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스피커 시장을 두고 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강자와 SKT·KT 등 통신사업자의 불꽃튀는 경쟁이 시작됐다.

AI 스피커는 음악 재생, 생활 정보 검색, 일정 브리핑, 교통 정보, 배달음식주문, 쇼핑, 예약 등 생활 밀착형 기능들을 기본적으로 지원한다. 조만간 가정 내 사물인터넷(IoT) 네트워크와 연계돼 실내 가전들을 제어하는 형태로도 발전할 예정이다.

인터넷 및 통신 기업들은 AI를 생활 플랫폼 서비스와 연계해 시장을 선점하고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도 AI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 기업들과 합종연횡하고 있다. AI 성능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딥러닝 기술에서 빅데이터를 보유한 포털 기업들이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통신사들의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어 시장 향배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왼쪽부터 LG전자 ‘씽큐허브’, SK텔레콤 ‘누구 미니’, KT ‘기가지니’, 네이버 ‘프렌즈’, 카카오 ‘카카오 미니’.

◆ 통신사-포털, AI 스피커 출시 봇물…"AI로 새 활로 찾는다"

28일 포털과 통신업계에 따르면 검색과 광고 등 기존 사업의 성장세가 둔화된 포털업체와 통신비 인하로 수익성이 악화된 통신사들이 새로운 미래성장 먹거리로 AI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국내 기업 중 가장 먼저 AI 스피커를 만든 곳은 SK텔레콤이다. 지난해 8월 AI 스피커 ‘누구’를 출시한 후 국내 AI 스피커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SK텔레콤(017670)은 지난 8월 KEB하나은행과 제휴를 맺고 환율과 계좌 조회 등 금융 분야로 AI 서비스를 확대했다. 또 내비게이션 서비스인 ‘T맵’에 AI 비서 누구를 탑재하는 등 생활 분야로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있다. 현재 누구의 누적 판매량은 30만대. 최근에는 크기가 작아 휴대가 가능한 ‘누구 미니’도 나왔다.

KT(030200)도 지난 1월 AI 스피커 겸 셋톱박스 ‘기가지니’를 내놓으면서 AI 시장 선점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KT 기가지니는 TV 셋톱박스와 연계해 음성뿐 아니라 TV 화면으로도 금융·교통·날씨 등에 관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KT는 지난 23일 신모델인 AI 스피커 ‘기가지니 LTE’ 를 출시했다. 기가지니 LTE는기존 AI 스피커와 달리 자체 통신기능을 갖춰 와이파이 등 인터넷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더불어 소형 디자인으로 활용성을 높인 '기가지니 버디'와 AI 기능이 탑재된 어린이용 스마트워치 ‘기가지니 키즈워치’ 도 출시하면서 상품군을 확대했다.

현재 KT 기가지니는 40만대 이상 팔리며 선발업체인 SK텔레콤의 누구 판매량을 넘어섰다. KT 내부에서는 휴대성을 겸비한 기가지니 라인업 확대로 연내 목표인 50만대 판매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유플러스(032640)도 12월 중 AI 스피커를 선보인다. LG유플러스는 SK텔레콤이나 KT가 자체 AI 플랫폼을 AI 스피커에 탑재한 것과 달리 네이버의 AI 플랫폼인 ‘클로바’를 탑재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카오 AI 스피커인 ‘카카오 미니’는 온라인 주문 뿐 아니라 카카오 프렌즈샵 강남지점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사진은 카카오 프렌즈샵 강남지점 내부 전경.

포털업체인 네이버와 카카오도 AI 스피커 정식 판매에 돌입한 상태다. 네이버는 지난 9월 인공지능 플랫폼 클로바를 탑재한 스피커 ‘웨이브’에 이어 지난달 두번째 AI 스피커인 ‘프렌즈’를 출시했다. 카카오의 인공지능 스피커 ‘카카오 미니’는 지난 7일 1차 정식 판매에서 9분만에 1만5000대가 매진됐으며 28일 2차 정식 판매에서는 26분만에 2만5000대가 완판됐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지난해 7억2000만달러에 불과했던 세계 인공지능 스피커 시장 규모가 2021년에는 35억2000만달러로 5배 가량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신업계는 현재 국내 AI 스피커 이용자를 약 7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 삼성전자와 손잡은 카카오, LG전자와 손잡은 네이버

자체 네트워크가 없고 빅데이터에서 다소 약체인 전자업체들은 포털 기업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고 있다. 통신사도 가입자들의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지만 국내 포털이 보유한 빅데이터 수준에는 못 미치는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전자(005930)는 지난 9월 14일 자사의 AI 플랫폼인 ‘빅스비’와 카카오의 AI 플랫폼인 ‘카카오i’에 연동하는 제휴계약을 체결했다. 이어 지난 19일 LG전자가 자사의 AI 스피커인 ‘씽큐허브’에 네이버의 AI 플랫폼인 클로바 탑재를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자체 AI 플랫폼인 빅스비를 가지고 있지만 사용자 편의성 강화를 위해 카카오와의 제휴를 선택했다. 양사의 협력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빅스비와 카카오i의 연동이다. 예를 들어 갤럭시S8 사용자가 빅스비에 “XXX에게 오후 3시에 만나자고 카카오톡 보내줘”라고 말하면 빅스비에 연동된 카카오i가 이를 중간에 받아 수행하는 방식이다. 또, 빅스비를 통해 카카오i 기반의 다양한 콘텐츠와 생활편의 서비스도 제공된다.

삼성전자는 카카오톡과 카카오의 자체 AI 스피커인 ‘카카오미니’로도 자사 가전 제품을 제어할 수 있도록 해 삼성 가전 제품에 대한 사용자들의 접근성과 편의성을 극대화했다. 양사는 AI 사업 분야의 협력을 가전, IoT, 웨어러블 등 다양한 영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LG전자 AI 스피커인 ‘씽큐허브’에 네이버 AI 플랫폼 ‘클로바’가 탑재된다.

LG전자(066570)는 AI 사업에서 외부 업체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에서는 구글과의 협력을 통해 AI 기능을 탑재했고, 가전 영역에서는 네이버와의 협력을 통해 제품 개발에 나서고 있다.

LG전자는 네이버의 AI 플랫폼 클로바를 LG전자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는 AI 스피커 씽큐허브에 탑재해 음성으로 명령을 내리면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등 7종의 가전제품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다. 씽큐허브는 클로바를 통해 정보검색, 일정관리, 날씨알림, 음악듣기, 교통·지역·생활정보 알림 등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게 된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카카오는 포털과 음원, 메신저, 쇼핑, 지도, 내비게이션, 게임 등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서비스를 확보한 상황에서 이용자들의 취향과 특성, 위치 등 다양한 정보를 보유해 국내 빅데이터 강자로 볼수 있다”며 “삼성전자와 LG전자로선 자사 제품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유용성이나 효율성을 높이려면 네이버와 카카오와 협력하는 것이 효과적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