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임상시험수탁기관
877건 이상 임상시험 수행
이중 110건 이상이 글로벌 임상
신약 개발 숨은 주역

임상시험은 의약품을 개발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다. 임상시험을 통해 해당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증명돼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임상 과정을 거쳐 신약으로 허가를 받는 확률은 굉장히 낮다. 미국바이오협회가 지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임상을 수행했거나 진행 중인 9985건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임상 1상부터 신약의 최종 품목 승인까지 성공할 확률은 9.6%에 불과하다.

신약 개발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통계가 중요하다. 개발하고자 하는 의약품의 유효성이 얼마나 되는지 결과를 증명하는 과학적 과정에 통계가 사용된다. 한달 전인 지난 9월 21일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이하 LSK Global PS) 통계팀을 서울 명동에 위치한 본사에서 만나 ‘신약 개발의 숨은 주역(主役)’인 임상시험에서의 통계의 중요성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LSK Global PS는 국내 최대 규모의 임상시험수탁기관(CRO)이다. 연매출은 200억원에 달하며 직원수는 300명으로 1위다. CRO는 임상시험 진행의 설계, 컨설팅, 데이터 관리, 임상시험 수행 등 임상시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를 통합적으로 지원한다.

LSK Global PS 통계팀 정수연 차장, 길시연 과장, 박병관 상무가 임상시험에서의 통계의 중요성에 대해 의견을 주고 받고 있다.

LSK Global PS에 입사한 후 통계팀을 줄곧 맡아오다 지난 2010년부터는 역학연구팀도 함께 담당하는 박병관 상무(부서장)와 정수연 차장, 길시연 과장이 인터뷰에 응했다. 박 상무는 LSK Global PS가 설립된 2000년 세 번째로 입사한 회사 원년 멤버 축에 속한다. 17년간 근무하면서 통계학자로서 실무적으로 임상시험 통계의 기본부터 다져왔으며 국내 2세대 임상시험 통계 전문가에 속한다.

박 상무는 가톨릭대에서 의학통계학으로 석사를 받았고, 입사 이후 고려대에서 통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영작 LSK LSK Global PS 대표가 주례를 맡았을 정도로 박 상무에 대한 대표의 신임이 두텁다. 정 차장과 길 과장은 미국에서 각각 의학통계학과 통계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해외파 출신으로, 정 차장은 삼성바이오에피스에서, 길 과장은 한미약품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한미약품은 각각 국내를 대표하는 바이오시밀러, 신약 연구개발(R&D) 기업이다.

◆ “임상시험은 통계학의 기본이 되는 분야”

임상시험은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증명할 목적으로 해당 약물의 약동(藥動)·약력(藥力)·약리(藥理)·임상(臨床) 효과를 확인하고, 이상반응을 조사하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시험 또는 연구를 말한다. 무엇보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확률적으로 가장 부작용이 적으면서도 효과가 뛰어난 약을 찾아내는 것이 임상시험의 목표라 할 수 있다.

박병관 상무

박병관 상무는 우선 일반 통계와 임상 통계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통계는 살아가면서 얻어지는 수 많은 자료들을 요약하고 정리해서 어떤 사회현상을 설명해주는 용도로 많이 사용된다”며 “교육, 교통, 인구 등의 분야에서 특정 현상을 수치화해 설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계”라고 설명했다.

박 상무는 “하지만 임상시험 통계의 경우, 단순히 수치를 취합하고 정리해서 보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개발하고자 하는 의약품의 유효성이 얼마나 되는지 결과를 증명하는 과학적 과정에 통계가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신약 개발 단계 및 관련 규정

의약품(신약) 개발 과정은 크게 비임상시험(동물실험), 임상시험, 시판 후 조사(PMS) 등 3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임상시험은 또다시 제1상, 제2상, 제3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비임상과 임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시판 허가를 받게 된다.

임상시험의 경우 설계 단계에서부터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통계학적 유의성 범위를 설정한다. 임상 1상에서 안전성이 충족되면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2상과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 3상을 거친 뒤 유효성을 평가하게 되는데, 임상시험 결과가 각 단계별로 통계학적 유의성 범위 안에서 충족되면 확률적으로 안전성과 유효성이 담보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정수연 차장

정수연 차장은 “임상시험 통계는 과학적으로 신빙성이 있는 데이터를 근거로 의약품으로 시판돼도 될 지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며 “임상시험 설계 단계에서 설정한 통계학적 유의성이 임상 단계에서 증명이 되면 안전성과 유효성이 담보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안전성의 경우 이상반응 등 부작용이 임상시험 기간 중에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랜 기간동안 해당 의약품을 관찰하고 평가하는 PMS 과정도 필요하다.

