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7만3000명의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마샬군도(Marshall Island)가 세계 2위의 기국(flag state)으로 부상했다.

해운업계에서 기국은 선박의 국적이 등록돼 있는 국가로 통상 선박을 자국내에 등록해 경제적 이득을 얻기 위해 선주들에게 세금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는 나라를 말한다. 선주 입장에서는 이런 나라를 편의치적국이라고 한다. 편의치적(便宜置籍·flag of convenience)은 선주(해운업체)가 운영 선박을 자국이 아닌 규제가 느슨한 제3국에 등록하는 관행을 말한다. 선주는 편의치적국에서 복잡한 규제를 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각종 세금 혜택을 받고, 인건비가 싼 외국 선원을 쉽게 고용할 수 있다. 편의치적국은 선주에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 등록비·유지관리비 등을 받는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박 금융을 제공하는 은행들이 저당권 실행이 쉽도록 법을 만든 국가를 선호하면서 편의치적이 빠르게 늘고 있다. 세계 전체 선박 중 편의치적선 비중은 2007년 58%에서 2017년 74%로 증가했다. 한국도 보유 중인 선박 8만5859DWT(재화중량톤수) 중 84.3%가 외국에 국적을 두고 있다.

마샬제도 위치

마샬군도는 지난 3월 세계 기국 순위에서 라이베리아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라이베리아는 편의치적 서비스 제공 역사가 70년이 넘는 전통적 기국이다. 그러나 2001년부터 편의치적 서비스를 시작한 마샬군도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면서 1위 파나마까지 위협하는 상황이다.

영국 조선해운시황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 9월 1위인 파나마의 등록 선복량(적재용량)은 2억1920만톤으로 전년 대비 1.9% 감소한 반면 2위인 마샬군도의 경우 1억4630만톤으로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3위 라이베리아(1억4070만톤)가 2.2%, 4위 홍콩(1억1090만톤)이 2.9%, 5위 싱가포르(8620만톤)는 3.3% 늘어나는데 그쳤다. 마샬군도는 파마나, 라이베리아, 홍콩, 싱가포르 등 주요 편의치적국 중에서도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김영민 마샬군도 선박‧법인등록처 한국사무소 대표는 “현재 추세면 2~3년 안에 등록 선복량 2억톤을 넘길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며 “만약 파나마 성장이 지금처럼 정체돼 있다면, 5~6년 안에는 파나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마샬군도에 등록된 현대상선 ‘현대드림’호

◆ “정부 아닌 민간이 맡아 빠른 투자로 성장”…세계 27개 사무소 운영

마샬군도는 다른 편의치적국과 달리 기국 관련 업무를 정부가 아닌 미국 선박등록 전문 업체 IRI(International Registries Inc)에 맡겼다. 한국 사무소도 IRI에서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IRI이 운영하는 기국은 마샬군도, 라이베리아 두 곳이다.

IRI는 기국 사업을 시작한 1948년부터 1990년대까지 라이베리아에서만 활동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편의치적 시장은 라이베리아와 파나마가 양분하고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라이베리아에서 내전이 발생했고, 불안을 느낀 선주들이 등록지를 대거 파나마로 옮기면서 균형이 깨졌다. IRI는 라이베리아에서 기국 업무가 축소되자 마샬군도를 대안으로 선택했다.

김 대표는 마샬군도가 기국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로 ‘상업적 전략’을 꼽았다. 영사관에서 기국 업무를 맡고 있는 파나마 등 다른 국가와 달리 마샬군도는 기업체가 기국 업무를 담당하기 때문에 네트워크 등에 대한 투자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라이베리아 역시 IRI가 기국 업무를 맡고 있지만 마샬군도 만큼 투자를 확대하지 못하면서 뒤처졌다.

김 대표는 “정부나 공무원들은 일하려고 해도 예산이나 인원 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절차가 필요해 속도가 느리다”며 “마샬군도는 현지화 작업에 빠르게 투자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다”고 했다.

마샬군도는 2001년부터 주요 지역마다 현지 사무소를 개설하기 시작해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27개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등 3개 대륙별로 운영시간을 나눠 24시간 선박을 관리하고 있다. 기국으로서 단순히 선박에 국적만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안전관리 등 다양한 업무까지 맡아서 처리했기 때문에 선사들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김 대표는 “선박 등록비용 자체는 1000만~3000만달러로 선박 확보에 필요한 전체 비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며 “마샬군도는 편의치적을 선택하는 선사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쉽고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전략을 펼쳤다”고 했다.

마샬군도 선박등록추이

◆ 11월초 부산사무소 개설…미국선급협회 북아시아 담당자 영입

마샬군도는 국제해사기구(IMO)에서 시행하는 각종 해사안전, 환경과 관련해 선주들에 필요한 준비를 도와주는 역할도 맡고 있다. 최근 시행이 2년 연기된 IMO의 선박평형수관리협약 등 환경 규제에 대해서도 국내 선주협회 등과 함께 논의해 대응한 바 있다.

마샬군도는 다음달초 부산사무소를 개설할 계획이다. 부산사무소는 마샬군도의 28번째 사무소다. 이를 위해 미국선급협회(ABS) 북아시아지역 대표를 영입했다. 부산사무소는 서울에 있는 한국사무소와 역할이 다른 기술사무소(technical office)로, 선박에 관한 안전관리 등 각종 기술적 지원을 맡을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홍콩 기술사무소가 국내 선박에 대한 기술을 지원했다.

김 대표는 "2007년 한국사무소를 개설한 이후 마샬군도를 이용하는 한국 선주들이 크게 늘면서 그리스, 미국 다음으로 마샬군도 등록 선박이 많은 나라가 됐다“며 ”한국의 등록 선박 수가 늘어나면서 기술 서비스를 요구하는 요청이 많아졌기 때문에 부산사무소를 개설한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