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최대 전자상거래기업 알리바바는 지난 7월 항저우에서 무인 편의점 ‘타오카페(Tao Cafe)’를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타오카페를 이용하려면 알리바바의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 앱을 이용해 사전에 받은 QR코드를 매장 입구 인식기에 찍고 들어가면 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정보 수집동의, 알리페이 자동이체 설명서에 서명하게 된다. 이 서명 절차는 첫번째 방문 때만 하면 된다. 두번째 방문부터는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낼 필요도 없다. 출입구에 마련된 카메라가 이용객의 얼굴을 인식해 재방문시 자동으로 타오바오 앱과 연동, 입구 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쇼핑을 마친 후 제품을 들고 계산대 부스에 들어가 서 있으면 부스 안에 설치된 자동시스템이 제품을 스캔하고 결제까지 진행한다. 점포에서 나온 후 몇 초가 지나면 결제내역이 알리페이를 통해 이용자 스마트폰으로 통보된다.

중국에서 무인 점포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최대 온라인 쇼핑몰인 아마존을 시작으로 미국 월마트와 일본 로손 등 각국의 유통업체들이 앞다퉈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결합한 무인 점포를 도입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질주가 두드러지고 있다.

‘아마존 고’ 소개 영상.

알리바바, JD닷컴 등 중국 대표 전자상거래 업체들을 필두로 식품업체 ‘와하하(娃哈哈)’, 가구업체 ‘쥐란즈자(居然之家)’, 대형마트 ‘융후이(永輝)’ 등 전통 유통업체들까지 무인 점포 시장 진출을 선언한 상태다. 터우쯔제(投資界) 등 중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올해 10월 기준 중국에 설립된 무인 편의점 전문업체만 50여개에 달한다.

중국 무인 점포 시장의 선두주자는 세계 최초로 24시간 전자동 편의점을 선보인 ‘빙고박스(BingoBox)’다. 지난해 8월 광둥 중산(中山)시에 1호점을 낸 빙고박스는 지난달 기준 베이징·상하이 등 22개 지역에서 158개의 무인 점포를 운영 중이다. 향후 1년 내 5000개 가맹점을 신설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에서 무인 점포가 빠르게 확산되는 것은 무인 유통 상용화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중국판 카카오톡’, ’중국 국민 메신저’라고 불리는 텐센트의 위챗을 중심으로 무려 10억명에 육박하는 스마트폰 및 모바일 결제 사용자를 보유하고 있다. 중국 인민망(人民網)에 따르면 위챗의 월 평균 실제 이용자 수는 9억6300만여명에 달한다.

중국 정부도 스마트 결제 등 유통산업 구조 변화에 맞춰 정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지난 2015년 수립한 정책인 ‘인터넷플러스’가 대표적이다. 여기엔 ICT(정보통신기술)와 전통 산업을 융합해 빅데이터, 산업 인터넷, 전자상거래 등을 활성화하고 2025년까지 신(新)경제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전략이 담겨있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네트워크 인프라에만 2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중국 국무원도 최근 발표한 ‘오프라인유통혁신전략’을 통해 ‘신유통 시대를 맞이해 오프라인 기업은 혁신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업종 기준 및 관리 감독 규범을 새롭게 정비했다.

◆ 선두주자 ‘빙고박스’ 내년까지 매장 5000개 신설…中 투자업계도 ‘무인 편의점 열풍’

광둥 중산시에 위치한 빙고박스 1호점.

빙고박스 무인 편의점은 현금인출기(ATM) 부스와 닮았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출입구 옆에 부착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스캔해야 한다. QR코드 스캔 후엔 스마트폰 화면이 자동으로 빙고박스 위챗 계정 페이지로 이동하고, 해당 페이지에서 실명 인증을 마치면 출입구 잠금이 해제된다. 모든 제품에는 RFID(무선식별) 태그가 붙어있고 위챗페이나 알리페이와 같은 모바일 페이먼트로 쉽게 구매할 수 있다. 구매하려는 제품을 계산대에 올리면 RFID 태그가 자동으로 인식돼 결제가 진행된다. 제품 구매를 완료하면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제품을 구매하지 않은 경우에는 퇴장을 위한 QR코드를 스캔해야만 출입문이 열린다. 출입구에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구매하지 않은 제품을 식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설치돼 있다.

