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화(輕量化). 제품을 더 가볍게 만들려는 노력은 자동차 업계가 부여잡고 있는 화두다. 항공기 업계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지구온난화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차량 온실가스 배출 문제는 표적이 됐다. 규제도 점점 심해진다. 미국에선 승용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17년형 차량은 ㎞당 132g에서 2025년에는 89g까지 낮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유럽은 2021년까지 95g, 일본은 2020년 114g, 중국은 2025년 93g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2025년까지 자동차 평균 연비를 L당 23.2㎞까지 높이도록 압박하고 있다. 자동차 업체에서 1년간 판매한 전체 자동차 평균 연비(燃比)가 이에 미치지 못하면 과징금을 부과하는 구조다. 매출의 1%까지 과징금을 맞을 수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연비를 높인 엔진 개발을 통해 더 적게 연료를 쓰고 더 많이 달리는 차량 개발에 주력했지만 한계를 절감했다. 이미 엔진 효율성은 발전시킬 수 있는 데까지 거의 다 왔다는 것. 더구나 전기차 등 최신 자동차에는 배터리 등 다양한 전자기기가 하나둘 들어가면서 자동차 무게가 오히려 더 증가하는 역공까지 맞은 상태다.

◇알루미늄에 탄소강화섬유 플라스틱

그래서 업체들은 차체(車體·body)나 부품 소재 자체 무게를 낮추는 쪽으로 고민하고 있다. 자동차 무게 10㎏를 줄이면 연비는 2.8% 향상, 이산화탄소 4.5% 감소, 질소산화물 8.8% 감소 등을 기대할 수 있다.

포드에서는 100% 알루미늄 차체를 적용한 트럭 F-150을 출시했다. 기존 동급 차량보다 350㎏ 가볍다. 알루미늄은 주로 휠이나 엔진 실린더블록 등 주조품에 쓰이다가 차체를 구성하는 소재로 확장되고 있다. 유럽과 미국 자동차 업체들은 앞덮개(후드), 바퀴덮개(펜더), 차문 등에 알루미늄 합금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혼다 수퍼카 NSX도 알루미늄 합금을 적극 활용한 사례다. 2세대 NSX 뼈대(화이트 보디)는 216㎏. 1세대보다 16㎏ 낮췄다.

마그네슘도 인기다. 마그네슘은 비중이 철 4분의 1, 알루미늄 3분의 2로 자동차에 쓸 수 있는 금속 재료 중 가장 가볍다. 국내에선 포스코가 차체용 마그네슘 판재(板材)를 연구하고 있다.

CFRP(Carbon fiber reinforced polymer·탄소강화섬유 플라스틱)는 '꿈의 소재'다. 같은 기능을 구현하는 걸 전제로 무게를 따지면 강판이 100이라 했을 때 CFRP는 25 수준이다. 4분의 1로 무게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알루미늄이 60, 마그네슘은 50이니 CFRP가 얼마나 가벼운 소재인지를 실감할 수 있다. 다만 아직은 제조 단가가 비싸다. 싸긴 강판이 제일 싸다.

CFRP는 강판보다 4배 비싸다. 하지만 제작 기술 발전에 따라 점차 단가가 낮아지면서 2020년부터는 차체에 CFRP 활용이 급증하기 시작, 2025년에는 연간 10만t가량을 자동차 회사들이 필요로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독일 BMW는 전기차 i3를 만들면서 차체에 CFRP와 알루미늄 합금을 썼다. 그 결과 경량화 효과가 350㎏에 이른다는 게 자체 조사 결과다. 이를 위해 세계 최대 탄소섬유 회사 SGL그룹에 지분 투자를 하고 합자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보잉 787은 50%가 신형 소재

CFRP를 먼저 도입한 건 항공 업계. 원래는 1970년대 전투기 기동성 향상을 위해 적용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여객기 회사까지 뛰어든 것이다. 최신 보잉 787 항공기는 기체 50%를 탄소섬유와 알루미늄·구리 합금으로 채웠다. 항공기 동체(胴體)는 고강도 탄소섬유로 짠 직물 테이프를 돌려 거대한 틀에 감아가며 바른 다음 에폭시 수지와 가압·가열로 결합시켜 최종 완성되는 구조다.

이런 탄소섬유가 들어간 복합 소재로 동체를 만들면 우선 5만여개에 달하는 접합용 볼트 사용을 줄일 수 있다. 기체는 가벼워지고 정비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연료 효율이 올라가는 건 물론이다. 금속은 오랜 시간 습기에 노출되면 내구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기내라도 건조하게 유지하는데 너무 건조해 불편을 호소하는 승객이 적지 않다. 하지만 복합 소재는 내습성이 우수하다. 실내 습도를 금속 동체일 때보다 높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가상 차체'로 충돌 피해 최소화

자동차 차체에 튼튼한, 결국 무거운 재료를 쓰는 건 충돌했을 때 차량 손상과 탑승자 부상을 최소화하려는 게 목적이다. 경량화를 추구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건 이 부분이다. 사실 부딪힐 염려만 없다면야 플라스틱 차량이라고 해서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그래서 독일 다임러가 2016년 공개한 '가상 차체' 개념은 흥미롭다. 다임러 연구진이 고안한 것으로 물리적인 차체 주위에 가상 차체를 설정해놓고 충돌을 감지하는 순간 속도를 줄여 대비한다면 차체를 두껍게 만드는 것 이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경량 소재 기술 아직 선진국 60%

아직 우리 업체 경량 소재 기술은 선진국 대비 60~70% 수준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철강·화학산업 노하우가 오랜 기간 쌓여 있어 집중 육성에 힘을 쏟으면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CFRP가 자동차·항공기에 본격 쓰이는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지금보다 4배가량 커진 50조원에 이른다는 게 업계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7년간 4800억원을 투자, 티타늄과 마그네슘, 알루미늄, 탄소섬유 등 4대 경량 소재를 국가 전략 프로젝트로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