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채용비리가 일파만파로 확산되고 있다. 매년 수백 명의 신입행원을 뽑는 대형 시중은행에서 채용 청탁을 담은 문건이 발견됐고 금융회사를 감시‧감독해야 할 금융당국도 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태다.

금융감독원의 신입 직원채용 과정도 청탁이 드러나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감시받아야 할 금융회사와 감시를 해야 할 감독당국이 함께 손을 잡고 짬짜미식 채용을 한 민낯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 고질적 적폐 쌓여 결국 터졌다…감독기관부터 금융사까지 채용비리 복마전

25일 금융권과 금융당국 검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남부지검은 서울 충정로 농협금융지주 본사를 찾아 김용환 회장의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는 지난달 말 감사원이 금융감독원의 신입직원 채용 과정에서 채용비리가 적발됐다는 감사결과를 밝히고 검찰이 후속 수사를 진행한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는 지난 달 20일 감사원이 2015년 하반기 금감원 신입 직원 채용과정에서 필기시험 불합격자를 청탁을 받고 최종 합격시키는 등의 채용비리다. 이런 불법 채용이 발생하기 1년 전인 2014년 6월 채용에서도 금감원은 최수현 당시 금감원장의 행정고시 동기이자 18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임모씨의 아들을 경력·전문직원으로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채용비리에 적극 가담한 김 모 부원장과 이 모 부원장보는 지난달 1심 재판에서 각각 징역 1년,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다.

민간 금융회사의 채용비리도 심각한 상태다. 심상정 의원이 이번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2016년 우리은행 신입사원 공채 추천현황 및 결과’ 문건에는 국정원 직원,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 은행 주요 고객의 자녀·친인척 등 16명이 지원했고, 이들의 생년·성별·출신학교 등이 기록된 명단이 은행 직원들의 추천을 받아 인사 부서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최종 합격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3년 전에도 금융당국 국장급 인사의 자녀 한 명이 시중은행에 입사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며 금융사 채용비리가 최근만의 일은 아니라고 했다.

은행권 관계자도 “채용비리가 보통 드러난 곳들이 금융감독원이나 우리은행 등 정부와 연관이 있는 금융기관들인 이유는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자료가 공개되기 때문인데 결국 드러나지 않은 민간 금융회사들에도 비슷한 사례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냐”고 지적했다.

지난달 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2017 고려대학교 채용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참여업체와 상담을 하고 있다.

◆ 장기실업 시대…’억대 연봉 일자리’ 유혹 느끼는 금융권 인사들

이렇게 금융회사들이 채용비리에 얽히고 설키는 이유 중 하나는 청년층의 장기 실업사태가 계속되면서 좋은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처럼 된 상황에서 억대 연봉을 보장받는 금융회사 취업에 부정한 힘을 사용하고 싶은 유혹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 체감실업률은 21.9%를 기록, 역대 최고 수준까지 올라갔다. 청년 5명 중 1명은 취업을 하지 못한 처지인 셈이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 4대 은행(신한·KB·우리·하나) 직원의 평균 연봉은 8240만원이었다. 주요 은행의 과·차장급 직원들은 이보다 높은 억대 연봉을 보장받는다. 지난 추석에 한 시중은행 차장급 직원이 받은 상여금만도 500만원에 달한다.

이러다보니 친인척을 채용시키고 싶은 강한 유혹에 휘말리는 금융회사 직원들이 많다. 이번에 비리가 드러난 우리은행 채용과정에서도 이 은행 검사실장은 자신의 처조카를 입사시키기 위해 대학 부총장의 이름을 팔아 인사팀에 압력을 넣은 사실이 드러났다.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끈끈한 유착관계를 맺는 현실도 채용비리가 자라날 수 있는 터전이 되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지원하는 분담금으로 운영되는 금감원은 금융사의 감독권을 가지고 있고 각종 자료 요청 등의 이유로 금융사 임직원들과 수시로 업무를 한다. 은행권 관계자는 “공무원 신분인 금융위원회보다 금감원 사람들을 더 무서워하는 게 금융사들의 현실”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금융사에 대한 감독권을 가지고 수시로 민간 금융사와 접촉하는 금감원 직원들은 공무원 신분이 아닌 민간인이기 때문에 비위 사건이 발생해도 책임은 상대적으로 덜 지는 구조가 돼 있다.

오시정 고려대 교수(법학과)는 “채용비리의 대부분은 내부자들의 고발로 드러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 보호해주고 불이익을 주지 않는 쪽으로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오 교수는 “결국 문제가 생기는 부분은 면접과정인데 면접위원들을 공정하게 위촉하는 방법을 통해 주관적이고 사적인 이유 때문에 달라질 수 있는 면접점수에 대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