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올들어 고전 중인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 기준으로 한 수 아래로 여겼던 일본 스바루에까지 추격받는 처지에 몰렸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는 미국 자동차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채 노후화한 세단 중심의 판매 전략을 유지한 데 따른 후유증이 이어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기아차는 미국 시장 판매량을 회복하기 위해 내년부터 신규 SUV 모델들을 잇따라 선보일 계획이다. 올해 국내에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는 소형 SUV 코나의 미국 수출도 예정돼 있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 노조의 반발로 코나 수출 물량 확보를 위한 국내 생산 확대 계획에 차질이 빚어진 상태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공장 전경

◆ 현대차 美 판매량, 전년比 13% 감소…'한 수 아래' 日 스바루 턱 밑까지 추격

4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올들어 11월까지 현대차(005380)미국 판매량은 62만1961대로 전년동기대비 12.7% 감소했다. 기아차의 경우도 54만6629대로 7.9% 줄었다. 반면 같은 일본 스바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58만4614대로 전년동기대비 5.9% 증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현대차는 71만2700대, 기아차는 59만3245대를 각각 판매했다. 스바루의 판매량은 55만1955대였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현대차와 기아차가 스바루에 앞섰다. 하지만 올해는 기아차가 역전당했고 현대차와 판매량 차이는 지난해 16만여대에서 3만여대 수준으로 크게 좁혀졌다. 지난달 월별 판매량을 보면 현대차(5만5721대)와 스바루(5만1721대)의 판매량 차이는 4000대에 불과했다.

도요타는 올들어 11월까지 221만1530대, 닛산·미쓰비시는 154만9693대, 혼다는 149만2112대의 판매량을 각각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도요타는 220만6401대, 닛산·미쓰비시는 150만564대, 혼다는 147만7465대를 기록했다. 올들어 현대·기아차의 미국 시장 판매량은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스바루를 포함한 일본 주요 업체들의 판매량은 증가세를 보인 것이다.

올해 순위에도 변화가 있었다. 현대차는 GM과 도요타, 포드 등에 이어 간신히 미국 시장 누적 판매량 7위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지난해 8위였던 기아차는 스바루와 폴크스바겐(56만3511대)에 추월당하며 10위로 내려앉았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기아차는 한 때 일본의 대표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 혼다 등과 글로벌 시장에서 대등한 경쟁을 펼치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주력 모델의 부진으로 스바루 등에 따라잡히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 세단 중심 모델 노후화로 고전…SUV 비중 높은 스바루는 선방

전문가들은 미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판매량이 크게 감소하고 스바루는 상대적으로 선방한 것에 대해 “모델 라인업의 차이가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미국 시장에선 세단의 판매량이 감소하는 반면 SUV의 수요는 늘고 있다.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중형 세단의 점유율은 10.9%로 전년동기대비 2.2%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SUV와 크로스오버 차량의 점유율은 12.8%로 1.4%포인트 상승했다. 따라서 미국 시장에서 세단을 중심으로 라인업을 구성한 현대·기아차는 악영향을 받았다. 상대적으로 SUV의 비중이 높은 스바루는 수요 변화에 혜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기아차가 미국에서 출시한 소형 하이브리드 SUV 니로. 전체 판매량이 감소했지만 니로를 포함한 SUV는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

현재 현대차가 미국에서 판매하는 모델 12종 중 SUV는 투싼과 싼타페 등 2종 뿐이다. 기아차가 판매하는 10종의 모델 중 SUV는 쏘렌토와 스포티지, 올해 초 출시한 소형 하이브리드 SUV 니로 등 3종이다.

세단의 인기가 떨어지고 SUV 수요가 늘고 있는 미국 시장의 특성은 현대·기아차의 차종별 판매 실적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SUV인 싼타페와 투싼의 지난 10월 미국 시장 판매량은 각각 전년동월대비 15.1%, 8% 증가했다. 반면 주력 세단 모델인 쏘나타는 49.3% 급감했고 아반떼와 엑센트도 각각 3.3%, 15.6% 줄었다. 기아차의 경우도 SUV인 스포티지 판매량은 4.1% 증가한 반면 중형 세단인 K5는 24.3% 감소했다.

스바루는 현대·기아차보다 적은 7개의 모델을 판매하고 있지만 SUV는 소형 모델인 크로스트렉과 준중형 모델 포레스터, 중형 모델 아웃백 등 3개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세단 모델은 레거시와 임프레자 등 2종 뿐이며 나머지 2종은 스포츠카인 BRZ와 WRX다. 지난달 미국의 중고차 잔존가치 평가업체인 오토모티브 리스 가이드(ALG) 평가에서 포레스터가 컴팩트 SUV 차급 최우수상을 받는 등 스바루 SUV가 호평을 받았다.

내년 미국 시장에 출시되는 스바루의 대형 SUV 어센트

스바루는 미국 시장의 SUV 수요 증가를 겨냥해 SUV 모델의 비중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지난 1일(현지시각) 미국에서 개최된 ‘2017 LA 오토쇼’에서 공개한 7인승 대형 SUV 모델 어센트를 내년부터 미국에서 판매한다. 이와 함께 미국 인디애나공장에서 크로스트렉의 신형 모델 양산도 시작한다.

SUV 신차로 반등 노리는 현대·기아차…노조가 코나 수출에 또 '발목'

현대·기아차도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SUV 모델들을 연이어 출시해 반격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차는 지난 6월 국내에 출시해 인기를 모으고 있는 소형 코나와 내년초 출시할 완전변경 신형 싼타페를 미국에 내놓는다. 기아차도 쏘렌토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하고 미국 시장 전략모델인 대형 SUV 텔루라이드도 선보인다.

특히 미국 SUV 시장에서도 소형 모델의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코나의 수출이 시작되면 월별 판매실적이 눈에 띄게 개선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수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코나의 추가 생산을 두고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현대차 소형 SUV 코나

현대차 노사는 10월부터 코나를 울산1공장 11라인에 이어 12라인에서도 생산하기 위한 협의를 진행해 왔다. 노조는 코나의 생산라인을 늘리는 방안을 수용하는 대신 공장 안에 창문을 설치하고 협력업체에서 생산 중인 부품의 일부를 울산1공장의 공정에 포함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사측은 창문 설치는 현행 소방법에 위배되고 다른 요구사항들도 대부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현대차는 노조와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더 이상 코나의 추가 생산을 미루기 어렵다고 판단해 지난달 27일 코나의 추가 생산을 시도했지만 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28일까지 울산1공장의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다.

게다가 현대차 노조는 사측과 임금및단체협약 교섭에서 평행선을 달리자 5~8일 나흘간 부분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올들어 10번째 파업이다. 귀족 강성 노조의 무리한 파업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코나를 더 생산하기는커녕 생산량이 더 줄게 됐다.

현대차 관계자는 “코나의 수출이 늦어질 경우 세계 2위 시장인 미국에서 판매 부진은 예상보다 더 길어질 것”이라며 “정상적인 작업 지시까지 거부하는 노조의 불법 파업이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까지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