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한국산 철강 봇물…'기울어진 운동장' 평평하게 해야"

토머스 깁슨 미국철강협회(AISI) 대표는 한국산 철강의 대미 수출이 FTA 이후 계속 늘고 있다고 말하며 “철강 무역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야한다”고 말했다.

“철강이 많이 쓰이는 자동차까지 포함할 경우 사실상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엄청나게 빠르게 늘어난 것입니다. 철강만 놓고보면 2009년 이후 수출 규모가 확 뛰었는 데, 자동차도 그 즈음부터 한국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늘었죠.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에도 이러한 추세는 계속됩니다.”

토머스 깁슨 미국철강협회(AISI·American Iron and Steel Institute) 대표(President and CEO)는 조선비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한미 통상 문제에 대해 ‘한국산 철강 제품의 대미 수출 증가’를 강조했다. 한국산 철강 제품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시장에 대거 유입되는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한 무역 불균형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시각이다. 결국 “미국 철강 산업이 계속 타격을 입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철강 산업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 이후 통상 문제 중 가장 목소리를 크게 내는 부문 가운데 하나다. 석탄 등 저렴한 에너지를 기반으로 중서부 지역에 들어선 철강 산업이 1980~1990년대 이후 급격히 무너졌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 지역 백인 노동자 계층의 지지를 얻은 것이 집권에 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산 송유관 사용을 의무화 하는 행정명령을 내리는 등 철강 산업 부활을 자신의 무역 정책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미국철강협회도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 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철강 수출까지 문제 삼는 등 강경한 입장이다. 깁슨 대표는 미 해군사관학교 출신의 변호사로, 미 상원과 하원에서 오랫동안 입법 보좌진으로 일했다. 이후 미 환경보호청(EPA) 청장 비서실장 등을 역임했다.

토머스 깁슨 AISI 대표는 미국의 한국산 철강 수입이 계속 늘고 있다며 이메일 답변서에 철강 수출입 추이를 그린 표를 함께 첨부해 보였다.

한·미 FTA 개정과 관련해 깁슨 대표는 “2009년 이후 급증한 한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FTA 발효 이후에도 소폭 늘며 증가세를 이어 갔는데, 미국산 철강 제품의 대한(對韓) 수출은 FTA 협정 발효 이후에도 0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동차 산업에서 대한(對韓) 무역 적자가 날로 커지고 있는 데, 한국산 자동차가 자국산 철강재를 사용한다는 걸 감안하면 철강 부문의 불균형은 훨씬 커진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미 상무부는 한국 정부가 한국전력으로 하여금 산업용 전기 요금을 싸게 책정하게 하는 방식을 통해서 자국 철강 회사들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산업용 전기 요금 문제도 지적했다. “자국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 전기를 싸게 공급하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행태”라며 그 근거로 한국의 한 영자지 기사를 거론하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의 철강재 수입은 3000만톤(t)으로 2010~2013년 평균 2700만톤과 비교해 10% 증가했다”며 “미국이 전세계 철강 회사들이 노리는 수출 시장이 되었다”고 깁슨 대표는 말했다. 그는 글로벌 철강회사들이 미국 시장을 집중공략하는 이유에 대해 “과잉 설비 문제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추산한 올해 글로벌 철강 업계의 과잉 설비 규모는 6억5700만톤인데, 미국 전체 철강 생산량의 8배에 달한다”고 그는 덧붙였다. 2016년(24억톤)과 비교해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문제가 심각하다는 얘기다.

과잉 공급으로 덤핑 수출이 만연하면서 한국 철강 회사들이 피해자이자 가해자 역할을 하고 있다고 깁슨 대표는 봤다. 그는 “중국 회사들이 남아도는 설비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한국에 철강을 싸게 공급하자, 한국 회사들도 제품 가격을 낮추고 미국 등 해외 시장에 수출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했다”고 설명했다.

결국 깁슨 대표의 주장은 만성적 공급 과잉 속에 한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철강 회사들의 대미(對美) 덤핑 수출 공세에 자국 업체들이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15~2016년에 미국 철강 산업에서 사라진 일자리만 1만4000개에 달한다”며 “올해에도 7000개 가량의 일자리가 사라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깁슨 대표는 “통상 대응 입법(trade remedy laws)과 교역 대상국과 외교적인 토론을 통해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평평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