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위의 반도체 기업인 브로드컴이 3위인 퀄컴 인수에 나서면서 세계 전자·IT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만약 이번 인수합병(M&A)가 성사될 경우 세계 반도체 역사상 최대 규모의 '빅딜(Big Deal)'이 될 것으로 전망되며, 모바일·네트워크·자동차용 반도체 분야에 지각변동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5일 블룸버그,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세계 최대의 모바일칩 업체인 퀄컴을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외신은 브로드컴이 이르면 이번 주말 퀄컴에 인수를 제안할 수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브로드컴은 10% 또는 20%의 주식과 함께 대부분 현금으로 퀄컴을 인수할 것이라고 소식통은 밝혔다.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에 위치한 브로드컴 본사.

퀄컴의 시가총액이 900억달러(100조3950억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초대형 빅딜인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수제안이 이뤄질지, 또 퀄컴이 이를 수용할지는 확실치 않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전했다. 두 회사 측도 M&A 검토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 표명을 거부하고 있다. 만에 하나 두 회사가 거래에 합의하더라도 규제당국의 승인 등 넘어야할 걸림돌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

◆ 싱가폴의 아바고 야심... 브로드컴 이어 퀄컴까지

싱가폴의 작은 거인 아바고가 통신용 반도체 거물로 불리던 브로드컴을 인수한 지 1년 남짓만에 퀄컴까지 인수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반도체 업계가 놀라고 있다.

아바고는 지난해 미국의 브로드컴을 370억달러에 인수했다. 반도체 기업 M&A 중 역대 최고액이었으며 매출액 규모도 브로드컴이 아바고보다 더 많았다. 아바고는 인수 후 새로운 사명을 피인수 기업인 브로드컴으로 변경했다.

싱가폴의 아바고는 HP에서 출발한 회사다. HP는 지난 1999년 컴퓨터 이외의 부문을 분리해서 애질런트 테크놀로지스(Agilent Technologies)를 설립했고, 다시 2005년 반도체 부문을 분리해 아바고가 탄생했다.

아바고는 공격적인 M&A로 성장을 거듭해왔다. 2014년에 LSI로직을 66억달러에 인수하고 네트워크 칩과 메모리 반도체로 영역을 넓혔다. 네트워킹 장비 기업 에뮬렉스를 6억600만달러에 인수하는 등 2013년 이후 총 5개 기업을 흡수하며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애플의 아이폰을 비롯한 스마트폰에 통신 부품을 납품하며 데이터 저장용 칩도 보유했다.

새롭게 탄생한 브로드컴은 네트워크용 반도체를 비롯한 유선 인프라용 반도체, 휴대폰에 탑재되는 와이파이, 블루투스 칩셋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매출의 절반 수준이 셋톱박스, 케이블 모뎀, 스위치 등 유선 인프라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반도체, 와이파이 칩셋 등 통신 분야에서 약 28%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퀄컴·NXP 인수시 모바일·자동차 반도체 시장 장악

블룸버그에 따르면 브로드컴은 현재 퀄컴뿐만 아니라 현재 퀄컴이 M&A 절차를 밟고 있는 NXP도 함께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 인프라 분야의 최강자인 브로드컴이 모바일 칩 분야의 최강자인 퀄컴, 자동차·보안 반도체 분야의 1위 기업인 NXP를 모두 인수할 경우 브로드컴은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다양한 기술 포트폴리오를 갖춘 기업 중 하나로 도약하게 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브로드컴의 통신, 인프라 기술과 퀄컴의 모바일, IoT 분야 기술력의 시너지 효과는 매우 클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 NXP의 자동차용 반도체와 보안 기술력이 합쳐질 경우 IoT, 5G,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에 가장 강력한 반도체 기업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M&A가 퀄컴 입장에서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퀄컴은 최근 애플과 로열티 분쟁, 각국 정부로부터 불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과징금을 부과받고 있어 모바일칩 사업에서 고전하고 있다. 만약 퀄컴이 애플과 우호적인 기술 협력 관계를 맺고 있는 브로드컴에 인수될 경우 모바일칩 사업매각 협상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