‘F5웨이라이(F5未來)’, ‘EasyGo웨이라이(EasyGo未來)’, ‘샤오마이(小麥)’, ‘션치우 편의점(神奇屋)’, ‘샤오E 미니마트(小E微店)’, ‘꽈이쇼우쨔(怪兽家)’, ‘잇박스(EATBOX)’ 등 중국 내 많은 무인 편의점이 시범 영업을 준비 중이거나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 중국 최대 식품회사 중 하나인 와하하는 향후 3년간 10만대, 10년간 100만대의 무인 편의점 ‘테이크고(TakeGo)’를 설치한다는 방침이다. 중국 2위 전자상거래업체 JD닷컴은 지난 8월 ‘소매업 혁신 전략 발표회’에서 중국 전역에 무인 편의점을 열겠다고 공표했다.

무인 점포에 대한 투자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샤오E 미니마트는 지난해 8월 1000만위안(약 17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볜리펑(便利蜂)의 투자 유치금은 3억달러(약 3389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볜리펑은 중국 2위의 온라인 여행사 취나얼(去哪儿)의 창업자 좡전차오(莊辰超)가 투자한 무인 편의점 브랜드다. F5웨이라이는 지난 6월 3000만위안(약 51억원)의 투자금을 확보했고, 알리바바가 타오카페를 선보인 지난 7월 이후 빙고박스와 샤오마이는 각각 1억3000만위안(약 220억원), 1억2500만위안(약 212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 대륙 강타한 마윈의 ‘신소매’…“무인 점포 시장, 2020년 300조원 규모로 커진다”

마윈 알리바바 회장.

중국 유통업계에서 무인 점포 시장의 확대는 ‘신소매(New Retail)’의 일환으로 여겨진다. 신소매는 알리바바 창업자인 마윈(馬雲) 회장이 지난해 기업 행사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이다. 인터넷 쇼핑이 보편화하면서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 때문에 외면받는 오프라인 매장을 디지털로 다시 부흥시키고자 하는 그의 야심이 담겨있다. 장융(張勇) 알리바바 CEO는 “신소매는 오프라인 매장을 디지털화해 소비자와 제품 사이에 화학적 융합을 일으키는 새로운 소매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알리바바는 올해 중국 내 49개 백화점 및 쇼핑몰을 보유한 유통그룹 ‘인타임(Intime)’에 이어 대형 슈퍼마켓 체인 ‘리엔화(世紀聯華)’의 지분을 인수해 오프라인 시장도 장악해 나가고 있다. 2년 전에는 슈퍼마켓과 식당, 인터넷 쇼핑, 물류 배송을 모두 결합한 새로운 콘셉트의 신선식품 매장 ‘허마(盒馬)’를 론칭했다. 허마에서도 타오카페처럼 전용 앱을 이용해 알리페이로 결제할 수 있다. 현금이나 카드는 받지 않으며 알리페이에 사진을 등록하면 계산대를 거칠 필요 없이 얼굴 인식 시스템을 통해 결제할 수도 있다. 알리바바는 내년 4월 자사 온라인 쇼핑몰 ‘티몰’과 ‘타오바오’를 그대로 오프라인에 옮겨놓은 대형 쇼핑몰 ‘모어몰(猫茂)’을 완공할 예정이다.

‘신소매 열풍'이 아니더라도 무인 점포는 확산될 수밖에 없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무인 점포는 임대료를 낮출 수 있다. 일반 편의점보다 매장 면적이 좁을 뿐 아니라 빙고박스처럼 컨테이너 형식으로 세울 경우에는 도시 곳곳의 유휴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 인력도 별로 필요없어 인건비도 덜 든다. 매장 이용방법을 안내하는 직원이나 매장 기계를 관리하는 직원, 청소부 정도만 있으면 된다. 결국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다는 얘기다. 계산할 때도 줄 설 필요가 없어 소비자 만족도가 높다.

중국 시장조사업체 아이메이 리서치(iiMedia Research)는 중국 무인 점포 시장 매출 규모를 올해 389억위안(약 6조5000억원), 2020년에는 1조8105억위안(약 300조3000원)으로 추정했다. 이용객 수는 올해 600만명에서 2022년 2억4500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