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부터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 택지(宅地)에 짓는 아파트에 대해 '분양가 상한제'가 강화된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땅값과 건축비를 감안, 분양가가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규제하는 제도다. 2005년 당시 노무현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는 각오로 이전에 있던 제도를 부활시켰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유명무실해진 바 있다. 2015년 4월 민간 택지 적용 기준을 강화(3개월간 아파트 매매가격 상승률이 10% 이상)한 뒤로는 거의 해당 사례가 없을 정도로 사문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정부가 2년 6개월 만에 '8·2 부동산 대책' 후속 조치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을 완화하면서 부동산 시장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실제 적용되는 단지는 일부에 그칠 것"이라며 "그동안에도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간접적으로 분양가를 제한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분양가 10~15% 떨어질 듯"

분양가를 구성하는 땅값(택지비)은 감정평가 금액에다 연약·암반 지반 공사비, 간선시설 설치비 등 가산비가 붙는다. 건축비는 기본형 건축비와 가산비로 이뤄지는데 기본형 건축비는 지상층·지하층 건축비로 나눠진다. 건축 가산비에는 구조나 고층에 따른 특수 자재·설비 비용, 에너지 절약형 주택 건설 비용 등이 포함된다. 기본형 건축비는 물가를 고려해 6개월마다 조정하는데 지난 9월 전용면적 85㎡ 기준 3.3㎡당 610만7000원이다. 국토교통부는 "철근·합판마루·동관 등 주요 원자재와 노무비가 상승하면서 지난 3월(597만9000원)보다 2.14% 상승했다"며 "분양가 상한액은 건축비 비중에 따라 0.86~1.28% 오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기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이 현실에서 적용되기 어렵다며 개선한 첫 조건이 '3개월 주택 매매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 초과'다. 여기에 '12개월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 초과' 등 세 조건 중 하나가 더해지면, 주거정책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분양가 상한제 적용이 결정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서울 강남권에서 벌어진 고분양가 논란과 집값 급등에 따른 시장 불안을 없애고 신규 주택을 적정가에 공급하기 위해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면 분양가가 현 시세보다 10~15% 정도 떨어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내년 서울 재건축 분양은 제외

정부가 분양가 상한제를 부활시킨 이유 중 하나는 서울 강남권 등 투기과열지구 집값을 잡겠다는 것. 하지만 서울에서 당장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를 보긴 힘들 전망이다. 일반 분양주택은 분양가 상한제 시행 이후 입주자 모집 승인, 재건축·재개발 등 도시정비사업은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한 단지부터 적용한다. 그런데 신규 공공택지 공급이 힘든 서울은 분양 아파트의 90% 정도가 재건축·재개발로 공급된다. 관리처분계획 인가 신청에서 분양까지 통상 1년 정도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부터 내년 말까지 서울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대부분은 오는 11월 전에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한 단지라 분양가 상한제 대상에서 빠진다.

일반 분양 주택도 일부만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8·2 부동산 대책과 가계부채 대책이 나오고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면서 집값 상승폭이 줄었다. 분양가 상한제 첫 조건이 '3개월 주택 매매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2배 초과'인데, 올 7~9월 서울 물가 상승률은 0.9%이고 같은 기간 서울 집값 상승률은 1.48%다. 자치구별로 보면 노원·강동·도봉·영등포가 물가 상승률의 2배를 넘는데, 올해 집값 상승을 이끈 이른바 '강남 4구(서초·강남·송파·강동)' 중에선 강동만이 포함된다. 잇따른 부동산 대책으로 시장 자체가 움츠러들고 있는 상황에서 분양가 상한제 조건을 충족하는 단지가 소수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강남권 이미 분양가 제한…공급 감소 우려

전문가들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아파트가 나와도 시장에 주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정부가 그간 분양 보증 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를 통해 분양가를 제한했다. HUG는 강남 4구를 고분양가 관리 지역으로 지정, 주변 단지의 1년 평균 분양가를 넘지 못하게 했다. 지난 9월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분양한 '신반포 센트럴 자이'는 시장 예상 가격이 3.3㎡당 평균 4600만~4700만원이었는데, 실제 분양가는 10% 싼 4250만원이었다. 인근 아파트 시세(3.3㎡당 6200만원)를 볼 때 당첨만 되면 2억~3억원 시세 차익을 볼 수 있어 '로또 아파트'라고 불렸고, 1순위 청약 경쟁률은 168대1에 달했다. 분양가 상한제도 마찬가지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과거 아파트를 한 번에 많이 공급할 땐 분양가 제한으로 집값을 안정시킬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소규모로 공급되는 아파트 분양가를 제한하면 주변 시세와의 차이로 '로또'가 된다"며 "LTV(주택담보인정비율) 강화, 신(新)DTI(총부채상환비율) 도입으로 대출이 어려워 실수요자보다 현금 많은 부자가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재건축 수주 시장에서 특화 설계와 고급 마감재로 경쟁 중인 건설사도 고민에 빠졌다. 고급 자재를 쓴다고 해서 건축비를 많이 인정받을 수 없다. 서울 용산구 외국인아파트 부지와 유엔사 부지에 최고급 주택을 짓는 사업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과거 건축비를 맞추기 위해 질 낮은 자재를 쓴 적도 있다"며 "고급 자재는 유상 옵션으로 전환해 건축비를 맞추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분양가 상한제가 장기간 시행되면 주택 공급 물량이 줄고, 주택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건축 단지에서 일반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싸면, 조합원 부담금이 증가한다. 시행·시공사도 이익이 줄어 사업성이 떨어진다. 조합과 관련 업체가 재건축에 나서지 않으면, 공급이 줄어서 집값은 오른다. 공인중개사 이모(65)씨는 "분양가 상한제로 수익성이 낮다고 본 조합이 재건축을 미루면, 수급 불균형이 올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