정 차장은 “PMS에서 나아가 약물의 시판 전 및 시판 후 약물을 감시(PV)하는 과정에서 수집된 자료를 통해 무시할 수 없는 이상사례가 있는 지를 점검하기 위해서 통계학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 “글로벌 임상시험 비중 5년 안에 30%까지 늘릴 것”

LSK Global PS는 2000년 3월 설립된 이래로 지난해까지 877건의 임상시험을 수행했다. 이중 글로벌 임상시험은 110건을 차지했다. 현재 글로벌 임상시험이 차지하는 비중은 15%까지 늘었고, 12개 국가에서 글로벌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박 상무는 “국내 임상시험 분야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해외 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보다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면서 “5년 안에 다국가 임상시험 참여율을 30%까지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글로벌 진출을 위해서는 아시아의 다국가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주요 CRO로서의 역할을 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더 나아가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과의 협업을 위해 다국가 임상시험 경험을 쌓는 형태로의 전환과 발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LSK Global PS는 임상시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20여명 규모의 통계팀(통계학 박사만 5명)을 5년 안에 50명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글로벌 빅파마(외국계 대형 제약사)의 경우 한 회사에 ‘통계학자(Statistician)’만 300~400명이 있지만, 국내에는 1~2명, 많아야 4~5명 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그나마도 이에 해당되는 것은 상위 10개 제약사 정도뿐이다.

박 상무는 “임상시험 통계 분야 업무의 분업화와 세분화를 위해 SAS(통계분석시스템·Statistical Analysis System) 프로그래머를 충원해 팀이 아닌 부서로 발전시킬 예정”이라며 “통계학자도 항암제, 순환기계 등 각 질병 분야별로 또 임상시험 단계별로 전문가를 양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길시연 과장

길시연 과장은 “CRO 업계는 대체로 이직이 자주 일어나는 편인데, 이직이 잦은 회사에서는 고급 인력이 풍부해도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가 부족하다”면서 “LSK Global PS에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임상시험 통계 관련 노하우를 매우 체계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 “4차 산업혁명 시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등장으로 임상시험 분야도 계속 성장할 것”

전통적인 임상시험은 단계별로 전임상, 임상 1~3상, 시판 후 조사 등을 거치면서 약물을 평가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일반적으로 병원에는 많은 ‘진료기록(medical record)’이 있는데, 원래 이런 데이터는 임상시험에서 선택적으로 취합이 됐다. 즉 임상시험의 초기 단계에서 특정 약물이 어떤 유효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유추한 뒤 가설을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환자를 모집하기 위해 이들 환자의 진료기록을 살핀 뒤 임상시험 대상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AI)과 같은 빅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짧은 시간 내에 자료를 가공하고 자료 속에 숨어있는 특성을 추출할 수 있는 기술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 기술을 통해 ‘실제 임상 데이터(real world data)’를 바탕으로 약물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를 탐색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임상시험 설계 단계에서 가설을 설정하고 이에 부합하는 대상자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환자 상태를 살펴본 뒤 이들 환자의 공통점을 추출해서 해당 약물이 과학적으로 이들을 치료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검증해보는 것이다.

박 상무는 최근 빅데이터(big data)등의 기술을 어떻게 임상시험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가 화두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상무는 “현재는 ‘증례기록지(CRF·Case Report Form)’라는 것을 만들어 환자의 임상시험 자료(데이터)를 수집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E-Sourcing’이라고 부르는 데이터 수집 방법을 통해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Electronic Medical Record)’으로 환자의 자료를 직접 수집하고 분석해 관심 질환의 특성과 특정 약물의 안전성, 유효성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발전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E-Sourcing은 병원 간의 진료기록, 전자의무기록 등의 표준화 작업이 필요하므로 데이터 수집 과정이나 제도적, 법적인 허용 문제 등이 있어서 신약의 허가 과정에서 바로 적용 가능한 단계는 아니다”면서 “이보다는 시판된 약물(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추가적으로 탐색하기 위한 단계로서 현재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앞으로 빅데이터를 통한 역학 자료 분석이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통계팀뿐만 아니라 역학연구팀과의 공조를 통해 더욱 다양하고 전문성 있는 역학 자료 분석 서비스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LSK Global PS는 지난 3월 국내 CRO 최초로 임상시험 서비스의 모든 범위에서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ISO(국제표준화기구) 9001:2015’ 품질경영시스템 인증을 획득했다. 이 인증은 임상시험 서비스 전(全) 분야 및 임상 연구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의 개발 및 운영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동안 CRO 산업에서 특정 임상시험 항목 또는 교육 분야에 대한 ISO 인증을 받은 경우는 있었다. 하지만 ▲임상연구 계획 및 설계 ▲모니터링 ▲데이터 관리 및 분석 ▲통계 ▲프로토콜 및 결과보고서 작성 ▲약물감시 ▲품질보증 서비스 등 임상시험 서비스 전반에 걸쳐 인증을 받은 국내 기업은 LSK Global PS가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