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과장으로 진급한 현대자동차 직원 A씨는 내년에도 임금이 동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내 소문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 과장급 이상 직원의 임금이 동결되면서 대리 말년차에 받았던 임금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내년에도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A씨는 "과장급 직원 두 명만 모이면 내년에도 임금이 안오르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내 레이더망을 돌리기 바쁘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내년에도 과장급 이상 직원의 임금을 동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 51개 계열사의 과장, 차장, 부장 등 간부급 직원은 3만5000여 명이다. 올해 이사대우 이상 임원들은 연봉의 10%를 반납했다.

내년에도 과장급 이상 직원의 임금 동결설이 나오는 이유는 실적 악화 때문이다. 중국과 미국 시장 판매 부진, 영업이익 감소 등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간부급 직원의 임금동결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대차그룹의 과장급 이상 부장급 이하 간부들은 비조합원으로 노사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회사측은 경영 위기를 이유로 이들에 대한 임금동결 카드를 큰 부담없이 꺼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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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3분기까지 현대차(005380)의 영업이익은 3조7994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8.9% 감소했다. 같은 기간 순이익은 3조2585억원으로 29.9% 줄었다. 기아차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올해 3분기 통상임금 소송 패소로 대규모 충당금을 쌓으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4270억원)를 기록했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359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4% 감소했고 순이익은 8632억원으로 64.5% 줄었다.

2000년 현대자동차그룹 출범 이후 과장급 이상 직원의 임금이 동결된 것은 2006년과 2009년, 올해까지 세차례였다. 내년에도 이들의 임금이 안오르면 현대차그룹 출범 최초로 2년 연속 임금이 제자리걸음하는 것이다. 임금 동결 기간을 제외하면 현대차와 기아차는 비노조원에 대해 매년 평균 5~6%가량 임금을 인상해 왔다.

과장급 이상 직원들은 비조합원이란 신분 때문에 회사의 방침을 군말없이 따르고 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쌓이고 있다. 경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아무말 못하는 과장급 이상 직원들에게만 떠넘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경영 위기의 돌파구를 임금동결에서 찾는 것은 전근대적인 방식이라는 불만도 있다. 현대차의 한 과장급 직원은 “승진하면 좋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노조라는 울타리가 없어져 불안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임단협 과정 중 ‘승진을 거부할 권리를 달라’는 황당한 요구를 했다. 대리로 남으면 강성 노조 울타리 안에서 고용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과장부터는 5단계로 인사고과가 이뤄지고 고과에 따라 연봉도 달라져 상사 눈치볼 일이 많아진다.

직장 생활의 가장 큰 재미는 승진이라고 한다. 직장인이라면 남보다 빨리 조직에서 인정받고 승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다. 승진을 거부할 권리를 달라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현대차가 비정상적인 회사가 됐다면 연례적인 파업으로 경영에 큰 짐을 지우는 강성노조 뿐아니라 비조합원에게 지나친 고통분담을 강요하는 회사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