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반도체 산업의 경기 전망에 대한 비관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대다수 시장 전문가는 내년까지는 반도체 호황이 유지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지난 10월 이후 삼성증권과 세계적 시장조사 업체 IHS마킷,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등이 잇따라 반도체 시장에 대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공격적인 증설 경쟁으로 인해 반도체 호황을 이끌었던 공급 부족이 곧 해소된다는 것이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결국 반도체 가격을 낮추면서 경기 하락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장을 뒤흔든 모건스탠리의 보고서

모건스탠리는 지난 26일 "메모리 반도체 경기가 곧 정점(頂點)을 찍을 것"이라는 보고서로 한국 증시를 발칵 뒤집어놨다. 모건스탠리는 보고서에서 "낸드플래시 가격 하락은 이미 시작됐고, D램도 내년 1분기 이후엔 공급 부족이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2019년부터는 메모리 반도체 공급이 수요를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모건스탠리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삼성전자의 과거 실적을 이끌었던 스마트폰 시장은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더 이상 높은 영업이익을 기대하기도 어렵다"면서 "TV 출하량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생활 가전 영업이익률도 3% 수준에 그칠 전망"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삼성증권은 지난달 "내년 중반 이후 메모리 반도체 사이클이 하락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IHS마킷도 "D램 가격이 올해 1Gb(기가비트)당 0.77달러로 최고치를 기록한 다음 내년 0.67달러, 2019년 0.45달러, 2020년 0.34달러로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전자 주가는 모건스탠리 보고서가 나온 다음 날인 27일 5% 넘게 급락했다. 28일 국내 주요 증권사가 일제히 반박 보고서를 내놨지만 1.2% 반등하는 데 그쳤다. 그만큼 모건스탠리의 보고서를 투자자들이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공매도 세력이 의도적으로 삼성전자 주가를 떨어뜨렸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실제로 27일 삼성전자 공매도 거래 대금은 253억원으로 전날의 6배가 넘었다.

다수는 "내년까지 호황"… 반도체 가격 상승세는 꺾여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대해 28일 국내 증권사들과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BOA메릴린치는 "내년까지는 호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골드만삭스는 보고서에서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예전과 달리 경기 변동 폭이 크지 않다"면서 "5세대 이동통신 등 새로운 수요가 생기면서 2018년에도 낸드플래시와 D램 공급 부족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는 27일 하루 동안 삼성전자 주식을 585억원어치나 순매도하며 기관투자자 중 셋째로 매도 물량이 많았다.

대다수 시장 전문가의 긍정적 전망과 달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는 확연히 꺾인 모습이다. 지난해 6월 1.31달러였던 D램(4Gb 기준) 고정 거래 가격은 올해 7월 말 3.25달러까지 올랐지만 이후에는 상승세가 무뎌지며 3.5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낸드플래시(128Gb 기준) 역시 지난해 6월 3.60달러에서 올해 8월 5.78달러까지 오른 뒤 지난 9월부터 5.6달러에 거래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수요 면에서 인공지능 자율주행차와 IoT(사물인터넷) 등 새 시장이 열리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기존 메모리 반도체의 주 수요처인 PC는 5년째 세계 시장 규모가 줄고 있고 스마트폰도 성장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반면 내년이면 D램 공급량은 올해보다 22%, 낸드플래시는 39.9%나 늘어날 전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부터 중국 업체들의 반도체 양산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만큼 시장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