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 매출채권을 전문으로 하는 P2P(개인간)대출회사 ‘펀듀’에 총 860만원을 투자한 직장인 강모(38)씨는 요즘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강씨가 처음 투자했던 지난 4월 펀듀는 연체율 0%, 부실률 0%의 건실한 회사로 보였다. 강씨는 4~7월에 걸쳐 12건의 채권에 투자했고, 11월 2일 기준 연체율이 86.6%로 치솟았다.

강씨는 부동산건축자금(PF) 대출회사 ‘펀딩플랫폼’에도 비슷한 시기에 2500만원을 투자했다. 해당 업체는 4개월째 이자까지 연체 중이다. 강씨는 “업체들이 연체 전까지는 고객서비스(CS)도 친절히 응답하더니 연체가 발생하고 민원이 많아지니 외근 중이라는 둥 각종 핑계를 대며 투자자를 피한다”면서 “당장이라도 업체를 경찰에 고발하고 싶지만 괜히 받을 수 있는 돈도 못 받게 될까봐 이도저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돈을 수개월째 연체하고 있는 P2P대출회사에 자금을 투입한 투자자들이 냉가슴을 앓고 있다. 이들은 업체를 경찰에 고발하고 싶어도 괜스레 돈을 떼일까 우려해 수개월째 업체에 항의 전화를 하는 것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투자자들이 투자 전에는 업체를 고르던 ‘갑’ 위치에서 발이 묶인 ‘을’로 전락해버린 셈이다.

7일 펀듀와 펀딩플랫폼 등 수백억원대의 누적 투자금을 모집한 업체들의 일부 투자자들은 연체자 모임을 결성했다. 펀듀 투자자 가운데 200여명은 현재 피해자 모임을 결성하고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 신청을 하는 등 단체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일부 투자자들은 금감원에 개인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조선일보DB

펀듀는 이른바 투자금 ‘돌려막기’ 방식으로 상품을 구성했다가 투자금이 뚝 끊기면서 연체가 터지기 시작했다. 홈쇼핑 매출채권 대출은 대개 6개월 이상 대출 기간을 설정한다. 하지만 이 업체는 투자자들에게는 기간을 1~3개월 단위로 짧게 끊어서 자금을 유치했다. 앞서 모집한 투자자들의 자금을 다음 사람들의 돈으로 메워주는 방식인데, 투자자들은 이를 고지받은 바 없다.

펀듀 투자자 박모(26)씨는 “3개월 전부터 연체 안내 문자를 받고 있는데, 펀듀는 이자 지급일이 임박해서야 연체 안내를 해준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상품 설명도 엉망인데 단기에 15%에 달하는 높은 금리를 준다는 이유로 투자를 결정한 스스로가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펀딩플랫폼 투자자들은 ‘연체관리검증그룹’을 결성해 업체 측과 지난 8월부터 1개월마다 만남을 가지고 있다. 지난 7월 한국P2P금융협회를 탈퇴한 펀딩플랫폼은 부동산건축자금 대출을 해주고 돈을 빌려준지 10개월만에 갑자기 상환일 직전에 건물이 지어지지 않았다면서 연체를 통보했다.

펀딩플랫폼 연체관리검증그룹에 자문을 해줬던 한 P2P대출회사 대표는 “펀딩플랫폼 투자자들은 회사를 믿고 기다리느냐, 소송으로 갈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것 같지만 돈을 받기 위해서는 기다리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듯 하다”면서 “단순히 상품 소싱을 제대로 하지 못한 수준을 넘어, 투자 의사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고의적 잘못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부분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11월 6일 현재 빌리는 연체율, 부실률, 누적투자액 등의 정보를 회사 홈페이지에서 공시하지 않고 있다.

이전부터 높은 연체율로 투자자 불만이 끊이지 않았던 P2P대출회사 ‘빌리’는 10월 말 기준 연체율과 부실률이 각각 16.51%, 12.67%를 기록했다. 하지만 빌리는 코스닥 상장사인 에스에프씨에 인수합병됐다고 지난 3일 밝힌 이후 서버 통합 작업을 핑계로 연체율과 부실률을 공시하지 않고 있다. 빌리가 금융당국의 P2P대출 가이드라인이 명시하고 있는 연체율, 부실률 공시 의무를 교묘하게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연체된 투자금을 완전히 돌려받을 수 있는 장치는 없다. P2P투자 상품이 은행 예적금처럼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 상품인데다, 아직 제도권 금융이 아니라서 금융당국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도 적다. 금융위원회의 P2P대출 가이드라인이 있으나 강제성이 없는 ‘권고’ 수준의 조항에 머무른다.

이승행 P2P협회장은 “투자자들에게 정확하고 투명하게 상품 정보를 공지하지 않았다면 불완전 판매 소지가 있어 보험이나 다른 금융 상품처럼 자금을 돌려줘야한다는 논리는 성립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만 투자자들은 P2P투자 상품이 원금을 보장하는 상품이 아니며 연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투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