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추가 개방 의제 될 것"
"서비스 개방 요구는 美 내부 목소리 작아"

미국발() 통상 태풍이 전방위적으로 불어닥치고 있다. 4일 한국과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 들어가기로 합의했다. 바로 다음 날인 5일에는 미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삼성전자와 LG전자 세탁기에 대해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대상으로 예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시작된 공격적 통상 전략이 한국까지 본격적으로 겨냥한 셈이다. 이에 대해 미국 현지 통상 전문가 및 이해관계자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향후 전개 과정을 예상하고 있는 지 물었다.

스콧 밀러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무역분야 전문 선임자문위원.

“농업 부문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서 가장 이슈가 될 것입니다. 농업은 미국이 경쟁력을 갖춘 분야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이해관계자가 많습니다. 자동차나 전자기기의 경우 FTA에 상관없이 이미 무역 장벽이 낮은 상황이라 미국 입장에서 얻어낼 게 없습니다. 서비스 부문은 주도적으로 나서서 추가 개방 등을 요구할 당사자가 존재하지 않고요.”

스콧 밀러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무역분야 전문 선임자문위원은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 재협상에서 농업이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며 “농업은 미국 국내 정치적으로도 이해관계가 가장 분명할 뿐만 아니라 트럼프 행정부나 공화당 입장에서도 성과를 거둬야 할 필요가 있는 산업”이라고 말했다. 밀러 선임 자문위원의 이 같은 발언은 “미국 의회는 농업에 대한 불만이 없다”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지난 13일 국정감사 당시 발언과 배치되는 설명이다. 김 본부장은 당시 “농업은 우리의 레드라인”이라며 “협상 지렛대 차원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농업을 말할 수 있지만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고 확실한 입장을 전달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밀러 선임자문위원은 1997년부터 2012년까지 미국 프록터앤드갬블(P&G)사에서 국제무역담당 총괄 임원을 역임한 뒤 CSIS로 자리를 옮겼다. 이전에 P&G에서 대관담당 업무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 통상 관련 정부 자문위원회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다. 통상 정책 실무 뿐만 아니라 워싱턴 정가(政街)의 역학관계에도 밝은 인물인 셈이다. CSIS는 미국의 대표적인 국제정치 관련 싱크탱크로 공화당과 민주당 양 쪽과 모두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밀러 선임자문위원은 “농업 부문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뿐만 아니라 농업이 주력 산업인 주 출신인 공화당 상원의원 입장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며 “농업이 중요한 지역에서 지지 확보를 위해서 목소리가 커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을 공격하는 주된 근거 가운데 하나가 바로 농업”이라고 덧붙였다. 밀러 선임자문위원은 농업 분야에서는 미 상원이 강력히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을 점쳤다. “농업은 미 상원이 가장 우호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산업”이라며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탈퇴로 불만이 높아진 농업 분야를 달래기 위해 상원 내 공화당 의원들이 움직일 수 있다”고 전했다.

2016년 현재 한국은 세계 5위 돼지고기 수입국, 미국은 세계 2위 돼지고기 수출국이다.

농산물 가운데 돼지고기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고 밀러 선임자문위원은 말했다. “솔직히 말해 양돈 산업은 굉장히 정치적이고 영향력을 갖고 있는 분야”라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개방이 미진하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 당시에도 한국이 돼지고기 시장을 더 열어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동차보다 돼지고기 시장 개방에 대한 요구가 더 높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이 자동차보다 농산물 개방을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분석엔,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이 더 얻을 게 없다는 게 핵심 근거다. “자동차는 FTA를 체결하기 이전과 비교해 무역 조건이 크게 변하지 않은 산업”이라며 “무역조건 변화가 크다면 그 상품을 가지고 무역적자 확대를 언급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고 밀러 선임연구위원은 말했다.

서비스 산업 추가 개방의 경우 “양국간 경제 협력을 심화할 수 있어 바람직하긴 하지만 이를 주장할 정치적 주체가 미국 내에 뚜렷이 없다”며 “협상 과정에서 논쟁이 되는 분야가 아닐 것”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고숙련 서비스 산업의 경우 미국이 비교우위를 갖고 있고 보완적 기능을 하는 산업 분야라 추가 개방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CSIC는 10월 발표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경제전략’ 보고서에서 “금융, 법률, 디지털 무역 등 핵심 분야에서 시장 자유화를 한국에 요구하면 건설적 결과를 낳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역관계도 좀 더 공정하고 공평해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트럼프 정부의 공격적 통상 전략이 지지층을 겨냥한 정치적 행보이긴 하지만, 실제 통상 전략의 방향은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가령 2016년 선거에서 민주당 지지에서 트럼프 지지로 바뀐 오하이오주의 경우 전체 수출 가운데 절반 이상을 캐나다와 멕시코가 차지하고 있다”며 “NAFTA 철폐가 오하이오주 경제와 정치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확답 내릴 수 없는 상황”이라고 예를 들었다. “통상 이슈와 고용 없는 경제를 엮어서 펜실베니아와 중서부 산업지대를 공략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선거 캠페인의 핵심 전략이었지만, 그 내러티브가 어떻게 실제 정치 행보로 이어질 지는 미묘한 구석이 있다”는 설명이다. “NAFTA 공격은 1992년 빌 클린턴을 비롯해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 정치인들도 다들 했던 것”이라며 “그만큼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스토리지만 실제 정책으로 구현될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밀러 선임연구위원은 덧붙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에 관해 그는 “한·미 FTA 협정은 2007년 체결된 지 10년이 지났다”이라며 “무엇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고, 무엇이 작동하고 있지 않은 지 다시 논의할 때가 되었다”고 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변화한 국제 경제나 양국 경제 상황에서 다시 논의하는 게 나쁜 일 만은 아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