며 자신만의 경영전략을 만들었고, 이를 '손의 제곱병법'이라고 불렀다. 제곱병법은 손 사장이 완치된 이후 소프트뱅크를 이끄는 핵심적인 경영전략으로 자리잡았다.

다른 한 권의 책은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일대기를 다룬 대하소설 '료마가 간다'다. 료마는 일본 막부 말기에 활동한 무사로 서른한 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일본 역사를 바꾼 주역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고 병상에 누워 있던 손 사장은 료마의 일대기를 읽으며 자신도 포기하지 않고 남은 시간 동안 전력을 다해 살기로 다짐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후지타 덴 맥도널드재팬 사장을 찾아가게 된 것도 후지타 덴의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였다. 후지타 덴의 책을 읽지 않았다면 지금의 손정의도 존재하지 않았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