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국내 첫 출시 후 고가정책을 고수하던 일본 프리미엄 맥주 에비스가 출시 석달만에 묶음으로 할인 판매된다. 이는 가격 경쟁이 치열한 국내 수입 맥주 시장에서 고가 전략이 자리 잡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비스 맥주를 수입 유통·판매하는 엠즈베버리지의 이종완 대표는 출시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최고의 맥주라는 브랜드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당분간 가격할인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에비스는 1890년 탄생한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다. 해외에 공식 판매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에비스를 판매 중인 국내 대형마트 3사(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와 편의점 5사(CU, GS25, 세븐일레븐, 이마트24, 미니스톱)는 다음달부터 일제히 에비스 맥주 할인 행사를 시작한다. 350mL 4캔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각각 9500원과 1만원에, 500mL 3캔은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각각 9500원과 9900원에 판매할 계획이다.

에비스 맥주.

현재 에비스의 판매가는 350mL 기준 3900원, 500mL 기준 4700원이다. 이 가격과 비교하면 묶음 판매 단가는 대형마트 기준으로 각각 37%, 32% 낮다. 일본 현지에서 에비스의 경쟁 제품으로 평가받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는 국내에서 500mL 기준 3800원, 4캔 기준 1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에비스가 다음달부터 묶음으로 할인 판매되지만 다른 수입 맥주보다는 여전히 고가로 판매되는 것이다.

엠즈베버리지 관계자는 “500mL 기준 4캔 만원 행사 상품 매출 비중이 90%를 넘어서는 국내 수입맥주 시장의 상황을 고려해 이번 프로모션을 준비하게 됐다”며 “4캔이 아닌 3캔을 기준으로 할인하는 만큼 기존 프리미엄 전략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에비스는 국내 출시 당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중심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프리미엄 맥주가 국내에 상륙한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당시 이종완 대표는 “한국에서 판매되는 수입 맥주 가운데 에비스와 직접 경쟁할 만한 수준의 제품은 없다”며 “판매량으로 승부하기보다는 브랜드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집중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에비스의 고가 정책은 수입맥주 4캔 만원 행사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았다. 유통업체들은 특정 제품의 매출이나 판매량을 공개하진 않지만 에비스에 대한 시장 반응이 좋지 않다는 공통된 반응을 내놨다. 편의점업계 한 관계자는 “재고를 우려한 점주들이 발주를 꺼려 매대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마트 한 관계자는 “가장 수요가 많은 500mL 기준으로 동급의 일본 맥주에 비해 판매량이 10% 수준”이라며 “할인 행사에 포함되지 않는 제품들과 비교해도 70% 수준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에 위치한 에비스 맥주 박물관.

주류업계 한 관계자는 “에비스가 일본에서 프리미엄 맥주인 것은 사실이지만, 에비스와 동급으로 평가받는 산토리 프리미엄 몰츠 등이 국내에서 할인 판매되는 상황에서 고가 전략은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며 “엠즈베버리지 측 또한 무기한 고가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수입 맥주는 최근 공격적인 할인 행사를 바탕으로 시장 점유율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국내 주요 대형마트, 편의점 맥주 판매량 중 수입맥주 비중은 2013년 20%를 밑돌았지만 올해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국내 최초로 4캔 구매시 1만원 행사를 상시화한 세븐일레븐의 수입맥주 매출 증가율은 2015년 77.6%, 2016년 44.1%, 올해 들어 9월까지 43.6%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산맥주 매출은 각각 4.4%, 3.9%, 4% 신장하는데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