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특혜채용 의혹 사건을 계기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고 후임 행장을 선임해야 하는 단계다. 우리은행 내부 한일-상업 출신의 갈등은 조직 발전을 저해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정부나 정치권이 개입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정부 지분이 남아있다고 하지만 이미 민영화된 은행이다. 정부도 경영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었다.

지금 문제는 과점주주들(한국투자증권, 한화생명, 키움증권, 동양생명, IMM PE 등)이 이사회를 통해 해결하면 된다. 주주들이 선임할 새 은행장이 우리은행의 복마전 같이 해묵은 문제를 해결하길 바라며, 우리은행의 문제가 지금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복마전(伏魔殿)은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나쁜 일이나 음모가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는 근거지를 의미한다. [편집자 주]

우리은행의 특혜채용 의혹이 한일·상업은행 간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옛 상업은행 출신들이 특혜채용 의혹 문건의 유출자로 옛 한일은행 출신들을 지목하고 있어서다. 상업은행 출신 이광구 행장이 특혜채용 의혹을 책임지고 물러난 상황이라 내부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계파 간 대립으로 특혜채용 진상조사보다는 문건 유출자를 둘러싼 내부 공방만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옛 상업은행 출신들은 문건이 옛 한일은행 측에서 유출됐다고 보고 “한일 출신에게 행장을 그냥 내줄 수 없다”는 격한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의 특혜채용은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10월17일 국정감사에서 지난해 신입사원 공채 관련 문건을 폭로하면서 시작됐다. 심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임원, 국가정보원 직원, 전직 우리은행 임원, VIP 고객 등이 친인척의 채용을 청탁해 16명이 우리은행에 채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심 의원이 공개한 문건은 상당히 구체적이었다. 합격자 이름과 청탁인 정보, 청탁인과의 관계, 우리은행 내 추천인, 생년월일, 출신학교까지 적혀 있었다. 일부 VIP 고객 자녀의 ‘비고’란에는 ‘여신 740억원, 신규여신 500억원 추진’ 등 실적까지 나와 있다. 우리은행의 한 임원은 “이 정도 상세한 문서는 내부에서도 인사 담당 임원과 일부 실무자만 볼 수 있다”고 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미 우리은행을 퇴직한 고위 인사가 문건을 유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은행은 1998년 한일·상업은행이 합병해 탄생한 한빛은행이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1:1 대등 합병을 했기 때문에 출신별로 갈등이 적지 않았다.

문건이 공개되자 우리은행은 진상조사를 진행하면서 문건 유출 경위도 함께 감찰했다. 상업은행 출신 인사들은 언론에 노골적으로 “한일은행 출신이 이 행장을 끌어내리려고 내부 인사 자료를 유출한 것 같다”고 했다. 그 근거로 문건에 이름을 올린 우리은행 임원들이 대부분 상업은행 출신이라는 점을 들었다.

조선일보DB

이 행장이 결국 사퇴를 결심하자 상업은행 측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한 인사는 “한일은행 출신이 문재인 정부와 결탁해 이 행장을 밀어냈다”고 했다. 그동안 우리은행은 옛 한일·상업은행 출신이 번갈아가며 최고경영자(CEO)를 맡고, CEO(지주 회장 또는 행장)가 상업 출신이면 행장 또는 수석부행장은 한일 출신으로 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순우, 이광구 등 상업은행 출신 행장이 잇따라 선임되면서 한일은행 출신의 불만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같은 계파갈등은 우리은행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현재 우리은행에서 한일·상업 출신은 20% 정도 남아 있다. 일부 부지점장급도 있지만, 대부분 부장급 이상이다. 20%가 나머지 조직 전체를 뒤흔드는 구조다.

계파갈등은 ‘힘있는 외부세력’과의 결탁 유혹에 빠지기 쉽다. 실제 우리은행은 CEO 선출 때마다 외부인 정치권이나 정부의 개입이 빈번하다. 특혜채용 의혹 문건이 공개되자 옛 상업은행 출신들이 문건 유출 경로로 옛 한일은행 출신들을 지목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한 관계자는 “이번 특혜채용 의혹이 터진 초반에는 사내 분위기가 진상조사보다 문건 유출자 색출로 쏠렸다”며 “당시 인사 담당자들도 대부분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계파 갈등이 고조되면서 차기 행장 선출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상업 출신이 행장을 맡기에도, 한일 출신을 우대하기도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어떤 출신이 행장이 되든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융권 고위 임원은 “통합 후 입행한 행원들은 계파 갈등이 무의미한데, 이들까지도 결국 어느 한쪽에 줄을 서게 되는 상황”이라며 “이런 갈등을 끊어내지 못하면 우리은행은 완전 민영화를 이뤄내도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