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전라북도 전주시 한옥 마을 인근에 있는 남부시장. 낡은 건물 2층 앞에는 10~20대 방문객들이 마녀 모자, 호박 귀신 등 핼러윈데이 소품과 벽화 앞에서 셀카를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야외 탁자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새싹이 들어 있는 엽서, 주인이 직접 서평을 적어주는 책방, 길고양이들이 찾는 카페 등 각각 개성을 가진 점포들도 방문객들로 가득 찼다.

지난달 28일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에서 한 방문객이 핼러윈 소품 마녀모자를 활용해 사진을 찍고 있다. 아이디어로 무장한 19~39세 청년상인들이 이곳에 30여 개 점포를 열면서, 전주 남부시장은 관광명소가 됐다.

이곳은 전주의 핫 플레이스(인기 장소)로 떠오른 청년몰로, 창업 청년들이 차린 개성 있는 30여 점포가 모여 있다. 씨앗 엽서를 파는 '소소한 무역상' 대표 박종현씨는 "주말 방문객이 많을 때는 4000~ 5000원짜리 엽서로 매출 200만원도 올린다"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관광하러 온 기욤 드니(23)씨는 "청년몰이 전주의 필수 관광 코스라 해서 들렀다"며 "재미있는 볼거리, 매력적 먹거리가 있어 한국을 찾는 친구들이 있다면 추천해주고 싶다"고 했다.

전통 시장으로 향한 청년들 지난 3년간 1100여 명

청년들이 전통 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색다른 아이디어가 있지만 창업 자금이 부족한 청년들이 '나만의 점포'를 차리면서 전통 시장의 부활을 이끌고 있다. 지난 9월 경주 북부상가시장에 문을 연 청년몰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약자·한 번뿐인 인생 즐기자는 뜻)는 엽서를 써 놓으면 6개월 뒤에 배달되는 우체통, 나만의 향수를 손수 만드는 체험 공방 등 아이디어로 무장한 점포 20여 곳이 관광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강원도에 있는 원주중앙시장엔 2014년부터 청년 상인들이 입점해 현재 청년 점포 73곳이 영업 중이다. 좁고 어둡고 복잡한 상가 건물 구조의 특징을 살린 '미로' 콘셉트로 인기를 끌었다.

이선형 원주중앙시장 청년몰 단장은 "전통 시장 내 창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일주일에 입점 문의 전화가 2~3통씩 걸려 온다"고 말했다.

이렇게 전통 시장 내에 새롭게 점포를 차린 '청년 사장'이 지난해에만 479명(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집계)이다. 내년 초 문을 여는 점포까지 포함하면 2015년부터 3년여 동안 중소벤처기업부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지원을 받아 청년 상인 1100여 명이 전통 시장 안에 둥지를 틀게 된다.

지원금이 끊긴 뒤 운영을 포기한 청년상인들도 있지만, 3년간 지원 기간에 안착에 성공하는 비중은 대략 70% 정도다. 중소벤처기업부 관계자는 "청년 상인 한 명이 전통시장에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시장 전체에 활기가 될 정도로 효과가 크다"면서 "청년 상인들이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면서 기존 가게도 매출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악전고투 속에 전통 시장을 바꾼 청년들

청년 상인들은 기존 전통 시장에 활력소가 되고 있다. 대형 마트와 백화점, 기업형 수퍼마켓에 밀려 위기에 처했던 전통 시장들은 시장의 명물로 등장한 청년 가게 덕분에 다시 방문객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남부시장은 지원 대상인 청년 상인을 정할 때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겨루는 오디션을 통해 경쟁력 있는 청년에게 시장에 자리를 내줬다. 하현수 전주 남부시장 상인회장은 "자체 조사 결과 청년몰이 들어오고 나서 기존 상인들의 매출도 평균 15%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전통 시장을 살리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원주중앙시장 청년몰은 지역 수공예품 제작가와 음악가·미술가들이 참여하는 주말 바자를 3년째 이어오고 있다. 전주 남부시장 청년몰도 불이 나 버려졌던 창고를 청년들이 페인트를 칠하고 인테리어를 손봤다. 주말엔 한옥 마을에 나가 직접 전단도 뿌렸다. 경주 청년몰 '욜로'는 지난 핼러윈 때 청년 상인들이 귀신으로 분장하고 영업해 젊은이들 사이에 소문이 났다. 조재연 중소벤처기업부 시장상권과장은 "전통 시장은 임차료도 저렴하고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창업에 도전할 기회가 열려 있다"며 "취업난 속에 청년들의 전통 시장 진출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