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창원R&D센터 4층에는 약 20억원을 들여 설치한 3D(3차원) 프린터 4대가 놓여 있다. 3D 프린터 안을 유심히 보니 하얀색 플라스틱판에 파란색 자외선(UV) 램프가 설계된 모양대로 움직였다. 3D 프린터가 개발 단계의 냉장고 판 모형을 만드는 중이었다. LG전자는 3D 프린터를 도입해 모형 제작에 걸리는 시간을 약 30% 줄였다. 외부 업체에 모형 제작을 맡기지 않아도 돼 신제품 정보 보안을 강화할 수 있고 비용도 연간 7억원 가량 감소했다는 게 LG전자 창원R&D센터 관계자의 설명이다.

LG전자 연구원들이 창원R&D센터 3D프린터로 만들어낸 냉장고 부품을 살펴보고 있다.

6일 경상남도 창원시 LG전자 창원1사업장에 위치한 창원R&D센터를 찾았다. 냉장고 모양에 착안해 지어진 지상 20층, 지하 2층 규모의 창원R&D센터는 지난달 26일 열었다. 이곳은 냉장고, 정수기, 오븐레인지,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 제품을 연구·개발하는 ‘LG 주방가전의 산실(産室)’이다. LG전자는 중국, 폴란드, 베트남, 멕시코 인도 등을 포함해 세계 약 170개국에 공급하는 주방가전은 모두 창원R&D센터에서 개발된다. 이곳에는 H&A사업본부 키친어플라이언스사업부 연구원 15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LG전자(066570)는 연구·개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해 기존 제품군별로 흩어진 연구조직을 창원R&D센터로 모두 모았다. 송승걸 쿠킹/빌트인BD담당 전무는 이날 “인재가 중요한 이 시점에 창원R&D센터는 가전 산업 인재를 키운다는 목표를 실천하는 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LG 얼음정수기냉장고는 제품군별 인재를 모아 시너지 효과를 낸 대표적인 예”라며 “창원R&D센터에서 이를 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 ‘연구원의 도서관’ 시료보관실, ‘워터 소믈리에’…수준급 연구개발 인프라

LG전자 창원R&D센터는 3D 프린터실뿐만 아니라 제품 기획의 출발점인 시료보관실과 전 세계 요리를 연구하는 요리개발실 등 수준급 연구개발 인프라를 갖췄다.

건물 지하 1, 2층에는 연구원에게 도서관과 같은 시료보관실이 자리 잡고 있다. 시료는 제품을 개발·기획하면서 참고할만한 완성품 또는 개발 중인 제품을 일컫는다. 연구원은 도서관에서 필요한 책을 빌려보고 반납하는 것처럼 시료보관실에 와서 언제든 필요한 시료를 찾아 활용할 수 있다. 실제 이날 연구원들은 필요한 시료를 찾아 엘리베이터에 싣고 올라갔다.

보통 대형 건물 지하에는 주차장이나 기계실이 있지만 LG전자는 이곳을 냉장고, 오븐, 식기세척기 등 주방가전 시료 약 500대로 채웠다. 총 750대까지 시료를 보관할 수 있으며 전체 시료 보관 규모는 기존 대비 50% 더 커졌다. LG전자는 다른 곳에 흩어진 시료도 창원R&D센터로 차근차근 옮겨올 계획이다. LG전자는 창원R&D센터로 주방가전 연구소로 시료 통합해 보관하기 전에 각 제품 담당 연구소에서 개별적으로 관리했다.

LG전자 직원이 창원R&D센터 지하 시료보관실에서 시료를 운반하고 있다.

14층에는 요리개발실인 ‘글로벌 쿠킹 랩’이 있다. 이곳은 화덕, 상업용 오븐, 제빵기, 탄두르(Tandoor) 인도 화덕 등 다양한 조리 기기를 갖추고 있어 연구원이 전 세계 다양한 요리를 직접 조리하며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

연구원은 이곳에서 조리법을 개발하고 디오스 광파오븐 등 쿠킹(조리) 제품에 탑재할 수 있도록 최적화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특히 외국 요리를 개발할 때는 블라인드 테스트와 현지인 테스트 등을 거쳐 맛의 완성도를 평가한다.

창원R&D센터에는 이색 연구원도 있어 주방가전 성능과 함께 감성적인 품질을 높이는 데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병기 정수기BD 정수기GE파트 선임연구원은 눈 가리고 물맛으로 물 종류를 맞히는 ‘워터 소믈리에’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인정한 물 감별 자격증을 보유한 이 연구원은 정수기 개발 과정에서 물맛이나 냄새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박소영 쿠킹/빌트인신뢰성QE팀 선임연구원은 세계 각국의 조리법을 연구하는 ‘레시피 전문가’며, 김은정 냉장고RD/ED 책임연구원은 김치 수백 트럭을 사용해 연구하고 디오스 김치냉장고 고유 기능인 ‘New 유산균김치+’를 개발한 ‘김치 연구가’다.

◆ ‘스마트 공장 첫 단계’인 창원R&D센터…4차 산업혁명 대응

창원R&D센터는 스마트 공장 포문을 여는 첫 단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LG전자는 오는 2023년까지 냉장고, 조리 기기, 정수기 등을 생산하는 창원1사업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재건축하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창원R&D센터는 제품 기획, 개발 단계에서 스마트 공장의 ‘모듈러 디자인’ 전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스마트 공장의 통합 생산 시스템은 제품 주요 부품을 몇 가지 패키지로 구성하고 서로 다른 모듈을 조합해 여러 종류의 제품을 만드는 모듈러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다.

LG전자 연구원이 피자 전용 화덕을 사용해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LG전자는 연말부터 오는 2022년까지 약 6000억원을 들여 창원1사업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변모시킨다. 올해 말부터 2020년까지는 생산동 일부를 신축하고 2021년부터 2022년까지는 생산동을 확장하고 창고동을 신축할 계획이다. 빅데이터와 사물인터넷(IoT)을 활용해 모든 생산 물량을 관리하고 태양광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적극 도입해 친환경 스마트 공장을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이를 위해 매년 250여명을 새로 채용해 연구·개발과 생산, 물류 등을 맡길 예정이다. 또 현재 연간 200만대인 생산규모를 스마트 공장을 가동해 연간 300만대까지 늘리게 된다.

송대현 H&A사업본부장 사장은 “40여년 전에 지어진 창원1사업장을 스마트 공장으로 새로 지어 4차 산업혁명 시장을 대비하겠다”며 “지능화에 초점이 맞춰진 스마트 공장으로 세계 가전 산업의 메카 역할을 하겠다”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