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조선해양, STX조선해양 등 중견 조선사에 대한 채권단의 실사 결과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게 나오면서 중견 조선사 간 합병설이 제기된 가운데 이들 조선사의 수주잔량이 지난달에도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거에 수주한 배들은 다 만들어서 발주처에 건네주는데, 추가로 수주한 배가 없어 일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21일 영국계 조선·해운 분석 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10월 17일 기준 성동조선해양의 수주잔량은 10척, 25만4000 CGT(Compensated Gross Tonnage·선박의 부가가치, 작업 난이도 등을 고려한 무게 단위)로 작년 말 28척, 70만8000 CGT에 비해 65%(CGT 기준) 줄었다. 작년 말 20척, 39만5000 CGT의 수주잔량이 있었던 STX조선해양의 경우도 10월 현재 9척, 14만6000 CGT만 남은 상황이다.

성동조선해양이 키클라데스로부터 수주해 2016년에 인도한 선박.

성동조선과 STX조선이 올해와 같은 속도로 배를 건조해 발주처에 건네고 추가 수주를 못 한다고 가정하면 내년에는 일감이 바닥날 상황이다. 성동조선은 20만톤 안팎의 선박을 주로 만들고 STX조선은 10만톤 이상의 선박을 주로 만들다가 최근엔 5만톤급 선박도 수주하고 있다. 배 규모가 작을수록 난이도가 낮아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은 현재 선주와 접촉 중이거나 협상 중인 사업이 있어 내년에 일감이 바닥나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동조선 관계자는 “자세한 내용은 말하기 어렵지만 현재 선주가 문의하거나 선주와 협상 중인 건이 몇 건 있다”고 말했다.

STX조선 관계자도 “작년에 회생계획안을 작성했을 때는 올해 8척, 내년에 13척, 2019년에 20척을 수주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선수급환급보증(RG)이 발급되면 올해 20척 정도를 수주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STX조선은 올해 국내외 해운사로부터 총 16척을 수주했는데, 이 중 11척에 대해 RG가 발급되지 않아 계약 취소 위기에 놓였었다. STX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이달 23일 STX조선의 예금을 담보로 RG를 발급할 예정이다. RG란 조선사가 선박을 건조·인도하지 못하게 될 경우, 보증서를 발급한 기관이 대신해서 발주사에 선수금을 돌려주는 보증보험의 일종이다.

성동조선과 STX조선의 채권단은 이들 기업을 계속 지원할지를 결정하기 위해 최근 실사를 진행했다. 실사 결과 성동조선은 청산가치가 7000억원, 존속가치가 2000억원인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성동조선이 계속 존속하는 것보다 자산을 모두 매각해 청산하는 게 금전적으로는 더 이익이라는 것이다. STX조선해양도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게 나왔다.

정부와 채권단은 중견·중소 조선사를 합병하거나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등 여러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느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채권단이 구조조정을 더 압박하기 위해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게 아닌가 싶다”며 “중견·중소 조선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줄이면서 시황이 좋아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