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들이 최근 2년간 정유부문 인력을 점진적으로 줄이고 석유화학 등 신사업 인력 확보에 치중하고 있다. 업계에선 전기차 등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로 정유 부문의 성장성이 불확실해지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정유 4사의 정유부문 인력은 최근 2년간 꾸준히 감소했다.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업계 1위 SK이노베이션의 정유부문 계열사인 SK에너지 직원수는 2015년 말 2427명에서 2016년 말 2404명, 올해 9월 말 2362명으로 감소했다. 2위인 GS칼텍스는 같은기간 2675명에서 2561명으로 줄었다. 현대오일뱅크의 직원수는 1779명에서 1765명으로 소폭 줄었다. 현대오일뱅크는 부문별 인력 현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인원 감축이 대부분 정유부문에서 이뤄졌을 것으로 본다.

유일하게 늘어난 곳은 에쓰오일이다. 에쓰오일의 직원수는 이 기간에 1123명에서 1547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내년 상반기 완공을 목표로 잔사유 고도화 설비(RUC)를 건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 시설을 돌리기 위한 생산직 채용이 많았다. RUC 시설은 원유에서 가스, 경질유 등을 추출한 뒤 남는 잔사유를 원료로 프로필렌과 휘발유 등의 고부가 가치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에쓰오일을 제외한 정유부문 인력이 줄어든 것은 증설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2000년대 중반 고도화 설비를 증설한 이후 2010년대 들어선 정유 부문 신규 투자에 유보적인 입장이다. 2013~2014년 유가가 40달러내로 내려앉으면서 현대오일뱅크를 제외한 3사가 적자를 봤던 점도 한몫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장치 산업 특성상 자동화가 돼 있어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정유업계 생산직의 근속연수가 평균 16년을 웃도는 점도 신규 채용 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울산광역시 온산에 있는 에쓰오일 파라자일렌 공장.

정유업계는 '정유만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위기감 속에 고(高)부가가치 석유화학 제품이나 신소재, 자원 개발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非) 정유(석유화학·윤활기유) 부문의 비중은 각각 50~60%에 달한다. 천수답(天水畓) 농민처럼 유가 등락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에 정유사들이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인력 구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부문 인력이 2015년말 250명에서 올해 9월말 419명으로 늘었다. 새로 건설하는 올레핀 다운스트림 설비(ODC)에 투입할 인력을 채용한 것이다. ODC 시설은 프로필렌을 원료로 폴리프로필렌(PP)과 프로필렌옥사이드(PO)를 만드는 시설이다. 폴리프로필렌은 플라스틱의 한 종류로 탄성이 가격 대비 뛰어나 자동차 범퍼를 비롯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프로필렌옥사이드는 자동차 내장재와 전자제품, 단열재 등에 들어가는 폴리우레탄의 기초원료다.

SK그룹 정유 화학 계열사의 중간지주회사격인 SK이노베이션의 직원수는 이 기간에 1419명에서 1577명으로 늘었다. 증가한 인력은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의 석유화학 부문 직원수는 2015년말 227명에서 2016년말241명으로 늘었다. 2015년 체코와 경남 진주에 세운 자동차나 가전(家電)제품용 기능성 플라스틱 '복합수지' 공장 등에 인력을 추가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오일뱅크도 올해 한전과 해외 석유정제 부산물인 펫코크 발전 사업에 나서고, OCI와 카본블랙 신규 합작 사업을 발표함에 따라 인력 확충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