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왜 딥마인드 같은 스타트업이 안 나올까.”

네이버의 기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창업 육성·투자 조직) ‘D2 스타트업 팩토리(D2SF)’를 이끌고 있는 양상환(사진) 리더가 스스로 던진 질문이다. 그는 19일 스타트업 지원 기관 스타트업얼라이언스와 리서치 회사 오픈서베이가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7’을 발표하는 자리에 참석해 “한국엔 기술 스타트업이 너무 적다”고 진단했다.

그는 “구글이 인수한 딥마인드(인공지능 바둑 ‘알파고’ 개발)는 기술 자체로 세상에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데, 한국엔 왜 그런 스타트업이 안 나올까 고민했다”며 “네이버가 좋은 기술 스타트업을 찾아서 인수·합병(M&A) 하고 협력도 하면서 시장에 메시지를 던져보자는 생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네이버는 기술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기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2015년 5월 서울 강남역 근처 메리츠타워 16층에 D2SF를 열었다. D2SF는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현 송창현 CTO) 직속의 프로젝트 팀이다.

D2SF는 원천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이들에게 업무 공간과 멘토링, 기술 인프라 등을 지원한다.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17’ 설문조사에서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가장 입주하고 싶은 창업지원센터로 구글이 운영하는 ‘캠퍼스 서울’과 함께 ‘D2SF’를 꼽았다.

D2SF는 2년간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등 분야의 16개 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1800개 기술 스타트업을 검토하고 이 중 600개 스타트업과 미팅을 했지만, 실제 투자까지 이어진 확률은 100분의 1도 안 된다. D2SF가 발굴·투자하고 육성한 인공지능 스타트업 컴퍼니AI(Company AI)는 올해 7월 네이버에 인수됐다.

양상환 리더는 “네이버, 라인, 네이버랩스의 서비스나 기술과 어우러질만한 기술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한다”며 “네이버 내부 엔지니어들의 눈이 워낙 높고 상당히 높은 기준에 따라 기술을 평가하고 고르기 때문에 실제 투자한 곳은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상반기에 투자한 곳만 8곳으로 투자에 속도가 붙고 있다”며 “내년에는 더 많이 투자할 걸로 본다”고 말했다.

네이버의 기술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D2 스타트업 팩토리(D2SF)’.

D2SF는 비즈니스 모델보다는 기술 자체의 가치와 경쟁력을 가진 스타트업을 발굴한다. 돈을 어떻게 버는지, 지금 매출이 얼마인지는 신경 쓰지 않는다. 네이버 자체도 로봇 기술, 자율주행차 등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며 첨단 기술 기업으로 변신하고 있다.

양상환 리더는 “지금은 AI, 자율주행, 로보틱스(로봇 기술), 헬스케어, IoT 등 분야에 주로 관심을 갖고 있지만, 앞으로는 어떤 분야가 될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네이버가 자동차나 로봇을 만들 거라 생각을 못했다”며 “기술이나 서비스 지향점이 어디로 튈 지 아무도 알 수 없어서 몇 년 후의 투자 분야를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양상환 리더는 기술 스타트업이 투자를 유치해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국내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기술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도가 아직 높지 않고 기술 스타트업의 특성상 투자한 자금을 회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다가가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기술 스타트업 창업자나 구성원 중 유독 남성이 많다는 문제도 있다. D2SF가 2년간 검토한 1800개 기술 스타트업 중 여성 창업자는 10명이 채 되지 않았고 CTO 역할을 하는 여성은 한 명도 없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여성 창업자 비중이 20~30%라고 하는데, 한국은 9% 정도”라며 “그 중 기술 쪽으로만 국한하면 그 비중이 10분의 1로 더 낮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기술 창업이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남학생 위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은 병역 의무 때문에 제약을 많이 받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양상환 리더는 “지난해 네이버 출신 창업자를 세어 봤더니 40~50명 정도 됐다”며 “‘페이팔 마피아’처럼 ‘네이버 마피아’가 은연 중에 만들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네이버는 사업 단위를 잘게 나누고 잘 되면 분사시키곤 한다”며 “회사 내부의 안정적 환경과 인적 자원 속에서 유사창업, 준창업과 비슷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