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LG전자 세탁기를 겨냥한 미국 정부의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필요성을 논의하는 19일(현지 시간) 공청회를 하루 앞두고, 미국 가전업체 월풀이 초강경 의견서를 제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미 국제무역위원회에 따르면, 월풀은 공청회 전날인 18일 ITC에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미국에 수출하는 세탁기에 3년간 50%의 관세를 부과할 것을 미국 정부 측에 제안했다. 이에 앞선 지난 5일 ITC는 세이프가드 발동 조건인 산업피해 긍정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미국의 세이프가드는 덤핑과 같은 불공정 무역행위가 아니라도 특정 품목의 수입이 급증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볼 경우 해당 품목의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다.

◆ 미 세탁기 공청회 앞두고 월풀, 초강경 의견서 제출

월풀은 50%보다 낮은 관세로는 삼성과 LG의 덤핑을 막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월풀은 삼성과 LG가 '우회 덤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세탁기 부품에도 50% 관세를 부과하고 부품 수입에 할당량(quota)을 설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월풀은 부품을 세이프가드에서 제외할 경우 삼성과 LG가 미국에서 단순 조립공장을 운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업체의 판매·생산·공장 가동률을 높여 수입 제품과 경쟁하려면 초강경 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앞서 한국 정부와 가전업계는 ITC 결정에 대한 대책회의를 열고 세이프가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삼성과 LG가 미국 현지 생산에 필요한 부품과 미국 업체가 생산하지 않는 프리미엄 세탁기는 세이프가드에서 제외하도록 하는 차선책을 마련했다.

공청회에는 우리측 산업통산자원부 통상협력심의관과 외교부 양자경제외교심의관 등 정부 관계자와 함께 삼성·LG 통상 담당 임원 등이 참석한다.

미국 ITC는 이번 공청회 논의 결과를 토대로 다음 달 21일 구제조치의 방법 및 수준에 대한 표결을 실시한 뒤 오는 12월 4일까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피해 판정 및 구제조치 권고 등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한다.

이후 실제 세이프가드 발동 여부는 ITC로부터 보고서를 받은지 60일 이내에 트럼프 대통령의 최종 결정을 통해 결정된다. 때문에 이번 ITC 판정에 따른 최종 결과는 내년 초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세이프가드 발동을 최종적으로 결정할 경우 WTO 제소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 미 세탁기 판매 한국 기업들의 ‘수난사’

미 상무부는 2012년 7월 미국 월풀사가 한국 기업이 한국산 세탁기를 저가로 판매해 타격을 입었다며 덤핑 의혹을 제기해 2013년 1월 한국산 세탁기에 반덤핑 관세로 삼성전자, LG전자에 각각 9.29%, 13.02%를 부과했다. 특히 삼성전자의 반덤핑 관세는 최종 82.41%까지 올라갔다.

미국의 관세 부과로 세탁기 대미 수출은 2012년 4분기 1억9800만달러에서 2013년 1분기 9300만달러로 급감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관세 부과 대상 생산물량을 상당부분 해외로 이전했다. 국내 생산 물량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를 계속 부담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당시 LG전자는 한국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에 대한 상계관세등 반덤핑 규제 정도가 덜해 창원공장을 증설해 물량을 생산, 수출할 수 있었다”며 “반면 삼성전자는 한국산 세탁기에 대한 관세가 높아 국내 공장보다는 베트남 등 해외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상황으로 갑작스런 변화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전자 업계에서는 월풀이 한국산 세탁기에 대해 세이프가드를 청원한 것은 피해를 줄이기보다는 미국 시장을 독식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랙라인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월풀은 미국 세탁기 시장의 38.4%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2위 삼성전자(16.2%)보다 2배 이상 높은 수치이다. 삼성전자, LG전자라는 경쟁사가 사라질 경우 월풀의 시장 지배력은 더욱 커질 수 있게 된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들의 경쟁은 소비자에게 가격, 성능, 품질 등 여러면에서 혜택을 줄 수 있다"며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이 이번 세이프가드 발동으로 인해 사업이 위축될 경우 그 영향은 결국 미국 소비자 편익 저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