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개발사업보다 개성 있는 골목상권이 도시 경쟁력
-"장인정신 갖춘 소상공인 육성해야"

“사람과 돈이 모이는 경쟁력 있는 상권이 도시 곳곳에 있어야 합니다. 도시재생도 골목상권을 살려 도시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방향이 돼야 합니다.”

모종린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모종린(56) 연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최근 부동산 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도시재생에 대해 자신만의 확고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모 교수는 “다양성이 경쟁력인 시대에 획일적인 대형 개발 사업은 매력적이지 않다”며 “장인정신으로 무장한 소상공인이 만드는 다양한 골목상권이 도시의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됐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여러 도시의 매력적인 골목길을 탐방하는 것이 취미인 모 교수는 ‘골목길 경제학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골목상권의 경제적 가치를 분석한 신간 ‘골목길 자본론’도 냈다.

그는 도쿄 ‘롯폰기힐스’,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처럼 정부와 민간이 손을 잡고 도시 경쟁력을 끌어올린 대형 개발 사업이 반드시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는 아니라고 봤다. 그린벨트를 풀어 주택을 대량 공급하고, 대규모 상업 시설을 짓는 것이 도시의 경제적·사회적 가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모 교수는 골목상권이 사람을 불러모으고 지역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통계로도 입증된다. BC카드 빅데이터센터는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의 주요 25개 상권을 조사해 연평균 신용카드 이용금액 증감률을 집계했다. 그 결과 이 기간 연평균 신용카드 이용금액 증가율이 높았던 지역 1~5위는 용산구청(녹사평역 인근), 홍익대, 삼청동, 경리단길, 서울대입구역으로 모두 골목상권이 형성된 곳들이었다.

상권 특성에 따른 신용카드 이용금액 연평균 증가율도 골목상권이 다른 상권을 압도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골목상권의 신용카드 이용금액 연평균 증감률은 골목상권이 15.3%로 가장 높았고, 대로변 상권(지역 내 핵심상권) 8.9%, 중심상권(명동·강남 등 도심 중심 상권) 8.7%, 몰(복합쇼핑몰)상권 4.9% 순이었다. 모 교수는 “골목상권이 뜨면서 나머지 상권의 성장이 둔화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경쟁력 있는 골목상권의 조건은 무엇일까. 모 교수는 골목상권의 조건으로 문화 인프라(Culture), 임대료(Rent),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 접근성(Access), 도시 디자인(Design), 정체성(Identity) 등 여섯가지 조건을 꼽고 이를 ‘C-READI’ 모델이라고 칭했다. 그는 “C-READI는 문화가 준비된 곳을 뜻한다”며 “문화 자원과 이를 통해 형성된 정체성이 골목상권의 핵심 경쟁력인 것을 보여주는 분석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의 주요 골목상권은 문화자원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홍대 골목상권의 기반은 화랑, 미술학원, 인디뮤직 산업이었다. 가로수길도 원래 갤러리와 화방, 건축사무소가 모여있던 거리였고, 삼청동은 갤러리가 중심인 거리였다. 모 교수는 “골목문화의 정체성을 접목시킨 다양한 상업시설이 골목에 자리를 잡았을 때 특정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다만 골목길 창업자를 전통적인 문화 콘텐츠에 기반을 둔 소상공인 창업자로 한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도시 재생 스타트업, 기술 기반 스타트업, 사회적 기업, 문화 기획자 등 골목길에 다양한 유형의 창업자를 유치하는 것이 경쟁력이라고 본 것이다.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출자한 카우앤독(CoW&DoG)과 구글 임팩트 챌린지에서 10위권에 입상한 루트 임팩트(Root Impact) 등 소셜벤처가 모여 있는 성수동 상권이 대표적이다.

모 교수는 골목상권에 꼭 필요한 경쟁력 있는 소상공인이 적은 국내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일본의 경우 장인학교나 현장의 장인 밑에서 오랫동안 도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가게를 창업한다”며 “한국도 자영업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창업 전 몇 년간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그는 “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특정 상권의 임대료를 낮게 유지하는 것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며 “골목산업 창업을 지원하고, 필요 인력을 훈련하고 육성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골목상권에 일반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교통 시설을 확충하고, 보도를 조성하는 등 관련 인프라 육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골목상권이 뜨면서 생겨난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와 관련해서는 건물주를 일방적으로 비난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특정 상권이 뜨면서 임대료가 오르면 기존 상인들이 높아진 임대료 부담으로 쫓겨나듯이 내몰리는 상황을 가리킨다.

모 교수는 “임대료를 올려서 공실이 늘어나고 상권이 죽으면 건물주 입장에서도 분명한 손해”라며 “젠트리피케이션을 겪었던 상권들의 평균 임대료가 떨어진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건물주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쟁력 있는 소상공인은 사람을 불러모아 상권의 가치를 올려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